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연임제든 중임제든 국정 도움 안돼… 차라리 단임제가 낫다” [세상을 보는 창]

2025-05-20

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

“대통령 재선만 좇다 국정 운영 미흡 우려

국민 성숙도 봤을 때 이제 내각제 가능

다수당·대통령이 함께 가야 정국 안정

절대권력돼 독재? 우리 국민 용납 안해”

“국힘, 尹 파면된 즉시 사과·출당했어야

이제와 태도 변화는 큰 변수 못 될 것

보수, 변화된 국민의식 대응 못해 실패

불평등·분열 해소 ‘국민통합’ 시대 과제”

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보수의 ‘킹메이커’ 역할을 맡아 박근혜·윤석열정부 창출에 일조했지만 매번 그들과 결별했다. 대통령이 되면 아첨하는 인의 장막에 갇혀 쓴소리에 귀를 닫았다고 했다. 윤석열정부가 시대착오적인 비상계엄으로 붕괴하면서 보수는 위기에 몰렸다. “정권을 잃고도 뒤이어 정권을 잡은 집단이 똑같은 유형의 잘못을 똑같이 되풀이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이란 원래 저렇게 우둔한 존재인가, 안타까움에 현기증을 느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김 이사장의 씁쓸한 진단은 대통령마다 실패해온 한국 정치를 직격한다.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 연구실에서 김 이사장을 만난 뒤 달라진 상황은 전화로 물었다. 그는 ‘보수주의 아버지’인 에드먼드 버크의 말을 인용하면서 “보수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혁명이 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6·3 조기 대선의 시대정신은 뭔가.

“불평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민은 갈가리 찢어져 있다. 비상계엄이 분열을 더 심화시켰다. 불평등과 분열을 해소해서 국민통합을 이뤄내는 것, 그게 지금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4년 연임 대통령제’, ‘국회의 총리 후보 추천’을 골자로 한 개헌 구상을 제시하며 개헌 이슈 선점에 나섰다.

“현시점에서 개헌은 안 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 개헌 발표를 한 것 같다.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의 행동을 봐야지 지금은 개헌 성사 여부를 예단할 수 없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도 ‘4년 중임 대통령제’ 공약으로 맞불을 놨다. 누가 승리하든 현행 5년 단임제를 바꾸자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4년 연임이든 중임이든 국가 운영에는 도움이 안 된다고 본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1년은 업무 파악하느라 보내고 그다음부터는 재선을 위해 뛸 텐데 국정운영이 제대로 되겠나. 차라리 단임제가 낫다.”

―국회가 총리 후보를 추천하도록 하는 방안은 대통령 권력을 국회가 분점한다는 차원에서 바람직한 방향 아닌가.

“여당이 다수당이면 의회 권력과 행정 권력이 일치된다. 그러면 정책의 일관성을 가질 수 있다. 국가의 시급한 현안들을 처리하기에도 용이하다. 반대로 여소야대가 되면 프랑스처럼 ‘코아비타시옹(cohabitation·대통령이 의회 다수당 인사를 총리로 기용하면서 구성되는 동거 정부)’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러면 정국이 안정되지 않는다.”

―그동안 개헌에 유보적이던 이 후보가 개헌 구상을 밝힌 것은 선거전략 차원인가.

“그런 차원만은 아닐 것이다. 의회 다수당과 대통령은 같이 가는 것이 국가의 장기적 발전과 정국 안정을 위해 필요하다. 여소야대가 되면 다수당이 행정부를 공격해서 박근혜, 윤석열정부처럼 행정부가 무너져 버리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 후보도 국정 안정을 위해서는 의회와 행정부가 같이 가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어떤 권력 구조가 바람직한가.

“내각제를 하면 저절로 행정 권력과 의회 권력이 같이 가는 체제가 만들어진다. 대통령 직선제를 채택한 1987년 헌법이 40년이 다 돼 간다. 이제는 우리나라 국민의 성숙도 등을 놓고 봤을 때 내각제를 채택할 때가 됐다고 본다.”

―김 후보가 최근 비상계엄을 사과하고 윤석열 전 대통령은 국민의힘에서 탈당했다. 보수에 등 돌린 유권자가 돌아올까.

“윤 전 대통령이 파면돼서 치러지는 대선이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이 나왔을 때 즉각 사과하고 윤 전 대통령을 출당 조치했어야 했다. 그래야 국민에게 지지를 호소할 명분이 생긴다. 그런데 본질에서 계엄에 찬성하고 탄핵에 반대하는 김문수 후보를 선출했다. 당은 3차에 걸친 경선 끝에 대선 후보를 선출해 놓고 당 밖 인사로 교체하려 했다. 비민주적 발상 아닌가. 사과든 탈당이든 큰 변수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남은 선거 변수는 김문수 후보와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단일화 정도인가.

“이준석 후보는 미래의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출마했다. 단일화하는 순간 그 이미지가 망가진다. 이 후보가 절대 안 할 거라고 본다. 두 후보는 윤 전 대통령 관련 입장도 차이가 크다. 설사 단일화해도 이준석 후보를 지지하는 표가 김 후보 쪽으로 가질 않는다. 이준석 후보가 끝까지 뛰면 이재명 후보에게 거부감을 가진 유권자의 표를 가져갈 수 있다.”

―지금 보수는 ‘폐족(廢族·조상이 큰 죄를 지어 벼슬할 수 없게 된 족속)’으로 전락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우리나라 보수는 세 번에 걸쳐서 무너졌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경제·사회 구조를 엉망으로 만든 게 김영삼정부였다. 그때 보수의 한 축이 무너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그 이전엔 상상도 못 할 ‘경제 민주화’나 복지 공약을 내놓고 변신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2012년 총선과 대선을 모두 이겼는데 대통령이 되고 나서 약속을 저버렸다. 결국 파면돼서 보수를 또 한 번 무너뜨렸다.”

―윤석열정부는 왜 실패했나.

“IMF 사태 이후 나타난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거치면서 악화일로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중소기업이 점점 더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윤석열정부가 이들을 제대로 챙겼다면 지난해 총선에서 참패는 안 했을 것이다. 그런데 재정건전성 타령만 하면서 아무것도 안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우리 사회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다.”

―보수가 시대정신에 어둡다는 의미인가.

“경제·사회 구조가 변하면 국민의 의식이 바뀌는데 우리나라 보수는 그에 대한 정치적 적응을 잘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실패한다. 박정희 정권 때부터 그랬다. 경제가 발전하면 경제적 능력만 커지는 게 아니다. 그 자체가 사회구조를 바꾸게 되고 사회구조가 변화하면 국민 의식이 변한다. 그러면 새로운 욕구가 발생한다. 정치가 그 욕구에 부응하지 못하면 붕괴할 수밖에 없다.”

―2021년 초에 “‘별의 순간’이 지금 보일 것”이라면서 윤석열 검찰총장을 대선판으로 이끌었다.

“윤석열 총장이 대선 후보가 되는 과정을 밖에서 도왔지만 대선 후보로 확정되자 태도가 확 달라졌다. 지난해 국민의힘 총선 참패 이후 방송에 나가 ‘윤석열 정권이 변화하지 않으면 임기 못 채운다’고 여러 번 경고했다. 내각 총사퇴를 해도 시원찮은 판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냥 갔다. 국민의 외면을 받고도 정신을 못 차린 것이다.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에선 윤 전 대통령 뜻과는 반대로 한동훈 체제가 들어섰다. 당에서도 버림받은 것 아닌가. 그런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이도 저도 못하니 계엄을 선포한 것이다.”

―왜 정권만 잡으면 불통 대통령이 되나.

“박정희 시절부터 여러 대통령을 경험해 봤지만, 기본적으로 대통령마다 사고방식 자체가 좀 잘못됐다.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는 인사들도 정직하지 않더라. 아첨꾼이 많다. 대통령이 옳은 얘기라고 받아들여도 그걸 실천하지 못하게 만든다. 결국 보수든 진보든, 대통령이 다 실패하고 만다.”

―무너진 보수를 어떻게 재건해야 하나.

“2020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이 총선에서 패배한 뒤 비대위원장으로 가서 당명도 국민의힘으로 고치고 대중 정당을 만들기 위해 애를 썼다. 그때 세 가지를 추진했다. 첫째 청년을 제대로 잡아라. 그리고 ‘서진(西進)정책’을 제대로 펴서 호남을 포섭하자. 셋째로 (탄핵당하거나 구속된) 박근혜,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든 데 대한 대국민 사과다. 그 바탕 위에서 2021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2022년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됐다. 그런데 윤석열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그 당은 자유한국당 시절로 돌아가 버렸다. 다시 국민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제 보수의 간판은 젊은 사람으로 세대가 확 바뀌어야 한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여파로 2017년 2월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이 바뀌었다.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 국민의힘 순으로 변경됐다.

―의회 다수당인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해 행정 권력까지 장악하면 ‘절대 권력’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입법과 행정을 다 장악했다고 해서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는 없다. 그건 우리 국민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그런 독재 상황으로 가면 국민이 가만히 안 둔다. 우리 국민은 세계 어느 나라 국민보다도 성숙도가 높고 역동적이다. 어떤 권력자도 자기 멋대로 하다가는 오래갈 수가 없다.”

조남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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