
손짓만으로 화면이 움직이고, 시선을 돌리면 천장 위로 스크린이 펼쳐진다.삼성전자가 지난달 선보인 확장현실(XR, eXtended Reality) 기기 ‘갤럭시 XR’ 얘기다. 스마트폰으로는 구현할 수 없던 몰입감이 더해졌다. 메타의 ‘퀘스트’, 애플의 ‘비전프로’보다 뒤늦게 XR 시장에 합류한 삼성은 ‘하드웨어(삼성)+칩(퀄컴)+운영체제(구글)’ 삼각동맹으로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갤럭시 XR을 삼성전자로부터 대여해 이틀간 체험해봤다.

첫 인상은 신기함보다는 난감 그 자체였다. 기계 앞에만 서면 긴장부터 하는 ‘기계치’에게 첫 설정에서부터 시련이 닥쳐와서다. 오른쪽 상단 전원버튼을 누르면 기기 화면이 켜지면서 손동작을 인식하는 과정이 이어지는데 인식 오류로 해당 과정이 넘어간 것. 손의 움직임은 제대로 감지되지 않았고, 엄지와 검지를 붙였다 떼는 ‘클릭’ 동작만 가능한 상태로 1시간 가까이 씨름해야 했다.
그러다 극적으로 기기가 손동작을 인식하기 시작하며 비로소 본격적인 체험이 시작됐다. 삼성전자 측은 “체험용 샘플 버전에서 생긴 문제로, 정식 판매 제품은 소프트웨어가 최적화돼 이런 현상이 없다”며 “초기 설정 중 와이파이 인식 오류나 화면 멈춤이 발생할 경우 배터리를 분리해 전원을 껐다 켜면 다시 재부팅이 된다”고 설명했다.
정교했던 손 인식…현실·가상화면 전환 자유자재로

설정 과정을 넘기고 나니 XR의 장점이 드러났다. 손가락 움직임 인식은 생각보다 정교했다. 화면에 점 표시가 나오는데 마치 마우스 커서처럼 손을 움직이는 대로 이를 조절할 수 있고, 엄지와 검지를 붙였다 떼면 클릭이 된다. 화면 확대·축소 역시 양손으로 늘렸다 줄였다 하는 손짓만으로 가능했다.
무게는 545g(이마 쿠션 포함)으로 경쟁사인 메타 퀘스트3(515g)와 비전프로(750~800g, M5칩 기준)의 중간 정도다. 들었을 때는 묵직했지만 막상 착용하니 무게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두 시간가량 연속으로 사용하자 광대 부위가 다소 붉어지고 자국이 남아있었다. 기기 외에 302g인 외장 배터리팩을 항상 연결해야 한다는 점도 아소 아쉬운 부분이었다. 배터리는 일반 사용 시 최대 2시간, 동영상 시청시 최대 2시간 30분까지 사용할 수 있다.

기기 화면은 카메라를 통해 내 주변의 현실을 볼 수 있고, 오른쪽 터치패드를 두 번 두드리면 가상화면으로 전환된다. 구글과의 협업을 강조한 만큼 홈 화면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의 홈 화면과 유사했다. 넷플릭스와 구글지도, 구글포토, 유튜브, 카메라 등의 앱이 기본으로 깔려 있었다. 필요한 추가 앱은 스마트폰처럼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다운받으면 된다.
여러 기능 중 단연 돋보였던 건 영상 재생 기능이다. 어두운 방 안 침대에 누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앱을 실행하자 시야 각도에 맞춰 커다란 스크린이 펼쳐졌다. 빔 프로젝터보다 선명한 화질에, 고개 각도에 따라 화면을 조정할 수 있어 마치 이동식 영화관에 온 느낌이었다. 화면 크기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점 역시 인상적이었다.

인공지능(AI) 기능 중에선 구글 AI의 대표 기능인 서클투서치(Circle to Search)가 유용했다. 주변 환경을 보여주는 패스스루(현실 투과) 모드에서 방 안에 놓인 노트북 거치대를 동그랗게 선택하자 관련 정보가 구글에 자동 검색돼 화면 오른쪽에 떠올랐다.
삼성전자가 강조한 ‘이머시브 뷰’ 기능도 인상적이었다. 실제 관광지를 3D 지도 형태로 구현해 마치 현장에 서 있는 듯한 감각을 제공한다. 다만 체험용 콘텐트로는 흥미롭지만 일상적으로 자주 사용할 기능인지는 의문이 들었다. 유튜브에 마련된 XR 전용 콘텐트도 기대보다 빈약했다.

결국 ‘269만원’이라는 가격 장벽을 낮추려면 XR 기기 활용도를 높이는 노력이 필요해 보였다. 500만원대에 달하는 비전프로보다는 절반 정도의 가격이지만 70만~80만원인 메타 퀘스트3와 차별화되기엔 전용 콘텐트가 부족해 보였다. 이에 삼성전자는 어도비·MLB·NBA·캄(Calm)·어메이즈 VR(Amaze VR) 등 글로벌 주요 서비스와 연계한 XR 콘텐트를 제공하고 있고, 곧 네이버의 스트리밍 플랫폼 '치지직'에서도 XR 전용 콘텐트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