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 13개 왕조의 도읍까지 있던 곳
문화·역사 자랑하지만 도서관 ‘0’
임시직 공무원 부임했던 저자가
관료주의와 검열의 압박 견디며
좋은 책을 비치하기 위한 분투와
주민들에게 다가가는 과정 담아
베이린구. 중국 산시성의 성도인 시안시의 중심 지역이다. 시안은 당나라 때는 장안이라 불렸다. 중국 내 13개 왕조의 도읍이 있었던 곳으로 문화와 역사의 도시로 불리는 이곳의 중심지에 놀랍게도 최근까지 하나 없던 것이 있었으니, 도서관이다. 책은 이곳에 도서관을 건립한 한 사람의 이야기다.
산시 과학기술대학에서 문학과 미학을 가르치던 양쑤추는 “실제 각급 정부 기관은 어떻게 운영될까? 지방 행정기관은 어떤 식으로 시민들과 교류하지?”라는 궁금증을 안고 2020년 산시성 제7차 박사 봉사단에 지원해 베이린구에서 임시직 공무원으로 일을 시작한다.

세상에 왜 도서관이 필요한가
양쑤추 지음·홍상훈 옮김
교유서가 | 480쪽 | 2만4000원
문화관광체육국 부국장이 그의 직함이다. 처음엔 ‘검토’ ‘결재’ ‘지시’ ‘처리’ 등 행정용어의 차이를 몰라 헤맸고 비슷하게 생긴 사무실을 오가다 길을 잃기 일쑤였으나 곧 적응한다. 각종 현판식에 참석하며 사진도 찍었다. ‘양쑤추 부국장은~’으로 시작하는 신문 기사가 나오는 것을 보고 은근한 기쁨도 느낀다. 그리고 깨닫는다. 이런 행위가 자신의 “미각을 손상”시키고 있으며 팽창하는 “권력에 대한 욕망”을 그대로 두었다간 스스로가 망가질 것이라는 사실을.
이때 ‘도서관 건립’ 임무가 내려온다. 3000㎡의 땅, 180만위안의 내장공사 비용, 100만위안의 도서 구매비 등이 책정된다. 내장공사 입찰 공고, 소방시설 점검, 책상 및 의자 배치, 전기시설 테스트, 도서 목록 업로드 등 도서관의 조용한 서가를 떠올렸을 때는 상상할 수 없는 잡다한 업무가 밀려온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이다. 어디선가 관가의 일을 듣고 상인들이 찾아온다. 한 사람은 자신이 “어느 지도자를 안다”며 책 판매 금액을 제시한다. 누군가는 “표면적으로는 50%, 실제로는 70% 할인”해주겠다는 비밀 메시지를 보내온다. 매매 서류를 위조해 뇌물을 주겠다는 말이다. 한 서적상이 가져온 리스트를 살펴본다. “아동서적에는 국제적인 상을 받은 작품이나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그림책은 없었으니, 이 또한 다른 의미에서 ‘심혈을 기울인’ 리스트였다”는 저자의 말은 중국의 도서 검열 분위기를 짐작하게 한다.
“도서관에 있는 책은 파는 건가요? 원가로 파나요, 아니면 할인해주나요?” 고생 끝에 도서관이 문을 열고도 문제가 발생하는데, 시민들이 도서관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도서관에 들어가면 시간에 따라 돈을 내야 할까봐 문 열기를 망설인다. 한국에서는 공공도서관의 개념이 이미 친숙하고 대중적이라 책에 묘사된 중국의 이 같은 상황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도서관은 정부에 수입을 창출하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많은 정부 돈을 쓰는 겁니까?”라거나 “도서관이 무슨 쓸모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이 관의 고위층에서 나오기 시작한다. ‘도서관이 왜 필요할까’라는 질문과 마주친 양쑤추의 앞에 그에 대한 답처럼, 도서관이 생긴 것을 기뻐하며 책을 기증하겠다는 노인, 책장 정리 등 자원봉사에 나선 초등학생들, 시각장애인 열람실을 이용하려는 장애인 독자들이 찾아온다.
한때 국내에서도 작은 도서관 건립 사업이 활발히 이어졌다. 작은 마을의 골목을 지나다 그렇게 지어진 작은 도서관들이 단순히 책 대여 공간이 아닌 마을 사랑방이 된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어쩌면 책은 작고 값비싸지도 않지만, 사람을 모으는 힘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양쑤추는 1년간의 임시직을 마무리하고 공무원 생활을 마친다. 떠나기 전까지 도서 목록과 도서 판매 금액을 둘러싸고 어디선가 그를 지켜보는 것 같은 ‘지도자’ 그리고 그 지도자와 연결된 서적 브로커의 압박이 이어진다.
작가는 한국어판 서문에 영화 <택시운전사>를 언급하며 “필름을 지키기 위해 여러 운전사가 목숨을 걸었던 덕분에, 단단히 움켜쥔 그 필름은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다”고 썼는데, 중국 지방정부에서 일하는 것, 이러한 과정을 나름 가감 없이 책으로 엮어내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지난해 중국에서 출간된 후 중화독서보 등 다수의 매체와 협회에서 ‘올해의 책’에 선정됐다. 책의 이야기는 중국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 iQIYI(아이치이)에서 드라마로도 제작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