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건강] 멈출 수 없는 현장, 그래도 지켜야 할 몸

2025-11-20

50인 미만 사업장 근골격계질환 예방 시급

현장 관리 공백 한계와 바꿀 수 있는 미래

‘아파도 참아야 하는 구조’가 고질적 문제

작은 실천, 큰 변화 “몸이 다르다”는 말의 힘

산업현장을 다니다 보면 규모가 작은 사업장일수록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문제가 있다. 근골격계질환 예방과 건강증진 ‘관리 공백’이다. 대기업처럼 전담 보건관리자나 체계적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아니고 늘 “생산이 우선”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건강관리는 하루하루 밀려난다. 나는 병원과 재활센터에서 1대1 재활·운동치료를 해왔고 이후 안전보건공단 민간위탁사업으로 180여 개 사업장을 방문하며 한 가지 사실을 확신하게 됐다. 근골격계질환은 체력이 약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작업환경이 만든 산업적 문제라는 점이다.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흔히 마주치는 장면은 통증을 참고 일하는 사람이다. 반복 동작·부적절한 자세·중량 취급 같은 유해 요인은 일상이고 납기 압박 때문에 작업을 잠시 멈추는 것조차 어렵다. 스트레칭이나 예방 교육을 제안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하다. “라인 멈추면 밀려요.”, “사람이 없어서요.” 결국 건강증진 프로그램은 단발성 행사로 끝나고 통증은 일상화된다. 근로자의 의지 부족이 아니라 예방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 구조적 문제다. 산업현장이 말하는 본질은 치료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물리치료사로 일하면서 나는 늘 통증을 ‘결과’로 보지 않았다. 통증은 ‘과정’에서 이미 결정된 신호다. 이 관점은 산업현장에도 정교하게 들어맞는다. 근골격계질환 예방은 관리의 문제이자 시스템의 문제다. 작업 전 5분 스트레칭조차 관리자 판단이 있어야 가능하며 작업대 높이 조정이나 공정 개선은 언제나 비용과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대부분의 소규모 사업장에서 예방이 지속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책임 주체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한계다.

현장에서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 연구원은 몇몇 소규모 사업장에 작업 전 10~15분 스트레칭을 도입했고 이를 하루의 ‘첫 과정’으로 정착시키는 성과를 만들었다. 그때 들려온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말이 인상 깊었다. “하는 날과 안 하는 날이 정말 달라요.”, “몸이 덜 굳어서 일이 편해졌어요.” 작업 중 1~2분씩, 하루 4~8회 실시하는 ‘틈틈이 스트레칭(TMS)’을 도입하자 생산 중단 없이 참여할 수 있어 호응이 훨씬 높았다. 짧은 움직임이지만 통증 민감도가 줄었다는 반응도 많았다.

큰 예산도 화려한 프로그램도 필요하지 않았다. 작은 실천만으로도 자신의 몸에 나타나는 변화를 체감했고 건강관리를 업무 일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근로자 참여형 예방관리’의 진짜 가치다. 앞으로 산업안전보건 정책은 작은 사업장도 ‘건강 중심’으로 유도해야 한다.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근골격계질환 문제가 반복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관리 공백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빈틈을 채우기 위해 산업현장에 필요한 것은 △적용 가능한 최소 단위의 건강관리 습관 일상화 △관리자 교육을 통한 예방 중심의 의식 전환 △근로자 참여형 프로그램 운영으로 자발적 실천 유도 △위험성 평가와 근골격계질환 관리 연계 △외부 전문가와 지속 가능한 협력 구조 마련 등이다. 작은 사업장일수록 한 사람의 건강이 생산성과 안전의 핵심이다. 일하는 사람이 “오늘은 덜 아프다”고 느끼는 변화가 사업장 품질을 올리고 안전을 지키며 미래를 만든다. 근골격계질환 예방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그 변화는 생각보다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전정아 연구원(사단법인 울산시민건강연구원)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