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가에 갔다가 먼지 속에 잠들어 있던 카세트테이프들을 꺼냈다. 서울음반, 예음사, 서울레코드, 신세계음향, 태광 에로이카…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시절의 친구들이었다.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가 시작되면 집 안의 조명도, 나의 감정도 살짝 어두워졌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김현식의 목소리는 아직도 내 가슴 한구석에서 흐느끼듯 울고 있다.
“사랑했어요…” 그 한마디에 한 계절을 통째로 울게 했던 기억. 최성수의 ‘동행’, 녹음 버튼을 누르며 조용히 숨을 죽였던 밤. DJ 멘트가 겹쳐 녹음되면 속상해서 테이프를 풀었다 감았다, 다시 녹음했다.

누군가는 연필로, 누군가는 손가락으로 테이프를 되감았던 그 시간. 플레이 버튼 하나에 울고 웃던 그 감정의 진폭은 지금의 스마트폰으로는 결코 담을 수 없는 크기였다.
공테이프엔 “첫사랑”, “학창시절”, “겨울방학” 같은 이름이 붙었다. 아무리 지워도 다시 덮이는 추억처럼 한 번의 녹음이 내 청춘에 겹겹이 쌓여갔다.

돌아보니, 카세트테이프는 단순한 음악 저장 매체가 아니었다. 그건 내 마음을 저장하던 감정의 창고였고, 침묵 속을 흐르던 고백이었다.


지금 그 테이프들은 재생되지 않아도 여전히 내 마음 속에서 돌고 있다.
권오기 여행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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