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축구계에서 선수의 ‘은퇴 후 파산’은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다. 디안 윈다스는 프리미어리그를 포함해 잉글랜드 4개 디비전과 스코틀랜드 1부를 거친 공격수로, 현역 시절 적지 않은 수입을 올렸다. 그러나 2009년 은퇴 후 불과 7년 만에 그는 16만 4000파운드(약 3억원)에 이르는 세금 청구서와 이혼 합의금으로 사실상 빈털터리가 됐다. 글로벌 스포츠 전문 매체 디애슬레틱은21일 축구 선수들이 은퇴한 뒤 빈털털이가 되시 쉬운지 이유와 원인을 구조적으로 분석했다.
윈다스는 디애슬레틱을 통해 “피자 가게에서 누군가 내 얼굴을 알아보고 ‘파산한 디안 윈다스’라고 말했다”며 “부끄러웠다. 은퇴 자체도 어려운데 파산까지 겪으니 정말 죽을 맛”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사연은 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데이비드 제임스, 웨스 브라운, 리 헨드리, 에밀 헤스키, 트레버 싱클레어, 숀 라이트-필립스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잉글랜드 대표 출신 선수들마저 파산 선고를 받거나 세금 체납으로 법원에 불려갔다. 디애슬레틱은 “이들의 공통된 문제는 세금 체납, 부실한 투자, 이혼, 그리고 과도한 소비 습관”이라며 “은퇴 후 수입이 급감하는 시점에 이 같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심각한 재정 위기를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2017년 U-17 월드컵에서 잉글랜드 주전 골키퍼로 활약한 커티스 앤더슨은 2022년 22세 나이로 프로 생활을 접고, 현재는 스포츠 재정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 그는 “클럽은 도박이나 음주에 대한 경고는 했지만, 재정 교육은 전무했다”고 회상한다. 그는 “처음부터 돈 관리 습관을 들였다면 선수들의 삶은 훨씬 쉬웠을 것”이라며 “28, 29세쯤 돼서야 비로소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 늦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전 리버풀 선수 라이언 바벨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는 “21살에 벤틀리, 25살에 롤스로이스를 샀지만 결국 가장 큰 지출은 생활 방식이었다”며 “고급 여행, 친구들 비용 대납 등 끝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학교를 일찍 그만두고 축구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돈을 관리할 지식이 부족했고, 주변 사람들조차 선수의 돈을 자신의 ATM처럼 여긴다”며 “한 번 돈이 끊기면 주변 사람들도 순식간에 사라진다”고 덧붙였다.
윈다스는 현역 시절 중 한 번, 영화 투자 사업에 참여했다. 유명 인사들의 이름이 투자자 명단에 올라 있었고, 그는 이를 믿고 큰 금액을 맡겼다. 그러나 수년 뒤 영국 국세청(HMRC)은 그에게 16만 4000파운드에 달하는 세금을 추징했다. 그는 “나는 평생 소득의 40%를 세금으로 냈다”며 “탈세를 한 게 아니라 나쁜 조언을 받았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웨스 브라운 역시 비슷한 사유로 HMRC의 세무 소송 대상이 되었으며, 그는 “큰 돈을 벌 때일수록 ‘올바른 사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앤더슨은 “세금 구조나 선수 보험, 중개 수수료 등 복잡한 요소들이 세금 코드에 영향을 미친다. 일반 회계사는 이걸 모르고, 5년 뒤 한꺼번에 청구서가 날아오면 결국 큰 타격을 입는다”고 설명했다.
이혼은 많은 선수들의 재정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 전 잉글랜드 대표 골키퍼 제임스는 이혼으로 300만 파운드를 잃었으며, 리 헨드리는 부동산 투자 실패와 이혼으로 인한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다 우울증과 자살 시도를 겪기도 했다. 전직 선수 지원 단체 XPro는 “은퇴 후 5년 내에 전직 선수 60%가 파산에 이른다”고 발표했으나, 전문가들은 실제 수치는 10~20% 수준이라고 본다. 하지만 프리미어리그에서 주급 10만 파운드를 받는 선수가 몇 년 만에 빈털터리가 되는 현실은 여전히 충격적이다. 앤더슨은 “문제는 교육이다. 모든 걸 알 필요는 없지만, ‘무언가 해야 한다’는 인식만 있어도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디애슬레틱은 “결국 해법은 명확하다. 구조적 재정 교육, 조기 개입,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의 도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수 스스로의 책임감과 준비”라며 “언제나 크리스마스는 아니다라는 말을 축구 선수들은 기억해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