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지역을 중시하는 다음 정부를 기대한다

2025-05-20

기시감이 있는 8년 전에는 장미와 함께 투표소에 갔지만 이번에는 다른 꽃이 맞이할 것이다. 정리되지 않은 혼란 속에 새로운 정부가 우선 처리해야 하는 일이 많겠지만, 그동안 미뤄왔던 여러 과제의 무게도 만만치 않다. 그중에는 예측할 수 없는 심각한 영향으로 위기라고 부르는 것들이 있다. 바로 기후변화, 식량안보, 인구감소 및 고령화다. 이 세 가지 위기는 중첩돼 있고 그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곳은 지역이다. 그래서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곳도 지역이다.

지역을 우선하고 지역을 중심에 두는 정치철학으로 로컬리즘(localism·지역주의)이 있다. 로컬리즘은 인류의 모든 조직은 원래 지역적이었으나 산업화를 거치며 지역을 벗어나 확장했다는 비판에서 시작한다. 로컬리즘은 지역에 중심을 둔 정치적 행위가 사회·경제·환경 등의 문제를 훨씬 선명하게 정의할 수 있고, 해결책도 쉽게 찾아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이유로 지역주민은 정치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실제로 행동하면서 주민 사이에 민주적이며 사회적인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로컬리즘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중앙집권적인 권력에 대응해 지방자치권을 강화하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로컬리즘은 지역적이고 작은 규모의 가치를 부여하고 강조하는 사회적 경향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식품을 산업적으로 생산해 다국적으로 상품화하는 패스트푸드에 맞서 농민시장, 공동제 지원농업, 공동제 텃밭, 슬로푸드 등에 찬성하며 지지한다. 유사하게 지역주민의 필요에 대응하는 소규모 장인, 소농 및 가족농, 가족기업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대형 금융기관보다 지역은행과 신용협동조합을, 대기업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업적 미디어보다 소규모 지역 미디어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로컬리즘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영국의 경제학자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슈마허다. 1973년 발간한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는 책에서 거대한 국가와 강력한 정치권력은 도시와 농촌 사이의 불평등을 확장할 뿐이며, 자유로운 개인이 삶을 영위할 수 있고 경제적·사회적으로 자주적인 지역을 목표로 하는 발전만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이야기했다.

로컬리즘과 관련해 의미 있는 것은 2011년 영국에서 제정된 ‘지역주권법(Localism Act)’이다. 이 법은 지방정부의 확대된 권한과 유연성, 지역주민의 정치 참여와 그에 따른 절차, 민주적이고 효과적인 지역발전계획, 지역사회 역량 강화 방안 등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주민 5%의 청원이 제출되면 지방의회는 조건 없이 주민투표를 해야 하는 주민청원제, 노숙인과 비위생적 환경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주택의 우선권을 부여하는 임대차 조항, 공동체 가치를 보유한 자산을 처분하는 경우 지역사회가 우선 구매할 수 있는 입찰에 대한 공동체의 권리 등 로컬리즘이 지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로컬리즘은 오래된 정치적 성향이지만 최근 기후변화와 식량, 지방소멸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정치적·사회적 대안으로 부상하며 주목받고 있다. 10여일 후 치러질 대통령선거를 통해 지역을 중시하고 로컬리즘을 바탕으로 중첩된 위기에 대응하는 새로운 정부의 등장을 기대해본다. 몇년 후 또 다른 대통령을 맞이할 때 또 다른 꽃을 볼 수 있을까 봐 두렵다.

임경수 마을공동체 협동조합 ‘이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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