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가 5일 앞으로 다가왔다. 2일 교황청 공식 바티칸뉴스에 따르면 7일 제267대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교황 선출 회의)에는 다섯 대륙 71개국에서 온 135명의 선거권을 가진 추기경들이 소집된다. 대륙별로는 유럽 출신 추기경 53명, 아메리카 대륙 출신 추기경 37명(북미 16명, 중미 4명, 남미 17명), 아시아 대륙 출신 추기경 23명, 아프리카 대륙 추기경 18명, 오세아니아 대륙 출신 추기경 4명이다. 다만 이중 2명은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한다.
진보 대 보수로 짜인 차기 교황 선출 구도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서임된 추기경이 5명, 베네딕토 16세 교황으로부터 추기경으로 서임되고 선거권을 갖는 추기경은 22명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서임된 추기경은 108명이나 된다.

새 교황 선출 여부를 연기를 통해 세상에 알리는 굴뚝도 시스티나 성당 지붕에 2일 설치됐다. 콘클라베 기간 격리된 추기경들은 3분의 2지지를 얻는 후보가 나올 때까지 매일 투표해야 한다.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올라오면 교황이 선출되지 않았다는 의미고, 흰 연기가 올라오면 비로소 새 교황이 결정됐다는 뜻이다. 2005년과 2013년 콘클라베는 모두 투표 둘째 날 결과가 나왔다.
유럽 주요 언론은 이번 콘클라베를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산을 계승하려는 개혁 진영과, 전통주의 복귀를 주장하는 보수 진영 간 6파전 구도로 분석하고 있다. 콘클라베에는 공식 입후보 개념이 없지만 주요 언론들은 관례적으로 ‘파파빌레’라 불리는 유력 후보군을 점쳐왔다.
특히 프란치스코의 개혁 흐름을 이어가되, 유럽과의 균형도 필요한 상황에서 아프리카·아시아의 인구 증가와 신자 확대가 교황 선출 구조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다. 여기에 보수-진보 간 대립이 격화되면서 중도·타협형 후보가 부상할 수 있는 여건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서임 추기경이 다수지만 개혁 세력의 분산으로 표 결집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6파전 구도가 형성됐다.
개혁 진영에서는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67·필리핀) 추기경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실상 후계자로 꼽힌다. 전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장관인 그는 아시아 출신 최초의 교황이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따뜻한 리더십과 대중 친화력으로 세계 신자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다.
같은 개혁 진영의 마테오 주피(69·이탈리아) 추기경은 볼로냐 대주교이자 이탈리아 주교회의 의장으로 평화 중재와 사회 대화에 탁월한 역량을 보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탈리아 출신임에도 개혁 노선에 서 있으며, 전통과 개혁 양 진영을 아우를 수 있는 중도 성향의 타협형 인물이다.
아프리카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프리돌린 암봉고 베순구(65·콩고민주공화국) 추기경도 개혁 진영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카푸친 작은형제회 출신으로 환경 보호와 사회 정의, 인권 문제에 강한 메시지를 던져왔다. 흑인 교황 가능성을 상징하는 후보로서 아프리카와 남반구 교회 대표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보수 진영에서는 역시 피에트로 파롤린(70·이탈리아) 추기경이 교황청 국무원장으로서 행정과 외교 경험을 모두 갖춘 실세 인사로 꼽힌다. 로마 교황청의 안정을 강조하며 ‘이탈리아계 교황 복귀론’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바티칸 내부의 행정 관료들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얻고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페테르 에르되(72·헝가리) 추기경은 동유럽 대표 인사로서 강한 보수 성향과 교리 중심주의로 알려져 있다. 교회법 권위자이자 전통 교리를 중시하는 그는 유럽 보수파 사이에서 교황직 적임자로 거론된다. 그러나 카리스마와 대중적 영향력 측면에서는 다소 약점을 가진다.
이들과 함께 거론되는 피에르바티스타 피차발라(60·이탈리아) 추기경은 예루살렘 라틴 총대주교 출신이다. 보수 진영 내에서도 실용적이며 유연한 접근을 중시하는 인물이다. 중동 지역에서의 경험과 다문화 이해도 덕분에 양 진영의 중재자 또는 ‘타협형 교황’ 카드로 부상하고 있다.

서구 정신적 지도자 선출을 앞둔 외신들은 다양한 분석을 쏟아내고 있다.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1일(현지 시간) “강경 보수 가톨릭 신도들은 다음 교황이 자신들의 세계관에 더 부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보수주의자들은 동성결혼과 이혼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입장, 이민자 옹호, 그리고 중국의 가톨릭 주교 임명에 발언권을 갖게 한 협정에 분노했다”고 보도했다.
더타임스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 미사 수일 후 소집된 추기경 총회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공개적 비판이 다수 나왔다. 보수파로 분류되는 조셉 젠 추기경(홍콩)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회 관련 문제를 논의하는 교황 자문 회의체인 '시노드(Synod)'에 성직자뿐 아니라 평신도를 참여시켰던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고 한다. 베니아미노 스텔라 추기경(이탈리아)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모나 브람빌라 수녀를 사상 최초로 교황청 장관에 임명한 데 대해 "교회의 오랜 전통을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소셜미디어(SNS)상에는 타글레 추기경이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봐(Imagine there's no heaven)'라는 가사가 있는 존 레논의 '이매진'을 부르는 2019년 영상이 화제가 됐다. 다만 타글레 추기경은 해당 문구를 빼고 노래를 부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탈리아 일간 코레에레델레세라는 이것이 타글레 추기경 교황 선출을 막기 위한 보수주의 측의 공격일 수 있다고 봤다.

미국의 가톨릭 보수파가 콘클라베에 영향력을 미치려 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폴리티코는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전부터, 자금력이 강한 미국 기반 보수적 가톨릭 단체들이 극우 정치인들과 협력해 가톨릭 교리와 민족주의를 결합해 홍보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보수파 내 확고한 리더십을 구축한 주자가 뚜렷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정면으로 맞섰던 조지 펠 추기경이 2023년 선종한 뒤로는 확실한 지도자가 없다는 것이다. 폴리티코는 "강경파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지만 콘클라베 표 계산을 고려하면 다음 교황이 자기들 중 한 명이 될 것이라는 믿음은 별로 없다"고 했다.
6명의 파파빌레 외에도 프랑스의 장-마르크 아벨린(마르세유 대주교)이나 포르투갈의 톨렌티노 멘도사 추기경 등 중도개혁 성향의 잠재 후보들도 일부 거론된다. 그러나 언론들은 대체로 “뾰족한 선두 없이 다수 후보가 경합”하는 구도로 보고 있다. 실제 최종 당선자는 이들 중 일부의 표가 결선 투표에서 합쳐지는 절충 인물일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2013년 콘클라베 당시 1차 투표 전에는 유력 후보 반열에 들지 않았으나 최종 교황이 되었다.
박성준 선임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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