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팍을 강하게 치는 저항의 군무. 작품의 절정이자 대단원이다. 전자음악(EDM)의 강렬한 비트가 최고조에 달하며 객석 열기도 고조된다. 4번의 커튼콜로 화답하는 20여명 무용수를 차분히 들여다보니 가슴 쪽 피부가 빨갛다. 박자를 맞추듯 들려오는 찰싹 때리는 소리가 범상치 않더니만, ‘억압과 폭력에 저항하자’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전한 예술가들의 훈장이다. 눈치챈 관객들은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감동을 표현한다. 지난 10월 18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선보인 프랑스 마르세유 국립발레단의 <룸 위드 어 뷰(Room with a View)>(론 음악, (라)오흐드 안무·연출)의 훈훈한 상호작용성이다.
무너진 세계에서 다시 태어나는 몸들
무너진 건물에서 직장인이거나 학생 차림의 무용수들이 춤을 춘다. 폭력을 표현하는 퍼포먼스 같기도 하다. 폭발하고 무너지는 음향에 심박수와 연동된 전자음악은 친밀한 관계의 폭력부터 구조적 폭력까지 악순환을 체현(體現)한다. 무대 천장에서 건물 잔해와 흙더미가 집 한 채 규모로 쏟아진다. 방독면을 쓴 청소부들이 무대 위 폐기물을 깨끗이 치우자 무용수들은 각자의 속도대로 새로운 흐름을 형성한다. 이들이 저항, 고통, 분노, 기쁨을 실존적으로 표현할 때, 관객의 몸 역시 이를 감각한다. ‘몸 대 몸의 대화’가 시작되고 배우의 움직임이 관객의 지각적 몸을 활성화해 서사를 체험하게 이끈다.
라틴어로 ‘표면상’이라는 뜻의 <프리마 파시>(수지 밀러 원작, 신유청 연출, 한원희 번역, 이소영 움직임, 이엄지 무대, 강지혜 조명, 지미세르 음악·음향)는 ‘친밀한’ 동료에게 성폭행당한 변호사 테사(이자람·김신록·차지연 분) 이야기다. 성공지향형 엘리트 법조인 테사는 성폭행 피해자가 되면서 자신이 변호해온 수많은 ‘사건’의 실체를 직시한다. 여유롭고 자신만만했던 테사의 무너진 심신이 1인극 특유의 방백과 독백을 통해 저항의 움직임으로 진화하는 과정이다. 판소리 명인 이자람은 구성진 성대모사로 수십 명 캐릭터를 모두 다르게 설정해 극적 다채로움을 선보였다. 김신록의 테사는 가녀리고 조용하나 차돌처럼 단단하다. 차지연의 테사는 상대적으로 움직임이 크고 미려하면서도 배우 특유의 성정이 담긴 털털한 캐릭터로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여러 해에 걸친 소송을 통해 저항을 쌓아 올린 테사의 버티기는 관객들에게 ‘그냥 넘어갈 수 있는 폭력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깨달음과 당당함을 안겨준다.
같은 변호사지만 연극 <고트>(페르디난트 폰 시라흐 극작, 류주연 연출, 오인아 번역)의 비글러(예수정 분)는 자신이 변호하는 이와 대치하는 이들을 논리적으로 쥐락펴락하면서도 상호 존엄의 거리를 유지한다. 40년 형사재판 전문가답게 촌철살인의 명료한 질문을 던진다. 조력 사망, 즉 자기가 선택하는 죽음을 원하는 심신 건강한 76세 게르트너(신현종 분)를 변호하는 과정에서 비글러는 “나의 죽음은 누구의 것인가?”에 대해 끈질기게 질문한다. 아시아에서는 이제 막 시작인 자기선택 죽음, 혹은 조력 사망에 대한 담론을 형성하기 위해 창작진은 공연마다 관객 투표를 즉석에서 진행해 결과를 게시한다. 필자가 본 두 번째 공연은 조력 사망에 대해 찬반이 비슷했으나 대체로 찬성이 많은 추세다. 비글러 역시 죽음에 대한 선택권은 인간의 기본권임을 주장하면서도 차분하고 냉철하게 반대하는 이들을 공감의 영역으로 초대한다.
오래 버틴 몸들이 남기는 자리

연극 <유령들>(헨리크 입센 원작, 양손프로젝트 각색, 박지혜 연출, 김형연 조명, 카입 사운드)을 이끌어가는 캐릭터는 알빙 부인(양조아 분)이다. 과거의 그림자이자 유령들, 문란했던 남편을 언급하면서도 시종일관 웃는다. 오랜 친구인 목사(양종욱 분)를 통해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면서 관습과 시대의 억압을 긁어내는, 스스로 존엄을 위한 저항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남편에게 비롯된 불치병으로 아들 오스발(손상규 분)이 죽음을 앞두고 있음에도 아들에게는 마지막까지 햇살을 쥐여주려는 애틋하면서도 쿨한 어머니다. 19세기 배경의 알빙은 처연하고 극단적이었다. 양손프로젝트가 재해석한 양조아의 알빙은 검은 바지 슈트 차림에 의자 2개가 전부인, 4면 객석의 단 없는 무대에서 당당하게 바지 주머니에 살짝 손을 넣고 캣워크를 한다. 여유로운 양손프로젝트만의 곱씹은 연극성이 알빙 부인을 새로이 탄생하게 이끌었다.

제주도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상연한 연극 <나, 안티고네>(소포클래스 원작, 오세혁 각색, 김정 연출, 강민숙 무대, 채석진 음악, 신동선 조명)도 ‘유령들’에게 당당하다. 안티고네(서민우 분)는 죽은 자를 위해 사는 자다. 테베의 왕 크레온(도창선 분)에 의해 들판에 버려진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유해를 묻어준 죄로 사형을 앞두고 있다. 약혼자 하이몬(김동원 분)을 저버리면서까지 죽은 자들을 살리기 위해(제대로 애도하기 위해) 헌신하는 그의 움직임은 시처럼 아름답고 애달프다. ‘국법을 지켜야 한다’는 크레온과 ‘죽은 자를 살리는, 애도와 추모는 인간의 도리’라고 주장하는 안티고네의 입장은 마치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은폐 왜곡한 과거의 한국 정부와 수십 년간 숨어서 제례를 지내야 했던 제주 4·3 유가족들과 등치된다. 국법을 지켜야 한다는 여동생 이스메네(황은미 분)도 결국 안티고네의 숭고함에 동화된다.

창작 초연 오페라 <화전가>(최우정 작곡, 배삼식 극작, 송안훈 지휘, 정영두 연출·안무, 이태섭 무대, 김영진 의상)는 전쟁 직전 여성들 삶을 구성지게 풀어놓은 작품이다. 1950년 4월 안동 고택에 모인 여성들, 친족이자 지인인 9명의 밤샘 수다와 화전놀이를 다룬다. 집안 남자들이 모두 독립운동과 좌우 분열로 멀리 떠났거나 구금돼 있어 여성들끼리 버티며 살아가는 중이다. 집안의 수장인 김씨(이아경 메조소프라노)의 환갑잔치로 어렵게 서울 및 타지에서 모인 딸들과 며느리, 고모, 행랑어멈과 그의 딸 등이다. 겉으로는 시끌벅적하지만 속내에는 얇은 불안과 죽음의 막이 자리한다. 관객들은 이들의 단아한 시간이 조만간 한국전쟁으로 파괴될 것을 알고 있기에 더욱 처연하다. “반쯤은 이생에, 반쯤은 저생에” 걸터앉아 전쟁 이전의 마지막 평온을 지키는 김씨의 의연하고 단단한 몸짓이 작품의 근간이다. 시적인 안동 사투리와 웅장한 오케스트라 사운드는 근현대의 경계, 전쟁과 혼돈의 경계에 있는 작품의 배경을 신비롭게 북돋운다. 여성 9인이 주인공인 한국 최초의, 세계적으로도 드문 오페라다.
이들 작품은 대사와 가사에 미처 담아내지 못한 담대함과 끈기를 주요 캐릭터들의 저항과 버티기 몸짓으로 전달한다. 이들의 저항은 얼마나 오래, 어떻게 버티는가의 문제다.
몸 철학으로 유명한 메를로-퐁티는 <지각의 현상학>에서 “몸은 세계와의 접촉면이며, 세계를 이해하는 첫 번째 장소”라고 강조한 바 있다. 다른 작품들은 최근 상연이 끝났고, <프리마 파시>와 <고트>는 11월 2일까지 상연한다. 유튜브에서 이 모든 작품의 자료 영상을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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