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집요한 ‘하버드 때리기’가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30일(현지시간) 미 정부가 하버드대 유학 비자를 신청하는 외국인의 온라인 활동 검증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미 국무부는 지난 27일 SNS 심사 절차를 도입할 때까지 모든 유학 비자 신규 인터뷰를 중단하라고 전 세계 외교공관에 전문을 보냈다. 그런데 이후 또다시 전문을 보내 “하버드대에 오기 위해 비이민 비자를 신청한 모든 사람”을 콕 찍어, 이들의 온라인 활동부터 철저히 들여다보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미 하버드대에 거액의 연구 지원비를 삭감한 트럼프 정부는 대학 재정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외국인 유학생 유입을 차단함으로써 하버드대의 손발을 묶으려 하고 있다.
이번 조처는 미 전역의 다른 대학으로 확대될 수 있는 ‘시범 프로그램’이라고 폴리티코는 설명했다. 하버드대를 본보기 삼아 전통적으로 ‘리버럴’ 성향이 강한 미 대학들을 길들이려는 의도다. 계획은 통하기 시작했다. CNN은 다른 미 대학들이 하버드대처럼 되지 않기 위해 백악관과 물밑 접촉 중이라고 보도했다.
문제는 ‘트럼프 VS 하버드’의 싸움이 단순히 미국의 과학 경쟁력을 약화한다거나, 하버드대가 가진 세계 최고의 ‘명문대’ 지위가 흔들리는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학 학술지 네이처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의 하버드대 연구 지원금 삭감은 1000여건(24억달러·약 3조3200억원)인데, 이 중 대다수가 의료 분야에 집중돼 있다.
기관별로 살펴보면, 미 국립보건원(NIH)의 지원금 삭감은 600건(22억달러·약 3조440억원)에 달한다. 미 국립과학재단(NSF)이 193건(1억5000만달러), 미 국방부가 56건(1억500만달러)인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인 규모다. 하버드 의대에 따르면, 전체 연구의 약 75%가 정부 지원을 받고 있다. 하버드대는 530억달러(약 73조원)의 기금을 보유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대학이지만, 연방 정부의 지원이 한순간에 끊길 경우 의료 연구에 엄청난 타격이 불가피하다. 현재 하버드 의대가 축적해 놓은 예비비는 3900만달러(약 540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버드대는 단순한 대학이 아니라 기초과학 연구의 중추 역할을 해온 세계 최고의 연구기관이다. 이 대학이 오랫동안 전 세계 의료 연구를 선도해 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하버드 연구 기능이 망가지는 것은 한동안 전세계 의학 연구의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의학 기술 발전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는 환자들의 생명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어떤 연구들이 중단 위기에 놓여 있을까. 하버드 의대와 브리검 여성병원 교수인 데이비드 월트의 루게릭 연구가 그중 하나다. 그는 트럼프와 하버드의 싸움이 본격화된 지난 4월, 미 보건복지부로부터 갑작스런 e메일 한통을 받았다. 연구 지원금을 즉시 취소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월트 교수는 불과 석 달 전 의료연구에 대한 공로로 미 대통령이 수여하는 국가 기술 혁신 훈장까지 받은 터였다.
그의 연구는 루게릭병의 조기 진단 및 치료법에 대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약 3만명의 루게릭 환자가 발생한다. 월트는 “지난 8개월 동안 만든 연구 시료들을 모두 못 쓰게 될 판”이라면서, 한번 연구가 중단되면 쉽게 재개되기 어렵다고 CNN에 말했다. 그는 “이번 연구 중단은 인명을 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하버드대 루드비히 암센터 소장인 조앤 브루게 역시 연구 보조금 지원 중단을 통보받았다. 그는 유방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초기 전구체를 미리 발견하고 이를 방지하는 치료법을 개발 중이었다. 브루게는 “초기 전구체로 추정되는 세포 발견에 거의 다다른 상태였는데, 미국인의 건강에도 큰 영향을 미칠 중요한 연구에 대한 지원금이 전면 삭감될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PBS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재단이나 기업과의 파트너십만으로는 연구 규모를 감당할 수가 없다”면서 “정부 지원금 중단으로 인해 치료법 개발 속도가 매우 늦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방사선이 폐·골수·림프샘·장기 등에 미치는 손상에 관해 연구해 온 하버드 의대 돈 잉버 교수도 보건복지부로부터 프로젝트 중단 메일을 받았다. 그의 연구는 원자력발전소 방사선 누출 사고로 피해를 입은 환자나, 방사선 치료를 받는 암 환자들에게 유용하게 활용될 터였다. 정부 지원금이 끊긴 후 그의 연구실에선 인력 이탈이 시작됐다. 잉버는 “한 동료 연구자는 미국을 떠나 유럽으로 가기로 결정했고, 유럽에서 우리 연구실에 합류하기로 했던 박사후 연구원은 미국에서 외국인으로 사는 것이 안전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결정을 철회했다”고 하버드가제트에 말했다.
연구 중단으로 일부 실험동물들은 안락사 위기에 처했다. 10년 넘게 결핵을 연구해 온 하버드 공중보건대학의 사라 포춘 교수는 미 전역 12곳 실험실과 공동으로 작업해온 연구가 중지되면서 백신 실험을 한 영장류 동물의 목숨이 위태로워졌다고 지난 4월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 그는 “이들을 안락사시키지 않기 위해 외부의 지원을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과학계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브레이크스루상을 받은 데이비드 리우 하버드 의대 교수도 “26년 연구 인생 중 가장 큰 위기에 직면했다”고 PBS에 말했다. 그가 연구하는 ‘크리스토퍼 기술’은 유전자를 편집해 유아의 유전병이나 암을 고치는 것이다. 올해 브레이크스루상 시상식에는 크리스토퍼 기술로 백혈병을 치료받은 13세 소녀 앨리사 태플리가 직접 연단에 올라 연구의 중요성에 대해 연설하기도 했다.
리우 교수는 “우리의 연구는 인류의 삶의 질과 수명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이 때문에 우리는 모든 연구 결과를 오픈 소스로 공개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태를 지켜보는) 대중들이 기초연구가 왜 미국과 전 세계에 중요한지 인식하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