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관세 협상서 ‘협상 카드’ 활용 거론
‘광우병 원인 물질 검출 우려’ 소비자 민감
농가 “소비자 불안 커져 한우도 위축될 것”

미국과 관세 협상에서 농축산물 부문이 주요 협상 카드로 떠오른 상황에서 정부 내에서 30개월령 이상 소고기 수입과 사과 검역 절차 간소화 등이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수입 확대에 일관되게 반대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소고기와 사과 등에서 시장 개방에 따른 영향을 놓고 관계부처와 협의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30개월령 이상 소고기 수입시 소비자 안전 우려는 물론 축산농가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농식품부는 15일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의 전날 “농산물 개방도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발언 이후 별도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농축산물 수입 확대에 일관되게 반대한다는 입장이지만 물밑에서는 품목별로 시장 개방의 영향을 따져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쌀은 현실적으로 (시장 개방이) 쉽지 않다. 사과는 정해진 검역절차가 있어 한 번에 뛰어넘기는 어렵다”면서 “쇠고기가 가장 산업적으로는 타격이 적은 카드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도 이날 통화에서 “농산물 수입 비관세 요인에 대해 미국과 전반적으로 논의 중”이라며 “구체적인 품목의 개방 정도에 대해 산업부와 농식품부 등 관계 부처 간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현재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카드가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다. 정부는 한우 시장과 미국산 쇠고기 시장이 분리돼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를 추가 수입해도 가격·질이 비슷한 호주산 쇠고기와 경쟁 관계이기 때문에 한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작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곧바로 미국 사과가 수입되기는 어렵겠지만 검역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미국산 사과 수입은 33년째 8단계 검역 절차 중 2단계에 머물러 있다. 미국 측은 한국에 자체 방역을 조건으로 국내 검역 절차를 간소화 해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30개월령 이상의 쇠고기 수입 문제는 소비자 안전 차원에서도 민감한 사항이다. 정부는 광우병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물질이 검출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2008년 이후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입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질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있어 30개월 이상 쇠고기는 잘 소비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소비자 입장에서 쇠고기 월령이 30개월 이상인지를 판단할 방법이 마땅히 없다. 현행법상 판매되는 고기에 월령 표기는 의무가 아니다.
미국산 사과는 가격경쟁력이 높고 품종도 다양해 상대적으로 쇠고기 수입보다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 있다.
농가 등에선 이미 단체행동을 불사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한우 농가는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면 소비자 불안이 커져 한우 시장도 덩달아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전국한우협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농축산업의 고통과 희생을 당연한 전제로 여기고 있다. 전국의 농축산인들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며 단체 행동을 시사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도 성명을 통해 “조속한 협상을 이유로 농업을 희생시키지 말고 주권 국가로서 당당하게 미국의 협박에 맞서 싸우라”며 “여기서 더 물러난다면 우리 농업과 먹거리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서영석 전국한우협회 정책지도국장은 “농산물은 항상 무역협상에서 양보하는 대상이 돼 왔다”며 “자국 산업에 대한 보호대책이 마련되고 (수입 확대가) 이야기 돼야 하는데 늘 대책 마련은 없이 양보만 요구하니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