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웨덴에서 시작된 글로벌 가구 전문매장 ‘이케아’에서는 링곤베리 소스를 얹은 미트볼을 맛볼 수 있다. 고기에 과일잼이라니 좀 생뚱맞은 조합이지만 추운 북유럽에서 베리류는 비타민을 보충할 수 있는 귀중한 식재료였다. ‘복지국가’ 이미지와 달리 자연환경은 오히려 척박했다.
서유럽에 비해 핀란드·스웨덴 같은 북유럽 국가들은 오랫동안 변방에 가까웠다. 근대 이후에는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국권을 뺏기는 등 고난도 겪었다. 이 와중에 북유럽인들은 문학과 예술로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면서 정체성 확립에 몰두했는데, 그 대표적 인물이 핀란드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자카리아스 토펠리우스다.
1818년 러시아 통치 시기에 태어난 토펠리우스는 낭만주의 문학에 관심을 가졌다가 이후 애국과 민족의식을 강조하는 시를 쓰기 시작했다. 문학적으로 아직 인정받지 못하던 모국어 핀란드어로 그는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동화를 썼다. 1865년 토펠리우스는 ‘아이들을 위한 독본’을 출간하면서 세계적인 작가가 된다.
북유럽의 민간 설화 등을 바탕으로 지어낸 그의 동화는 우리나라에도 번역·출간됐는데, 이중 두 소녀의 짧은 모험담을 담은 ‘산딸기와 임금님’은 작가의 귀여운 상상력이 재미를 더한 작품으로 사랑받고 있다.
네 남매가 함께 사는 오두막에서 어느 날 작은 소동이 벌어진다. 부엌에 둔 산딸기에서 커다란 벌레가 나온 것이다. 오빠인 로렌조는 벌레를 죽이자고 하지만 테레즈와 아이나, 두 자매는 풀숲에 몰래 벌레를 놓아준다. 그후 잼을 만들 산딸기를 따러 숲으로 향한 둘은 무성하게 우거진 딸기 덤불을 보고 환호하지만 숲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길을 잃는다.
그때 배고픈 두 소녀의 손에 두툼한 샌드위치와 우유가 쥐어진다. 영문도 모르고 맛있게 먹고 나니 이번에는 폭신한 침대가 나타난다. 뜻하지 않게 숲속에서 아침을 맞은 테레즈와 아이나는 커피까지 대접받는다. 대체 누가 우리를 대접하는 걸까 하고 궁금해하던 찰나, 수염이 하얗게 센 키 작은 노인이 나타난다.
알고보니 그는 천년 이상 살아온 딸기나라 임금님이었다. 하느님은 그가 교만해지지 않도록 1년에 딱 하루씩 그의 모습을 벌레로 바꿨는데, 두 소녀가 나서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목숨을 잃을 상황이었던 것이다. 임금님의 호의로 둘은 무사히 집에 돌아가고, 선물 받은 산더미 같은 딸기로 다 함께 잼을 만든다.
산딸기는 붉은 루비 같은 모습 때문인지 고대부터 귀한 과일로 여겨졌다. 그리스신화 속 요정 ‘이다’는 제우스를 위해 산딸기를 따다가 가시덤불에 긁혀 피가 났고 하얀 산딸기가 빨갛게 물들었다고 한다. 북유럽신화에서는 미의 여신 프레야에게 바쳐지기도 했다.
각종 서양식 디저트에는 산딸기, 즉 라즈베리가 다양하게 쓰인다. 케이크나 타르트에 얹으면 시각적으로 돋보이고, 하얀 생크림과도 조화를 이룬다. ‘빨간머리 앤’에도 나오는 딸기주스는 바로 라즈베리 코디얼(cordial·과일 음료)로, 진하게 우린 산딸기 시럽에 물을 타 마신다.
한국인에게 산딸기는 수요가 많은 과일은 아니다. 여름 한철만 나는 데다 과육이 무르기 쉬워 대형마트보다는 시골장에서 더 흔하게 볼 수 있다. 신맛이 다소 강해 호불호가 갈리는 면도 있다. 저장성을 높이고 더 맛있게 먹으려면 설탕을 넣고 청으로 만들면 편리하다. 톡톡 터지는 새콤한 풍미는 지치기 쉬운 여름에 활력을 준다.

정세진 맛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