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이저 대회에서 번번이 무너지다 지난달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면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로리 매킬로이 2.0은 훨씬 더 강해질 거로 보였다. 세계 랭킹 3위 잰더 쇼플리는 PGA 챔피언십을 앞두고 “그랜드슬램 부담을 떨쳐낸 매킬로이가 무섭다”고 했다.
그러나 PGA 챔피언십에서 매킬로이는 다른 말을 했다. 그는 “이제는 즐기겠다. 내 경력의 하이라이트는 그랜드슬램 달성이며 나머지는 보너스로 생각한다”고 했다.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라는 뉘앙스여서 기자들은 약간 놀랐고 누군가가 다시 물어봤다.
매킬로이는 “내가 원했던 모든 것을 이뤘다. 골프에서 하고 싶은 건 다 했다. 세계 최고의 선수, 모든 메이저 대회 우승 꿈을 꿨고 그걸 해냈다”고 했다. 그는 “내가 앞으로 얼마나 경기를 더 하든 그건 보너스다”라고 선을 그었다.
물론 더 많은 우승을 위해 예전처럼 부담은 가지지 않겠다는 작전일 수 있다. 그는 “커리어 그랜드슬램 같은 것들이 부담됐다. 숫자나 통계 때문에 부담 갖고 싶지 않고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골프를 치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그런데 경기를 보니 꼭 그런 것 만은 아닌 것 같았다. 19일 스코티 셰플러의 우승으로 끝난 PGA 챔피언십에서 매킬로이는 공동 47위를 했다. ‘로리 매킬로이 컨트리 클럽’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그에게 유리하고 잘 쳤던 코스였다.
성적이야 그럴 수 있지만, 태도도 좀 달랐다. 메이저 대회는 인내가 가장 중요하다는데 평소보다 짜증을 좀 더 내는 듯했다. 클럽을 던져버렸고, 낙뢰로 인한 경기 지연 통보를 받고 카메라 앞에서 욕설도 했다.

경기 전 드라이버 테스트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게 드러났는데 “오래 써서 페이스가 얇아졌다”라는 팩트를 얘기하면 될 걸 평소와 달리 나흘 내내 인터뷰를 거부해 뭔가 있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PGA 챔피언십 직전 참가한 트루이스트 챔피언십에서도 매킬로이는 뭔가 뜨악해 보였다.
마스터스 후 매킬로이 뉴스가 몇 개 있었다. 호주 대회에 2년간 참가하며, 인도에서 열리는 대회에 나간다는 보도자료도 22일 왔다. 초청료를 꽤 받을 것이다.
올해 6월엔 런던으로 이사한다. 이사는 마스터스 우승과 상관없이 예정돼 있었고 매킬로이는 플로리다 집을 팔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메이저대회 4개 중 3개가 열리는 미국에서 약간 발을 뺀다는 인상은 지울 수 없다.

마스터스 우승 전까지 매킬로이는 그리스 신화의 시시포스 같았다. 다시 굴러 내려올 바위를 산 위로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은 그 시시포스 말이다. 매킬로이가 우승하면서 결국 통쾌하게 저주를 끝냈다고 생각했다. 이제 더 멋진 신화를 쓸 거라고 생각했다.
매킬로이는 할 만큼 했다. 10대 때부터 최선을 다했다. 목표는 자신이 정하는 거고 가족에게 돌아가는 건 가장 아름다운 결말이다.
그래도 타이거 우즈와 비교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섹스스캔들 이후에도, 칩샷 입스에 걸렸을 때도, 허리 수술을 하고 교통사고가 나서도 메이저에서 우승하겠다는 목표를 잃지 않았다. 매킬로이는 이제 족쇄가 풀렸는데 하이라이트는 끝났다고 했다.
그러나 마스터스 우승 후 기자회견장에 들어오자마자 매킬로이가 한 말이 자꾸 떠오른다. 그는 기자들에게 “우리 내년에는 여기서 무슨 얘기를 할 건가?”라고 했다.
시시포스 신화가 끝났으니 그 매력적인 주인공과는 할 얘기가 적어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샬럿=성호준 골프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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