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S가 쏘아올린 ‘과기부총리직’…노무현 정부서 신설
모든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연단에 오른 김영삼(YS) 민정당 대선후보는 장내를 돌아본 뒤 말을 시작했다.
“앞으로 정부조직법을 개정해 과학기술과 정보산업 분야를 통합 조정할 부총리직을 신설하겠습니다.”
그 순간 장내가 술렁였다. “과학기술 부총리를 신설하겠다고...”
1992년 7월 15일. 민자당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7시 30분 전국경제인연합회관 20층 경제인클럽에서 열린 정보산업관련 3단체가 주최한 조찬 간담회에서 이같이 폭탄 발언을 했다.
김 대표의 발언은 과학기술 부총리제 신설의 국내 첫 신호탄이었다. 과학기술처를 부총리급으로 격상을 검토하겠다는 여당 유력 대선후보의 이 말에 과학기술계는 두 손을 들어 환영했다.
김 대표는 “청와대에 이 분야를 전담할 수석비서관을 두도록 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날 조찬 간담회는 한국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와 정보처리산업진흥회(1995년 한국소프트산업협회와 합병), 한국데이타베이스산업진흥회(현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가 공동주최했다.
이 자리에는 송병남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장과 김영태 LG-EDS시스템(현 LG CNS) 사장, 김택호 현대정보기술(현 롯데이노베이터) 사장, 남궁석 삼성SDS 사장(전 정보통신부 장관) 등 국내 정보통신업계 대표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김 대표는 이 자리에서 집권하면 추진할 과학기술과 정보산업육성 구상을 소상히 밝혔다.
“과학기술과 정보산업은 국가경쟁력 강화의 원동력입니다. 정보산업의 획기적 발전 없이는 산업 선진화가 이뤄질 수 없습니다. 앞으로 과학기술과 정보산업을 국가정책 지원 우선 산업으로 선정해 지원해 나가겠습니다. 정보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보산업 육성특별법 제정도 신중히 검토하겠습니다. ”
김 대표는 또 “ 정보산업 육성을 위한 장기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면서 “ 정부조직법을 개정해 과학기술과 정보산업 등을 담당하는 부서를 경제기획원과 통일원과 같이 부총리급으로 격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의 이같은 정책 구상에 대해 최창윤 대표비서실장은(전 총무처 장관)이 배경을 추가로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과학기술과 정보산업 분야에 대한 투자와 관리를 효율화하기 위해 현재 과학기술처, 상공부, 체신부 등으로 분산한 정부의 과학기술 지원 업무를 통합하는 방안을 마련해 대선 공약으로 제시할 계획”이라며 “과학기술담당 부총리 신설은 그 방안의 하나입니다.”.
김 대표의 이날 발언에 대해 과학기술계와 정보산업계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 과학기술과 정보산업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조찬 간담회를 준비했던 당시 유병배 한국소프트산업협회 상임이사의 말.
“당시 김영삼 후보의 정책구상에 대해 과학기술계 반응은 아주 좋았습니다. 그 후 김대중 민주당 대선 후보 측 비서실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해 11월 9일 김대중 후보께서 서울 용산전자상가를 방문하고 싶다고 해서 제가 현황을 20여분간 브리핑한 적이 있습니다.”
그해 8월 19일. 정부와 민자당은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과학 관련 당정협의회를 가졌다.
모임에는 김진현 과학기술처 장관과 금진호 민정당 과학기술특위원장(전 상공부 장관)과 백남치 정책조정실장 등이 참석했다.
이날 당정은 과학기술 투자를 국민총생산의 5%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이를 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오는 2001년까지 한시법으로 과학기술혁신을 위한 특별조치법(가칭)을 제정키로 했다.
특별조치법을 통해 국체적인 과하기술투자 기금확보 방안과 과학기술 지원방안, 과학기술 행정 체계 강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세우기로 했다. 그러나 과학기술혁신을 위한 특별법은 부처 간 이견 등으로 1997년 4월 10일 법률 제5340호 제정했고 2001년 1월 16일 폐지했다.
박승덕 당시 한국표준과학원장은 이와 관련, “과학기술과 관련해 이를 총괄 조정할 수 있는 실질적 권한을 과학기술처에 부여하는 일이 더 현실적”이라며 “ 현재 경제기획원이 가지고 있는 과기예산 조정권의 부분적인 이양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해 8월 하순. 서울대 행정대학원 정정길 교수(전 대통령 비서실장)팀이 '선진국의 기술보호주의에 대응한 산업기술정책방향'이란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과학기술처가 과학기술을 전담하지만 각종 자원을 배정하고 조정하는 예산 선심권(先審權)이 없다”면서“현행 과학기술 관련 업무는 과학기술처가 기초과학과 응용기술, 교육부가 대학연구소, 상공부가 산업기술분야를 각각 관장하고 있어 부처 간 갈등을 조장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행정부 내에서도 과학기술과 관련한 각종 지원과 진흥, 규제정책의 집행과 권한이 각 부처로 분산해 있고 정부조직법상 과학기술정책을 과학기술처가 총괄, 조정하도록 했지만 실효성 있는 수단을 갖지 못하고 있다“면서 ”과학기술처가 인력과 기술, 산업육성책과 연계하고 재원과 인력 등 과학기술 지원을 효과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방향으로 행정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대안(代案)으로 △과학기술처에 예산심의 등 조정기능 부여 △ 교육부가 관장하는 이공계 대학에 대한 연구지원 업무 과학기술처 이관 △ 대학 연구 업무와 과학기술처의 연구개발 업무를 통합해 수행하는 연구개발부 신설 △범국가적 기술혁신을 기획하고 지원하기 위한 대통령 직속 조직이나 과학기술특별 보좌관제 신설 등을 제시했다.
그해 12월, 14대 대통령에 당선 한 김영삼 대통령은 재임 중 정보산업 분야에 대한 대선 공약은 확실하게 지켰다.
김 대통령은 1994년 12월 정부조직개편을 단행, 체신부를 정통부로 확대, 개편해 정보통신 업무를 일원화했다. 또 청와대에 1급인 정보통신비서관을 신설했다.
당시 정보통신부 출범의 산파역은 윤동윤 체신부 장관(현 한국IT리더스포럼 회장)이었다.
정보통신부는 한국이 세계에 자랑하던 독창적 정부 조직이었다. 한국은 정보통신부를 통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며 노력한 결과 'ICT강국' '인터넷강국'이란 신화를 창조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과학기술처를 부총리로 격상하거나 처를 부로 승격하지 않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쏘아올린 과학기술 부총리 격상은 16대 노무현 대통령이 도입했다.
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제2의 과학기술입국을 구현하겠다”고 밝혔다.
노 정부는 과학기술처 장관의 부총리 승격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2004년 10월 1일 통과시켰다. 과학기술 부총리 승격은 1967년 4월 과학기술처가 발족한 이후 37년 만이었다. 노 대통령은 또 청와대에 정보과학기술 보좌관을 신설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10월 18일 오후 청와대에서 오명 부총리겸 과학기술부 장관(현 국가원로회의 상임의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취임 초부터 생각해 왔던 부총리 격상이 실현된 만큼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더욱 열심히 일해 달라”면서 “우리 미래가 과학기술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고 김만수 청와대 부대변인이 전했다.
과기부총리는 과학기술 정책을 총괄 기획하고 조정, 평가하며 국가 연구개발 예산에 대한 조정과 배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과학기술부의 전성시대였다.
오 부총리는 매월 과학기술 관계 장관회의을 열고 부처 간 정책을 조율하고 협의했다. 차관급을 본부장으로 하는 과학기술혁신부를 신설해 과학기술을 총괄했다.
오명 초대 부총리는 2006년 6월 9일까지 재임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대 부총리로 김우식 전 대통령 비서실장(전 연세대학교 총장)을 2006년 2월 10일 임명했다. 김 부총리는 2008년 2월 28일까지 근무했다.
이명박 정부는 '작고 효율적인 정부'라는 목표 아래 2008년 2월 29일 과학기술부와 교육인적자원부를 통합해 교육과학기술부를 출범했다. 한 지붕 두가족의 생활이었다. 과학기술 부총리제는 3년여 수명을 다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정부조직개편을 단행해 미래창조과학부를 발족했고 문재인 정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명칭을 변경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과학기술 패권시대를 맞아 차기 대통령은 어떤 과학기술 정부를 선보일까.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