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활유 작업 중인데 빵이 그대로···‘노동자 사망’ SPC, 안전도 위생도 외면했다

2025-05-21

1000억 투자·안전경영위원회 출범 ‘자화자찬’

현장선 손가락 절단 사고도 잇따라

“안전보다 생산 우선 작업 분위기 여전한 탓”

SPC그룹 제빵공장에서 노동자가 또 기계에 끼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1000억원을 투자해 안전경영을 강화하겠다던 허영인 SPC그룹 회장의 약속이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윤활유를 뿌리는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참변을 당한 이번 사고는 현장에 포장 직전의 완제품이 있었다는 점에서 식품위생 논란도 일 것으로 예상된다.

21일 SPC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안전경영 레터’를 보면, SPC는 2022년 사망 사고 직후부터 지난해까지 835억원을 산업안전에 투자했다. 2022년 10월 경기 평택 SPL 제빵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끼임 사고로 사망하자 허 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하며 2025년까지 투자하겠다고 했던 1000억원 중 약 84%가 집행됐다는 것이다. SPC는 이 같은 소식을 알리며 “안전설비 확충, 장비 안전성 강화, 고강도·위험 작업 자동화, 작업환경 개선 등 산업안전 강화를 위한 투자를 적극 실천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SPC가 밝힌 유형별 투자금액은 고강도·위험 작업 자동화에 228억원, 안전설비 확충 225억원, 작업환경 개선 189억원, 장비 안전성 강화 148억원, 기타 45억원 등이다.

회사는 3년 전 사고 때 출범했던 안전경영위원회 활동도 소개했다. 위원장을 포함해 외부 위원 4명과 내부위원 1명으로 구성된 안전경영위원회는 지난 2월까지 15차례에 걸쳐 정기회의를 열어 안전경영 로드맵 추진 계획 등을 논의했다. SPC는 또 2023년부터 매년 전사적으로 안전경영 우수사례를 발굴해 포상 중이라고도 밝혔다.

그러나 SPC는 유명무실한 투자였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런 활동이 무색하게 2023년 8월 성남 샤니 제빵공장에서 50대 노동자가 반죽 기계에 끼여 사망했으며, 기계 끼임으로 인한 손가락 절단 사고도 잇따랐다. 이번에는 시흥 삼립 시화공장에서 50대 여성 노동자가 새벽 근무 중 컨베이어 벨트에 몸이 끼여 숨졌다.

SPC 계열사 생산라인에서 근무하는 A씨는 “예견된 사고들이다. 12시간 맞교대와 밤샘 근무에 기계 작동 중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에 차질을 빚지 않으려는 작업장 분위기가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생산라인을 멈추면 난리가 나니까 사고 피해자들도 기계를 멈추지 못했던 것”이라며 “조직 문화가 개선되지 않는 한 참변은 반복될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SPC 제빵 생산라인을 잘 아는 노동자들은 이번 사고 과정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경찰에 따르면, 피해 노동자는 컨베이어 벨트가 잘 돌아가도록 윤활유를 뿌리는 작업을 하다 상반신이 끼면서 사고를 당했다. 이 컨베이어 벨트는 갓 만들어진 뜨거운 빵을 30분가량 식히면서 다음 단계인 포장 라인으로 이동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윤활유를 뿌렸다는 것은 당시 컨베이어 벨트 작동이 원활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삼립 시화공장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크보빵’(KBO빵) 생산 시설로, 주문 물량을 맞추기 위해 24시간 가동됐을 것으로 식품업계 안팎에서는 보고 있다. 청소나 수리를 하기 위해서는 기계를 세워야 하지만 이럴 경우 사실상 전 생산 과정을 올스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시흥소방서가 공개한 사고 기계 사진을 보면 컨베이어 벨트에는 빵이 그대로 놓여 있다. A씨는 “포장 직전인 완제품 공정에서 기계가 삐걱대니 잘 돌아가게 하려고 윤활유를 분사했을 것”이라며 “말이 안된다. 윤활유가 빵에 묻을 수 있기 때문에 절대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도 “식품 제조 기계에 식품등급 윤활유를 분사하기는 하지만 모든 제품 생산이 끝난 후 설비 점검을 한다. 기계 가동 중 뿌리는 경우는 없다”며 “완제품이 있는 상태에서 윤활유를 분사하는 작업은 상식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강규형 전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SPL지회장은 “기계에 문제가 있으면 공무팀에서 라인을 멈추고 작업을 해야 하는데, 평소에도 고장이나 노후 등으로 문제가 있던 기계라 피해 노동자는 늘상 해오던 대로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강 전 지회장은 “위험한 기계인데 노동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데다 2인1조나 현장 지도자 배치 등도 지켜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며 “안전 시스템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았던 총체적 부실”이라고 지적했다.

SPC 측은 이에 대해 “현재 경찰 수사 중인 사안이라 답변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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