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우산 등 자선단체들이 이끄는 ‘한국형 레거시 10’

“제도적 기반이 마련될 경우, 유산을 기부할 의향이 있으십니까?”
초록우산이 지난달 기관의 중·고액 후원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유산기부에 대한 기부자 인식’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2%는 ‘기부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현실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국내 유산기부액은 전체 기부금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미국과 영국에서 유산기부가 전체 기부의 주요 축으로 자리 잡은 것과 대조적이다.
기부자들은 왜 선뜻 유산기부를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는 걸까. 이번 조사에서 유산기부를 망설이게 하는 주된 요인으로는 ▶세제 혜택의 부족(34%) ▶상속인과의 관계 악화 우려(27%) ▶복잡한 법적 절차(16%) 등이 꼽혔다. 정수영 초록우산 임팩트기금본부장은 “기부자들이 유산기부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라, 제도와 환경이 기부자의 결정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기부하면 세금이 줄어들까?”
유산기부의 가장 큰 장벽은 세제 혜택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정 본부장은 “현장에서 기부자들이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은 ‘유산기부를 하면 상속세가 얼마나 줄어드느냐’는 것”이라며 “좋은 일을 하고 싶어도 가족의 상속세 부담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결정을 망설이게 된다는 반응이 많다”고 말했다.
현행법에서는 유산기부를 해도 세금이 바로 줄지 않는다. 세금을 계산하는 기준이 되는 전체 재산 금액(상속세 과세액)에서 기부한 금액을 제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기부자가 체감하는 절세 효과는 크지 않다. 이 같은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대안으로는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한국형 레거시 10’ 제도가 거론된다. 상속재산의 10%를 기부할 경우 과세가액 조정에 그치지 않고, 최종적으로 납부할 세금 자체를 일정 비율 감면해 주는 구조다. 영국의 ‘레거시 10’ 제도를 한국에 맞게 설계한 제도로, 영국에서는 2012년 제도 시행 이후 유산기부가 크게 늘었다. 2024년 기준 약 45억 파운드(약 8조6000억원) 규모로 주요 자선단체 모금액의 약 30%에 이른다.
초록우산과 한국자선단체협의회 등 주요 단체들은 제도 도입을 촉구하고 사회적 공감대 확산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달 안에는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같은 내용의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할 예정이다. 세제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국 사회 특성을 고려할 때 ‘유산을 기부하면 세금이 실제로 줄어든다’는 명확한 신호를 준다면 유산기부 활성화의 실질적인 전환점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가족과의 갈등을 피할 수 있을까?”
두 번째 이유는 상속인과의 관계에 대한 우려다. 실제로 유산기부 의지는 있으나 자녀·형제 등 가족과의 갈등, 유류분 분쟁 가능성을 걱정해 결정을 미루는 사례가 적지 않다. 현행 제도에서는 공익법인에 기부한 재산도 유류분 산정 기준에 포함되기 때문에 사후에 유류분 반환청구가 제기될 경우 기부 재산을 둘러싼 분쟁을 피하기 어렵다. 정 본부장은 “공익법인에 기부한 재산을 유류분 산정에서 제외하는 제도 보완이 이뤄진다면 기부자의 의사를 명확하게 보호하면서 가족 간 분쟁을 예방하는 효과적인 장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가족 간 갈등이 깊은 상황에서 재산이 더 큰 분쟁의 원인이 되지 않도록 유산기부를 선택하기도 한다. 이 경우 유언대용신탁·기부신탁 등 신탁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제3자인 신탁사와 공익법인이 정해진 원칙에 따라 재산을 관리·집행하면 재산 귀속을 둘러싼 직접적인 충돌을 완화하고, 기부자의 의사와 가족의 최소한의 권리를 동시에 보호할 수 있다.
“유산기부 절차는 왜 이렇게 복잡할까?”
복잡한 절차 역시 유산기부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꼽힌다. 유언장 작성과 공증, 상속세 신고, 부동산이나 비상장주식 정리 등 여러 절차가 한꺼번에 얽혀 있기 때문이다. 가족 관계나 건강 상태, 자산 구조 등 개인 상황에 따라 고려할 내용도 달라 유산기부는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초록우산과 같은 공익법인에서는 법률·세무·금융 전문가와 협력해 상속 전반을 아우르는 맞춤형 상담과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정 본부장은 “유산기부의 부담을 전문가들이 함께 나누는 구조가 갖춰지면 유산기부는 충분히 안전하고 실현 가능한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초록우산 설문에서는 유산기부의 잠재력도 확인됐다. 유산기부를 고려하는 응답자 중 52%는 “재산의 10~30%를 기부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30~50%라는 응답도 20%에 달했다. 유산기부가 활성화된 미국과 영국에서 상징적 기준으로 여겨지는 ‘유산의 10% 환원’과 비교해도 낮지 않은 수치다. 기부금 사용처로는 국내 복지(48%)와 교육(15%)을 선호하는 응답이 높게 나타나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고 다음 세대를 지원하고자 하는 기부자들의 의지도 드러났다. 황영기 초록우산 회장은 “유산기부에 세제 혜택을 도입할 때 단기적인 세수 감소만을 볼 것이 아니라, 기부 확대로 사회적 부담이 완화되는 효과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가상자산과 주식, 보험, 부동산 등 기부 대상 자산이 다양해지고 있는 만큼, 이를 포용할 제도적 기반 마련도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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