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은 이제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문명의 기반이 되었다. 산업과 과학의 언어를 넘어, 사회와 문화, 교육의 언어로 침투한 AI는 인간의 사고 구조와 생활방식을 재편하고 있다. AI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며, 법률문서를 요약하는 시대에 우리는 기술이 아닌 '인간의 미래'를 논해야 한다. 특히 그 미래의 중심에는 AI와 함께 성장해 갈 'AI 네이티브 세대(AI Native Generation)'가 있다. 이들은 AI가 이미 일상적 환경으로 존재하는 세계에서 태어나, 지식보다 대화, 검색보다 생성, 암기보다 탐구(exploration)를 익히며 자라갈 세대다. AI는 이들에게 도구가 아니라 공기와 같다. 우리의 미래와 미래의 주역인 미래세대를 위해 고민해야 할 물음은 그들이 AI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가 아니라, AI와 함께 어떤 인간으로 성장할 것인가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결국 현재를 살고 있는 모든 과거 세대들에게도 유효할 것이다.
AI 네이티브 세대가 살아가는 환경은 이미 학교의 교실 안에서 시작됐다.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교사는 AI 교과서와 AI 튜터를 통해 학생의 수준과 진도를 분석하고, 학생은 AI 튜터와 대화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다. 더 발전하면 표정과 음성, 행동 패턴을 읽는 시스템은 집중도와 감정 상태를 분석해 학습경험을 개인화할 수 있다. 교육 현장에서의 AI 활용의 확대는 일면에서는 교육 혁신의 성공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AI를 매개로 한 교육이 학생의 데이터를 전면적으로 수집·처리하는 구조 위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학생의 음성, 표정, 시선, 반응 같은 비정형 데이터가 AI 모델의 학습 재료가 되는 현실에서, 이 세대는 학습의 주체이자 동시에 데이터의 원천이 되고 있다.
AI 네이티브 세대의 교육환경은 기존의 법과 제도가 상정하지 못한 영역에 진입하게 된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은 아동의 개인정보보호를 규정하지만, AI 교재·플랫폼이 수집하는 데이터의 성격과 처리 목적, 2차 활용 가능성을 명확히 규율하지 않는다. 교사는 '교육의 주체'이지만, 데이터 처리의 주체는 사실상 민간 플랫폼 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 사이에서 학생의 데이터는 정부나 교육기관, 교사와 기업, 시스템을 오가며, 누구도 그 흐름을 완전히 통제하거나 설명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AI가 실현하는 '개인화된 교육'은 편의와 효율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아동의 학습과정을 감시와 통제의 대상으로 만들 위험을 내포한다. 우리는 지금 AI를 통한 교육 혁신과 디지털 감시의 경계선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요구되는 것은 단순한 개인정보보호를 넘어선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AI 네이티브 세대를 위한 법제도는 '보호'와 '성장'을 동시에 보장해야 한다. 기술의 발전을 막는 규제가 아니라, 기술을 사람의 성장 방향과 조화시키는 규범이 필요하다. 그 핵심이 바로 AI 리터러시다. AI 리터러시는 단순한 기술 숙련이 아니라 AI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데이터의 한계를 인식하며 결과를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다. 다시 말해 AI를 '잘 쓰는 법'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AI를 '올바로 이해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AI 리터러시의 첫걸음은 이해다. AI가 데이터를 학습하고 패턴을 추론하며 결과를 만들어내는 원리를 알아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학생은 기술의 소비자일 뿐, 창의적 주체로 성장할 수 없다. 두 번째는 비판적 사고다. AI의 답을 절대적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 결과는 어떤 데이터에 근거했는가?”, “어떤 편향이 개입되어 있는가?”를 묻는 태도를 기르는 것이다. 세 번째는 윤리적 감수성이다. AI는 데이터를 통해 인간의 행동을 예측하고 모방하지만, 그 과정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 학생들은 기술을 통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마지막으로, 창의성과 자율성이 중요하다. AI가 제시한 답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거나 독창적인 사고를 이끌어 낼 수 있는 힘, AI와 공존하지만 독자적인 인간으로서 자율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 그것이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사고와 행동의 자유다.
그러나 이러한 리터러시를 개인의 역량으로만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는 교육정책과 법제도의 뒷받침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지금의 교실에서 AI 리터러시 교육은 지극히 후순위이고 선택적이고 실험적일 수밖에 없다. 교사는 기술활용 교육에는 익숙할 지 모르지만 알고리즘의 윤리나 데이터 보호의 원칙을 가르칠 체계적 지원은 부족하다. 따라서 AI 윤리와 리터러시 교육의 제도화가 시급하다. 초·중등 교육과정에 'AI와 인간' '디지털 윤리' '데이터 권리'와 같은 교육과정을 신설하거나 기존 사회·과학·정보 과목 속에서 통합적으로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 교사 연수 과정에도 AI 데이터 윤리와 보호 관련 교육이 포함돼야 한다. 교사가 AI를 단순한 학습도구가 아닌 '교육적 관계의 매개체'로 이해할 때 비로소 AI 리터러시는 교실 속에서 생명력을 갖는다.
AI 네이티브 세대를 위한 법제도의 핵심은 데이터 주권과 미래 세대인 아동·청소년의 AI 기본권 보장이다. 지금의 아동·청소년은 데이터 생산자이자 동시에 감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들이 생성한 데이터가 AI의 학습 재료로 활용되면서 자신에 대한 정보가 통제 밖으로 나갈 가능성도 커졌다. 이제는 단순한 보호조항이 아니라, 학생 본인이 자신의 데이터에 접근하고 처리의 의미를 평가하고 능동적으로 선택권이나 정정·삭제 요구권을 행사하며 AI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권리를 실질적·구체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청소년 데이터 주권은 '미래세대의 AI 기본권'으로 헌법적 가치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AI 아동·청소년 권리 보장법'(가칭)을 고려할 시점이다. 단편적인 개인정보보호를 넘어 아동·청소년을 위한 디지털 인권, 교육데이터의 안전한 이용·AI 알고리즘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포괄해야 한다. 특히 교육용 AI 시스템의 데이터 수집·보존·이용 기준을 명확히 하고, 학부모와 학생이 데이터 처리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알고리즘 오류나 편향으로 불이익이 발생할 경우, 이를 시정할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AI 시대에 아동·청소년이 올바르게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 AI 플랫폼이나 AI 교육기업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교육 데이터는 상업적 자산으로서의 중요성이 점점 더 강조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공익적·공공적 성격이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AI 기업은 교육 데이터나 아동·청소년 데이터를 수익의 도구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사회적 신뢰의 기반으로 관리해야 한다.
AI 네이티브 세대를 위한 정책은 기술 적응이 아니라 공진화(co-evolution)의 관점에서 설계돼야 한다. 인간과 AI가 함께 성장하고, 서로의 한계를 보완하는 관계로 발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와 사회는 세 가지 방향을 명확히 해야 한다. 첫째, 포용적 AI 교육정책이다. 모든 학생이 AI 기술과 리터러시에 접근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AI·디지털 격차는 곧 사회적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둘째, 참여적 거버넌스다. 청소년이 AI 정책의 논의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창구를 만들어야 한다. AI 윤리위원회나 디지털 시민위원회에 청소년 위원을 포함시키는 것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셋째, 국제 협력과 기준 조화다. 한국은 OECD의 AI 원칙과 UNESCO의 'AI 윤리 권고' 등 국제적 규범을 반영하면서, 한국형 교육윤리 모델을 마련해야 한다. 교육 분야에서의 'AI 윤리 헌장'과 '아동·청소년 권리장전'을 제정해, 기술·인권·창의성의 균형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
이 모든 변화의 목적은 단 하나, AI 네이티브 세대가 기술의 수동적 소비자에서 주체적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들의 학습 데이터와 경험이 AI의 발전에 기여하듯, AI 또한 그들의 잠재력을 확장시키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 AI 시대의 법과 제도는 그들의 자율성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울타리여야 한다.
AI의 미래는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인간이 AI를 설계했지만, 이제 AI가 인간의 사고와 문화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AI 네이티브 세대를 위한 법과 제도는 단순한 기술 규율이 아니라, 인간다움의 경계를 다시 세우는 작업이다. AI 리터러시를 통해 비판적 사고를 기르고, 다양성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교육을 실현하며, 데이터 주권이나 AI 기본권을 보장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일은 기술의 진보보다 더 어려운 과제이지만, 그만큼 더 시급한 일이다.
결국 AI와 인간의 관계는 경쟁이 아니라 공존이며, 공존의 핵심은 신뢰다. AI 네이티브 세대가 AI를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의 데이터와 기술을 통제하며,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회--그것이 진정한 AI 선도국가의 모습이다. 법과 제도는 그 신뢰의 언어로서, 기술의 속도에 인간의 철학을 덧입히는 장치가 돼야 한다.
AI의 미래를 논하는 일은 곧 인간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인간의 미래는 AI 네이티브 세대에 달려있다. 우리가 오늘 어떤 교육과 법제를 세우느냐에 따라, AI 네이티브 세대는 기술에 종속된 세대가 될 수도, 기술을 넘어선 세대가 될 수도 있다. 지금은 보호와 규제의 시대를 넘어, AI와 인간이 함께 진화하는 사회적 계약을 새로 써야 할 시기다. 그 계약의 핵심에는 미래 세대에 대한 신뢰와 책임이 있다. AI 네이티브 세대를 위한 법과 제도는, 결국 우리 사회가 스스로의 인간성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에 대한 약속이자, 미래를 향한 가장 깊은 윤리적 선언이 될 것이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 kjchoi@gachon.ac.kr
〈필자〉가천대 인공지능(AI)·빅데이터정책연구센터장이다. 데이터·정보통신기술(ICT)·개인정보보호 법 연구자로 관련 법·정책 전문가다. 현재 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 한국정보법학회 수석부회장, UN 국제상거래법위원회 정부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개인정보보호법학회장도 역임했다. 데이터와 ICT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법·제도 개선과 정책 추진에 기여하고 있다.
 AI 시대를 넘어 100년을 준비하는 교육개혁](https://img.newspim.com/news/2025/11/14/251114152525778_w.jpg)
 AI 시대를 넘어 100년을 준비하는 교육개혁](https://img.newspim.com/news/2025/10/30/251030211438104_w.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