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진법사 ‘비밀의 방’

2025-07-17

2006년 3월26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소속 검사·수사관 20여명이 서울 원효로 소재 현대글로비스 사옥에 들이닥쳤다. 이들은 압수수색영장을 제시한 뒤 9층 사장실로 직행해 책장을 치우고 벽면을 손으로 밀었다. 그러자 사장실과 재경팀 사무실 사이 비밀공간이 나왔고, 그 안에 대형 금고가 놓여 있었다. 금고 안에는 50억원이 넘는 현금과 미 달러화, 양도성예금증서(CD), 회계장부 등이 들어 있었다. 그룹 총수 구속으로 이어진 ‘현대차 비자금 수사’의 신호탄이었다. 검찰이 현대자동차 퇴직자로부터 금고 위치를 미리 제보받아 가능한 일이었다.

비밀공간·비밀금고는 대기업 비리에 종종 등장하는 소재다. 서울중앙지검은 2013년 CJ그룹 비자금 수사 때 서울 중구에 있는 그룹 본사를 압수수색해 14층 이재현 회장 사무실과 재무팀 임원방 사이에서 비밀금고로 쓰이던 방을 찾아냈다. CJ그룹 전 재무팀장은 법정에서 “삼성 관재팀 근무 경험이 있던 임원이 삼성 금고를 참고해 만들었다”고 했다. 1만원권을 100장씩 묶어 쇼핑백에 담아오면 재무팀 직원들이 비밀금고에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썼다고 했다. 2016년 롯데그룹 수사 때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3층의 한 객실 내 비밀공간에서 총수 일가의 자금 입출금 내역이 담긴 금전출납부와 통장을 찾았다.

건진법사 전성배씨도 서울 역삼동 법당 내부에 두 개의 ‘비밀공간’을 두었다고 한다. 앞서 전씨를 수사한 서울남부지검이 압수수색 때 누락한 이 비밀공간을 최근 ‘김건희 특검팀’이 압수수색했다. 전씨는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 윤모씨로부터 ‘김건희 여사 선물’이라며 6000만원대 명품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받았다. 전씨는 이 목걸이를 잃어버렸다고 주장한다. 전씨는 인사·공천 청탁 브로커 노릇도 전방위로 했으니 각종 범죄수익 등을 은닉할 비밀공간이 필요했을 법도 하다.

전씨의 이권 개입 의혹은 가히 게이트급이지만 ‘김건희 특검팀’의 16개 수사 대상 중 하나에 불과하다. 특검 수사 과정에서 다른 ‘비밀의 방’도 속속 드러날지 모른다. 지금은 진실을 밝히는 시간이고, 영원한 비밀은 없다는 걸 건진법사의 ‘비밀의 방’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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