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멘터리 전쟁사’의 비밀… 임용한 박사의 공부와 고집 [차 한잔 나누며]

2025-05-19

조회수를 노린 자극적 콘텐츠가 범람하는 유튜브지만 예외도 있다. 역사학자 임용한 박사(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의 ‘토크멘터리 전쟁사’가 대표적이다. 낚시성 문구도 없이 8년 전 국방홍보원 유튜브 채널 KFN에 처음 공개된 시리즈 1회 ‘1부. 제1차 세계대전-1’은 현재 조회수 354만회. ‘28부 칭기즈칸의 정복전쟁’은 237만회, ‘37부 십자군 원정 1부’는 237만회를 기록 중이다.

숏폼이 대세인 시대에 한 시간 남짓 펼쳐지는 역사학자의 전쟁이야기에 많은 이가 열광하고 있다.

지난달 14일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난 임 박사는 “국방홍보원에서 전쟁사를 하자길래 옛날 ‘배달의 기수’처럼 장병 대상 정훈교육 영상을 만드는 줄 알았다”며 “유튜브가 그렇게 인기를 끌 줄 몰랐다. PD가 조회수를 언급했을 때 처음엔 그 개념조차 몰랐다. 그냥 내 페이스대로 했다”고 말했다.

“처음엔 군인들 대상으로 봉사한다고 생각했어요. 대중을 위한 거라고 했으면 안 했을 겁니다. 세계 전쟁사를 혼자서 다루는 건 힘들었지만, 병사들에게 간접 경험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었어요. 군 생활이 인생의 단절이 아니라 많은 경험의 기회라는 걸 강조하고 싶었죠.”

임 박사의 전쟁 이야기가 특별한 건 군사와 역사가 결합해서다. 양쪽 다 전문성이 강한 분야인데 이를 두루 꿰뚫고 해설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임 박사가 ‘역덕(역사마니아)’이자 ‘밀덕(군사마니아)’이었기에 나올 수 있었던 콘텐츠다. “어릴 때부터 역사를 워낙 좋아했어요. 그리고 전쟁사 책도 많이 보고 전쟁 영화를 무척 좋아했죠. 그래도 전쟁사를 하려던 것이 아니라 조선 국가 체제 정비 과정의 구조를 연구하는 게 목표였습니다. 조선 건국은 결국 100여년에 걸친 전쟁과 국제 정세 변화의 결과였거든요. 그런데 군사독재 시절을 거치다 보니 많은 지식인이 역사에서 전쟁이나 군대 역할을 무조건 배제했어요. 극단적으로는 오직 성리학자가 성리학 공부해서 만든 나라라고 가르쳤는데 말도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조선 건국의 군사적 측면이라는 남들이 하지 않던 걸 하게 됐죠.”

동·서양을 넘나드는 역사학자로서 최근엔 ‘손자병법’을 펴냈다. 고대 중국 병서의 가르침을 역사속 여러 전쟁의 현장에서 실증하다시피 해설한다. 이 역시 임 박사이기에 나올 수 있는 역사책이다. 임 박사는 “조직을 운영하다 보면 중심을 잃기 쉬운데 손자병법은 목표와 원칙을 분명히 해준다. 전쟁 예측은 스포츠 예측과 다르다. 전략적 목표가 분명해야 의미 있는 예측이 가능하다”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예로 들었다. “러시아의 이번 침공은 전략적 목표 설정부터 틀렸어요. 영토를 차지해도 유럽 전체의 적대감만 높였죠. 전략적 예측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후 표면적으로는 영토 획득이라는 전술적 목표를 달성했을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유럽 국가들의 정치적 결속과 러시아에 대한 군사·경제적 압박 강화라는 전략적 패배를 초래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애초 러시아의 이번 침공 목표가 무엇인지도 뚜렷하지 않은 점이 패착이다.

역사속에서 미래를 조망하는 임 박사에게 격동의 동북아 정세,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에 대해서도 물었다. 양안 관계는 당장 변화가 있기는 어렵지만 동북아 정세는 불확실해서 문제라는 답이 돌아왔다.

“중국이 현재 대만을 무력으로 통합하기는 어려워요. 내부 문제가 너무 크고, 국제적 이해관계가 복잡합니다. 대만 해협은 아시아 전체의 운명이 걸린 곳이어서, 군사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한반도 정세 불안의 근원은 예측 불가능성입니다. 합리적 분석과 실제 전쟁의 양상은 다를 수 있어요. 북한 문제도 그렇고, 전 세계가 얽힌 복잡한 상황에서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 내부의 갈등도 불안정성을 키우고 있다. 임 박사는 최근 국내 상황이 제2차 세계대전 직전 독일을 연상시킨다고 걱정한다. 사회 불만에서 비롯된 다양한 갈등이 오히려 정치권에 의해 증폭되고 폭발되고 있다는 우려다. 임 박사는 “지금 우리 사회는 극단화되고 있어요. 정치가 시민의 분노를 흡수하지 못하고 오히려 분노를 조장합니다. 지금이야말로 대화와 타협, 다원성 수용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런 경험이 부족하고, 정치권도 책임을 못하고 있죠.”

이토록 문명이 고도화된 시대에도 불행한 전쟁의 역사가 반복되는 비극을 역사학자는 어떻게 볼까. “역사는 인간 본성 때문에 반복됩니다. 다만 노력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역사를 통해 현실의 구조적 문제와 본질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한 역사를 업으로 삼아 그 길을 걸은 끝에 대중적 명성까지 누리는 행복에 관해 묻자 “아주 고난의 시기를 겪었는데 그때 단 한 번도 타협하지 않은 게 덕을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어떤 타협을 안 했냐면, 한순간도 공부를 놓지 않은 거죠. 심지어 ‘너는 글도 잘 쓰고 대중을 위한 역사학도 굉장히 필요하다. 논문 쓰고 공부하지 말고 아예 그쪽으로 나가라’고 권한 교수님도 계셨어요. 절대 안 된다고 했죠. 그런 것 때문에 경제적으로 힘도 들었지만 고집을 꺾지 않은 덕분에 토크멘터리전쟁사 등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한국사하는 애가 왜 서양사, 동양사를 보냐’는 거죠. 그러니까 진짜 몇 배로 힘들어요. 때로는 역사학계에서 이상한 사람 취급받기도 하다가 이제는 극복하고 거꾸로 존중을 받는데 이전에는 ‘이러지 말라’는 얘기를 엄청 많이 들었어요.”

박성준 선임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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