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뿌리 찾아 떠나는 서전고의 ‘여름방학’

2025-08-14

“독립을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돌아가신 안중근 의사를 자세히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안중근 유묵비를 꼭 보고 싶어요”

지난 11일 오전 인천공항 제1터미널. 이른 아침 버스에서 내린 20명의 충북 서전고등학교 학생들의 얼굴엔 들뜬 미소와 함께 긴장감도 번져있었다. ‘안중근 조’에 참여하고 있는 2학년 전우영 군(17)의 목소리엔 말로만 듣던 곳을 볼 수 있다는 설렘이 묻어났다.

이날 서전고 학생들이 공항에 모인 것은 특별한 여름방학을 보내기 위해서다. 서전고는 헤이그특사 중 한명인 독립운동가 이상설 선생이 세운 학교 ‘서전서숙’을 계승한 학교다. 광복절까지 5일간 서전고 학생들은 독립운동의 정신을 배우기 위해 하얼빈과 용정으로 떠났다. 뿌리인 ‘서전서숙’과 독립운동의 흔적을 찾아나서며 현재와 미래를 보는 눈을 기르는 과정이다.

지난 12일 충북 진천 혁신도시 끝자락에 위치한 서전고. 교문에 들어서자 보재 이상설(1871~1917) 선생의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 안 교무실 벽을 가득 채운 이상설 선생 관련 안내문부터 이상설 선생의 생가에서 옮겨온 기와로 조성한 화단까지, 이상설 선생의 정신을 계승한 학교라는 것을 실감케 했다.

서전고는 이상설 선생 순국 100주년인 지난 2017년 문을 열었다. 서전고의 모티브가 된 서전서숙은 중국 용정에 세워졌지만, 진천에서 태어나 지역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이상설 선생을 기억하고 독립운동 정신을 이어받는다는 취지에서 교명에 서전서숙의 이름을 땄다.

단순히 이름만 계승한 건 아니다. 2018년부터 ‘이상설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이상설 프로젝트는 이상설 선생과 독립운동가에 대해 배우고 이들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1년 장기 프로그램이다.

이상설 선생, 조명희 선생, 홍명희 선생 등 매일 발을 딛고 있는 지역사회의 독립운동가의 흔적을 찾는 것부터 시작해 타국에 있는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앎’을 확장시키는 과정이다.

학생들은 방문할 유적에 대해 오랜 시간 공부하고 토론하는 ‘탐구활동’을 거친 뒤 유적이 남아있는 해외로 떠난다. 올해는 731부대, 윤동주, 안중근 등 5개 주제로 조를 나눠 학습을 진행한 뒤 중국 하얼빈, 용정, 백두산으로 떠났다.

이상설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는 오진욱 선생님은 “책과 영상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사건의 대강이지만 안중근의 의거가 이뤄진 하얼빈역, 윤동주가 살았던 용정은 역사 기록의 ‘흔적’”이라며 “현장은 기록을 우리의 ‘기억’으로 확장하고, 깊이 있는 체험이 학생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 있어 체험학습을 기획하고 있다”고 했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독립운동의 기록은 직접 현장을 마주하고 감정을 느끼면서 학생들에게도 ‘옛날이야기’가 아닌 ‘공감’의 대상이 됐다. ‘윤동주 조’에 참여한 정다은 양(17)에게도 지난 13일 직접 마주한 윤동주의 흔적은 교과서에선 느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다. “윤동주 시인에 대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고만 있었다면 윤동주 시인 생가와 묘지를 가보니 마음 깊이 윤동주 시인의 감정도 느껴지는 것 같았어요”

현장학습을 다녀온 학생들의 생각도 변했다. 서전고에서 만난 양희우 군(17)은 지난 1월 임시정부와 윤봉길 의사의 흔적이 남은 상해와 일제의 학살이 이뤄진 난징을 찾았다.

양 군은 “상해 임시정부가 계단도 가파르고 좁았는데, 나중에 적발될때 쉽게 잡히지 않기 위해 의도했다는걸 듣고 이런 생각까지 했다는 것이 인상깊었어요. 직접 다녀오니 독립운동 하신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분이라고 생각이 바꼈어요”라고 말했다. 이때의 경험은 2년 연속 이상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계기가 됐다.

국내에선 보기 어려운 ‘어두운 역사’를 마주하며 역사에 대한 관점도 바꼈다. 2년 연속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홍서준 군(17)은 “난징 위안부 기념관에 갔을 때 한국인뿐만 아니라 중국인 피해자도 모두 걸려있었어요. 가슴 아픈 역사도 맞고 숨기고 싶은 역사도 맞지만 중국도 이렇게 기념관을 만든 것처럼 우리도 피하고 덮어놓는 게 아니라 제대로 알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행한 사람이 부끄러워해야지 당한 사람이 부끄러워 해야 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라고 말했다.

서전고 학생들이 독립운동을 찾아 떠나는 것은 단순한 역사교육 이상의 의미가 있다. 과거의 교휸과 시대정신을 배워 현재를 고민하는 것이 이상설 프로젝트의 취지다. 역사탐방에 그치지 않도록, 프로젝트에선 특강 등을 통해 독립운동과 관련된 국제정세부터 양안관계를 비롯한 국제관계도 폭넓게 배운다. 세상을 보는 눈을 기르기 위해서다.

양 군은 “선생님께서 시대마다 숙제가 따로 있다고 얘기해주셨어요. 저희의 전 세대에게 숙제는 독립운동이었고, 우리가 생각할때 우리 사회의 시대적 과제는 무엇이냐. 각자 진로에 맞춰서 그 과제를 고민해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독립운동이라는 뿌리를 찾고 배우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머릿 속에는 흔들리지 않을 자신만의 가치관의 뿌리가 내렸다.

홍 군은 “직접 상해 임시정부를 방문하거나 들어보면서 역사를 선악의 프레임으로만 바라보는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편향된 정보를 접하더라도 스스로가 중심을 지키고 비판적으로 다가갈 수 있고, 누구든 사람을 전체적으로 보려고 노력하게 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상설 선생과 독립운동가를 찾아 떠난 서정고 학생들의 5일간의 여정은 끝이 났지만, 프로젝트는 계속된다. 한국으로 돌아온 학생들은 지역사회의 문제를 고민하는 탐구활동을 진행한다. 직접 보고 마주하면서 독립운동가의 시대정신을 배웠다면, 이젠 지역사회에서부터 배운 내용을 적용한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한규영 양(17)은 “윤동주 시인의 묘소가 산속 외진 곳에 있어 찾아가기 정말 힘들었는데, 걸으면서 독립운동가의 삶도 이렇게 힘들었겠다는 걸 조금이나마 느껴본 것 같아요. 그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앞으로 여러 사회적, 국가적 문제가 있을 때 독립운동가 분들의 정신을 따라 작은 일이라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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