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딱지 함부로 붙이지 말라

2025-09-03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니 여기저기서 ‘극우 타령’이 들려온다. 지금 한국 사회는 극우 세력에게 장악되기 직전이며, 역사의 반동인 극우를 철저히 섬멸하지 않으면 한국이 머잖아 파멸할 거란 호들갑이다. 올 초 서부지법 난동 사태에서 드러난 사회 일각의 극우적 행태가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준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흐름이 주류가 됐다는 건 턱없는 과장이다. 좌파의 ‘극우 타령’은 정치적 의도를 깔고 있는 경우가 많아 사실과 주장을 주의 깊게 분리할 필요가 있다.

최근 조국 전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별다른 설명 없이 ‘서울 거주 경제적 상층일수록 극우 청년일 확률 높다’는 기사 제목을 올려 논란을 일으켰다. 그에 앞서 조 전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의 사면ㆍ복권에 대해 2030세대가 강하게 반발하는 데 대해 “2030 남성이 70대와 비슷한 성향, 이른바 극우 성향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정치적 재기의 명분을 극우에서 찾으려는 것 같은데, 자신의 입시 비리와 극우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조 전 의원이 인용한 기사는 ‘시사인’에 실린 김창환 미국 캔자스대 교수의 연구 결과다. 김 교수는 극우를 정의하는 기준으로 ①목적을 이루기 위해 폭력 사용, 규칙 위반을 할 수 있다 ②정부보다 개인이 자신의 생계(복지)에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 ③이민자 유입이나 난민 수용 확대 중 하나라도 반대 ④대북 제재를 중심으로 압박 정책을 우선시 ⑤중국으로부터 경제적 타격을 받더라도 한·미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등의 5가지를 제시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5가지 모두 찬성하면 강성 극우고 ①만 빼고 ②~④에 동의하면 연성 극우란다. 하지만 대북 제재와 한·미 동맹 강화가 극우 지표로 활용되는 게 과연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또 ①이야말로 민주노총의 불법 시위에서 맨날 보는 건데 그럼 민주노총도 극우 집단인가? 백보 양보해 김 교수의 기준을 인정하더라도 20대 남성과 30대 남성에서 극우 비율은 각각 15.7%와 16.0%에 불과했다. 2030 남성의 주류로 보긴 어렵다.

또 한국갤럽의 지난 3월 통합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18~29세 남성의 52%는 찬성, 36%가 반대였다. 30대 남성은 찬성 53%, 반대 36%였다. 2030 남성의 절반 이상이 탄핵에 찬성한 것이다. 오히려 60대 이상보다 탄핵 찬성률이 높다. 만약 ‘윤석열 비호’를 근거로 2030 남성에게 극우 딱지를 붙이겠다면 그에 앞서 60대 이상의 세대를 전부 극우로 몰아야 한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 진영에서도 혁명자금을 만들겠다며 재벌 집에 침입해 경비원을 과도로 찌른 사람도 있었고, 미 대사관저에 난입해 사제폭탄을 터뜨린 사람도 있었고, 무고한 민간인을 정보기관 프락치로 몰아 물고문을 가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민주화운동 전체를 극좌로 매도하는 건 몰상식한 평가가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2030 남성 일부가 극우 성향을 띤다고 해서 2030 남성의 담론 전체를 극우로 치부하는 건 터무니없다. 조 전 의원은 그제도 “국민의힘이라는 극우 정당의 영향을 받아 2030 청년 일부가 극우화 경향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일부’라고 한발 물러섰지만, 진단은 여전히 엉터리다.

2030 남성이 보수화된 건 분명하나 그건 국민의힘 때문이 아니라(국민의힘은 그럴 능력도 없다) 극심한 취업난, 아파트값 폭등, 계층 이동 사다리 붕괴, 군 복무 피해의식,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사회경제적 요인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들을 극우로 몰아봐야 세대 간 갈등만 증폭될 뿐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책임감 있는 정치인이라면 미래의 주역인 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고민과 애로를 청취하는 게 먼저다. 자녀 입시 비리에 분노하는 게 극우라면 도대체 극우는 얼마나 흔한 농담에 불과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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