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2010년 론칭 이래 국내 대표적 배달 애플리케이션으로 자리 잡은 배달의민족(배민)의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이 배민 2.0 리브랜딩 프로젝트의 첫 결과물을 발표했다. 고객이 느낄 이질감을 줄이는 차원에서 브랜드 디자인을 한 번에 바꾸지 않고 점진적으로 교체한다는 방침이다. 우선 형광색에 가까울 정도로 채도가 높아진 민트 컬러와 ‘워크체’로 명명된 전용서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존에 주로 쓰인 배민 전용서체는 수작업으로 만들어 삐뚤빼뚤한 간판 글자를 그대로 재현한 한나체다. 정교한 획 처리와 높은 가독성만을 추구하던 전용서체 시장에, 어설픔 자체를 콘셉트로 내세운 한나체가 던진 파장은 엄청났다. 현재 시중에 있는 이른바 ‘B급‘ 폰트의 원조는 사실상 한나체라고 봐도 무방하다. 또 배민은 IT 기반 서비스라는 것 외에 폰트 산업과 직접적 연관이 없는데도 매년 한나, 주아, 연성, 을지로, 글림체 등 다양한 폰트를 배포해 왔다. 회사 아이덴티티에서 서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큰 셈이다.

브랜드의 새 얼굴인 워크체는 고딕에서 보통 대각선으로 만들어지는 ㅅ, ㅈ, ㅊ 빗침 부분을 수직·수평으로 폈다. 한나체가 서체 내부에 존재하는 규칙 자체를 깨서 대체 불가능한 개성을 만들었다면 워크체는 범용 고딕을 바탕으로 하되 특징이 강한 한두 자소를 넣어 차별화한다는 디자인 공식을 따랐다. 마치 자유롭게 살던 영혼이 제도권 안으로 들어온 느낌이다. 서체 이름부터 인명에서 가져온 한나가 아니라 각 잡힌 워크(WORK)다.
배민 앱을 켜자 워크체의 신선함과 함께 단점도 눈에 들어왔다. 워크체는 상당히 두꺼운 고딕인데, 콘셉트 설정 문제인지 촉박한 개발 기간 문제인지 몰라도 일부 글자에서 획의 무게 분배가 적절히 이뤄지지 않았다. 한나체와 범용 고딕의 어딘가에 애매하게 자리 잡은 ᆭ 받침을 보면 그런 생각은 더욱 커진다. ‘록’에서도 종성 ㄱ이 너무 많이 내려왔다. ㄹ이 갖는 무게를 감안하더라도 무게중심을 더 끌어올리는 것이 낫다.
서체 패밀리 확장에도 의문부호가 붙는다. 일자로 편 워크체의 빗침은 획 자체의 단순함을 두께로 커버하는 디자인이다. 획을 두껍게 만들어 결합시켰을 뿐 골격 자체의 힘은 없기 때문에 향후 미디엄, 라이트 등으로 얇게 파생될수록 빗침이 힘을 잃고 떨어질 것이다. 그러면 다른 조형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워크체의 전반적인 퀄리티는 낮지 않다. 특히 ‘선착순’ 같은 단어는 포인트 자소인 ㅅ와 ㅊ가 어우러져 워크체의 묘미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폰트 디자인은 대열의 선두에 선 베스트 문자열을 보고 가는 게 아니라 맨 뒤에 처진 어렵고 어색한 문자열을 평균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한 작업인 만큼 몇몇 아쉬움이 더 크게 보인다.
배민이 새롭게 제시한 미션은 ‘세상 모든 것이 식지 않도록’이고, 미션 달성을 위한 목표는 ‘원하는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대체불가능한 배달 플랫폼’이다. 이는 꼭 음식이나 식재료만 배달할 필요 없다는 사업 확장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한나체보다 단정하게 만들어 사용성을 높인 워크체는 그런 점에서 중요하다. 워크체는 완벽하지 않지만 한나체처럼 오랜 기간 쓰인다면 꾸준히 개선될 것이라 생각한다. 워크체와 함께하는 배민 2.0은 어느 쪽으로 향할까. 또 B급 서체 콘셉트를 사실상 폐기한 상황에서 거의 매년 이뤄지는 서체 발표는 계속될지, 계속된다면 그것은 B급일지 각 잡힌 서체일지도 궁금하다.
필자 한동훈은?
서체 디자이너. 글을 쓰고, 글씨를 쓰고, 글자를 설계하고 가르치는 등 글자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관심이 있다. 현재 서체 스튜디오 얼라인타입에서 다양한 기업 전용폰트와 일반 판매용 폰트를 디자인한다. ‘월간 디자인’, 계간 ‘디자인 평론’등에 기고했으며 온·오프라인 플랫폼에서 서체 디자인 강의를 진행한다. 2021년 에세이집 ‘글자 속의 우주’를 출간했다.
한동훈 서체 디자이너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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