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착상태였던 한미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고, 미국과 중국 간의 해빙 모드를 확인한 건 이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대표적인 성과다. 하지만 관세를 낮추는 대가로 약속한 대미 투자는 규모를 떠나 한국 경제에 큰 부담이다. 미·중 갈등도 유예일 뿐 봉합이 아니다.
APEC 정상 합의문인 ‘경주선언’에 다자무역을 상징하는 세계무역기구(WTO) 관련 문구가 빠졌다. 자유무역 대신 ‘각자도생’이란 글로벌 뉴노멀을 재확인한 무대였다.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가장 효과적인 진로를 찾으면서 국가별∙분야별로 어떻게 협력하고, 견제할지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할 과제를 안게 됐다.

지난 1일 폐막한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올해 세계 경제를 수렁으로 몰아간 미국발 관세전쟁은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경제적 측면에서 이번 정상회의의 최대 성과로 볼 수 있다.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은 희토류 수출통제를 유예하고 합성 마약 펜타닐의 미국 유입 차단에 협력하는 데 동의했다. 대신 미국은 중국에 부과해온 관세를 10%포인트 인하하기로 했다. 글로벌 패권 경쟁을 벌이는 양국 간 정면충돌을 피한 것만으로도 의미는 작지 않다.
하지만 APEC 정상들이 내놓은 ‘경주선언’엔 통상 포함됐던 WTO와 다자무역체제를 지지한다는 표현이 빠졌다. 오히려 각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우리는 글로벌 무역체제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음을 인식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세계 경제가 수십 년간 이어온 자유무역 대신, 미국과 중국을 두 축으로 하는 새로운 무역질서에 적응해야 할 시간이 찾아왔다는 의미다.
미국과 중국, 어느 경제권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한국으로서는 최종 선택의 순간을 준비해야 하는 딜레마를 재확인했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중 관계의 양상이 달라졌다는 인식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미국이 공격하고 중국이 방어하는 방식이 아니라, 중국이 미국에 맞서거나 선제공격하면서 대등한 관계에서 맞서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당장은 미·중 사이에서 적절한 사잇길을 찾는 게 한국 경제가 마주한 중대한 과제다. 동시에 수출에 비해 크게 부진한 내수시장 기반을 확충하고, 미·중 위주 무역에서 벗어나 유럽연합(EU)·동남아·일본 등으로 시장을 다변화하는 오랜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지극히 실리주의가 필요한 시대”라며 “밸류체인에서도 경쟁 영역에서는 차별화하고, 협력할 부분은 협력하는 식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로 좁혀보면 한·미 관세 협상 타결로 급한 불을 껐다. 양국은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의 3500억 달러(약 500조원) 투자 패키지 중 2000억 달러(약 286조원)를 현금 투자로 하되, 연간 투자 상한을 최대 200억 달러로 하는 투자 방안에 합의했다. 한국의 직접 투자 규모는 지난 7월 30일 한미 관세 협상 합의 후 후속 논의 과정에서 최대 쟁점이었다.

당장 관세 부담을 경쟁국과 같은 수준으로 낮추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2000억 달러는 내년 정부 예산(728조원)의 약 40%에 달하는 엄청난 돈이다. 정부는 외화자산 운용 수익 등을 활용해 순차적으로 충당한다는 계획이지만 장기적으로 정부 재정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일본과 달리 연간 한도를 설정한 건 성과지만 부담은 부담이다. 허 교수는 “미국이 한미 FTA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이어서 아쉬움이 있지만 트럼프 시대에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합의 내용 역시 불씨가 남아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이 “반도체 관세는 이번 합의의 일부가 아니다”라고 주장하자, 대통령실 관계자는 “양국은 반도체 관세를 대만보다 불리하지 않게 적용하기로 합의했다”는 기존 발표를 재확인했다. 러트닉 장관이 “한국이 시장을 100% 완전 개방하는 데 동의했다”고 주장한 것을 두고 ‘농축산물 추가개방을 막았다’는 한국 입장과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오자, 대통령실이 반박하기도 했다.
정부는 조만간 이 같은 내용을 반영한 팩트시트를 공개할 예정이다. 지난달 31일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관세 협상 투자 양해각서(MOU), 관세 협상과 투자와 통상에 관한 팩트시트는 한·미 당국 간 거의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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