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후, 서울 필운동의 자주 가던 카페에 들렀는데 사장이 서비스로 에클레어를 주셨다. 단골 인증을 받아 뿌듯해하며 곧 자리를 양보하고 건너편 편집숍에 트레킹화를 사러 갔다. 맞는 사이즈가 없어 실망하고 나오려는데 40% 세일을 하는 다른 신발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 남은 한 켤레가 딱 맞았다. 말 그대로 ‘득템’이었다. 하루에도 여러 번 기대와 실망을 하며 산다. 뜻밖의 선물을 받으면 기쁘고, 기대했던 물건을 구하지 못해 실망했다 의외의 발견으로 기뻐한다.
기대를 하는 과정과 원하던 것을 얻었을 때를 비교해보면 무엇이 더 큰 즐거움을 주는 것일까. 쾌락은 도파민 분출에 의해 느껴지고, 그 결과 보상회로에 자극을 줘서 다시 그 행동을 하고 싶어지게 된다.
처음에는 도파민은 원하는 결과에 대한 반응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연구를 해보니 도파민 방출은 ‘이제 즐거운 일이 일어날 거야’라는 예상과 더 연관이 있었다. 도파민은 행동을 하기 직전 결과에 대한 기대로 더 크게 분출되고, 실제 예상한 결과가 일어나도 그만큼의 반응은 없었다. 처음 기대했던 것보다 큰 결과를 얻었을 때 가장 큰 쾌감을 느끼고, 기대보다 못하거나 늦게 결과가 오면 도파민 분비가 현격히 줄어 쾌감도 덜 느낀다. 그렇기에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선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갖고 싶다고 말했던 생일 선물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여행 가서 샀다며 전하는 작은 기념품이 더 고마운 이유다.
철학에서 도래성(到來性)이란 개념을 미래와 구분해 사용하는데 아직 오지 않았지만 도래할 수 있는 것, 현재를 넘어 다가오는 것이다. 열린 상태로 우리에게 갑자기 다가올 어떤 것을 의미한다. 시간의 계획성을 흔들어서 갑자기 나타나 역사적 사건이 되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 중요하므로 미래에 대한 열린 태도를 가지라는 것이다.
그런데 심리적으로 스트레스의 관점에서 보면 미래가 불확실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것은 위험 요소다. 게다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뜻밖의 사건이 벌어지면 두 배로 힘들어진다. ‘서프라이즈’가 기쁨과 두려움 양쪽에서 모두 일어난다니, 같은 상황에 대해 정반대 판단을 하게 된다. 한편에서는 뜻밖의 일이 벌어질 것을 기대하며 도래성을 강조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루틴과 안정성 안에서 예측한 대로 미래가 현실로 다가오기를 바라고 예상 범위 안에서 일이 일어나기를 원한다.
나는 어느 장단을 타야 하는 것일까. 재미없지만 통합적인 관점에서 봐야 할 듯하다.
기본은 안전함이 우선이다. 전체적으로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루틴을 만들어 일상을 살아가면 위협으로 감지할 일이 적어진다. 그 위에서 이제 뜻밖의 일이 생기기를 기대해보는 것이다. 없어도 그만이고, 있다면 좋다는 열린 마음으로 도래할 오늘과 내일을 맞는다.
이때 기대가 큰 만큼 결과에 대한 실망은 커질 수밖에 없으니 가급적 기대는 작을수록 좋다. 기대의 문턱이 낮을수록 뜻밖의 결과로 인식할 빈도가 늘어날 테니까 말이다.
연령별 삶의 만족도를 살펴본 연구에서도 비슷한 유형을 나타낸다. 경제학자 하네스 슈반트의 연구를 보면 20대에는 미래에 대한 기대가 10% 과대평가돼 30대에 들어서도 삶의 만족도가 낮았다. 그런데 50대가 되면 기대치는 이전보다 낮아지는 데 반해 만족도가 높아지니, 전체적 삶의 만족도가 역전돼 ‘생각보다 사는 게 괜찮다’고 여기는 사람이 늘어난다. 인생의 큰 흐름에서도 기대치를 살짝 낮추는 것만으로 만족은 커졌다.
앞날의 불확실함과 통제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스트레스를 주지만, 그건 그때 가서 대응하면 된다고 보자. 대신 기대를 낮춰 소소하고 자잘한 것을 바라면 뜻밖의 즐거움을 만나기 쉬워진다. 그게 하루를 괜찮았다고 여기게 한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하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