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해군이 맡긴 함정, 숨은 결함까지 고치니 엄지척 하더라"

2025-05-27

미 해군 함정 MRO 첫 성사한 한화오션 김대식 상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6일 당선 직후 윤석열 대통령(당시)과의 통화에서 한국의 조선업을 콕 찍어 협력을 요청했다. 카를로스 델 토로(전)·존 펠란(현) 미 해군성 장관과 스티븐 쾰러 미 태평양 함대 사령관·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HD현대중공업·한화오션 등 우리 조선소를 연달아 찾아 협력을 요청했다. 미 해군도 향후 30년간 총 364척을 건조하겠다며 한국에 ‘구애’를 하고 있다.

미국, 우리 조선사에 적극 구애

한화오션 함정 2척 정비 호평

방향타 결함 잡아 단시간 수리

속도·기술력이 한국 조선 강점

이 구애에 응해 주목되는 성과를 내고있는 조선사가 한화오션이다. 지난해 8월과 11월 미 해군 탄약 지원함 ‘월리 쉬라’와 급유함 ‘유콘’의 유지·보수·정비(MRO)를 잇따라 수주해 한국 조선사가 미 해군 MRO를 맡은 첫 사례를 기록했다. 월리 쉬라는 숨어있던 결함까지 발견, 신속히 수리해 반년만에 인도하면서 미 해군의 호평을 받았고, 유콘도 반년 만인 다음 달 인도될 예정이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은 15일 호놀룰루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한국은) 일본과 중국 사이에 뜬 고정 항공모함”이라며 월리 쉬라·유콘함 정비를 콕 집어 “한국의 (군함) 생산 시설과 MRO 역량은 미군의 인도·태평양 활동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군 사령관이 동맹국 조선업체를 공개적으로 칭찬한 건 이례적이다. 미 국방 당국이 한국을 MRO 파트너로 공인했다는 의미로, 동맹 강화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한화오션의 MRO 총책 김대식 상무를 만났다. 1996년 대우조선에 입사해 30년간 설계부터 경영까지 배의 모든 것을 거친 ‘조선맨’이다.

“중국에 60척 뒤지자 한국에 SOS”

미국의 한국 조선 구애 배경은요?

“미·중 경쟁이 핵심 원인이죠. 지금 중국 전투함이 350척에 달하는데 미국은 290척에 불과합니다. 중국은 함정을 건조하는 대형조선소가 35개나 돼 1년에 15척 넘게 군함을 만드는데, 미국은 조선업이 쇠락해 1년에 5~6척 만드는 수준인 데다 건조 기간도 1~3년 지연돼 중국에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조 바이든 대통령 시절부터 조선업이 발달한 동맹국인 한국에 ‘외주’를 줘 중국과의 건함 경쟁에서 이긴다는 구상을 실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발맞춰 한화오션도 2023년 5월 MRO 조직을 만들었죠.”

미국 조선업이 쇠락한 이유는요?

“조선업은 옥외에서 일하니 안전 문제도 많고, 배마다 외형과 기능이 천차만별이다 보니 자동화가 어렵거든요. 여기에 (미국인들의) 제조업 기피로 인력 부족이 심각합니다. 부품도 모델별로 정형화된 자동차와 달리 배마다 다르고 제조 장비도 수천억 원대로 비쌉니다. 따라서 보통 30~40년 운항하는 배에 필요한 부품이 단종돼있기 일쑤예요. 선령이 대개 20년 넘은 미 해군 함정들이 딱 그런 상황이라 애로가 많아요. 게다가 미국 내 운항 선박은 미국에 위치하거나 미국인 소유 시설에서 건조돼야 한다는 존스법 탓에 미 조선업 경쟁력이 급락한 것도 미 해군 함정 노후화의 원인이 됐죠.”

그러면 우리 조선소가 미 해군함을 만들게 되는 건가요?

“미국법상 군함 제조는 아직 어렵고 탄약·유류를 보급하는 월리 쉬라·유콘 등 군수지원함 정비가 우선 가능한 대상입니다. 둘 다 4만t급 대형함인데 5년 주기로 배 전체를 수리하는 MRO를 국내 조선업 사상 처음으로 잇따라 따낸 거죠. 월리 쉬라는 지난해 7월 MSRA(Master Ship Repair Agreement)라고 하는 미 해군의 엄격한 정비 조선소 인증을 따내 수주에 성공했어요. 심사에 보통 1년 걸리는데 7개월 만에 따냈죠. 우리 조선소의 설비와 설계·기술력, 인력 등을 꼼꼼하게 따지더군요. 군함·잠수함·고부가가치선 개발과 1800여척의 대형 선박을 제조한 실적도 선정 요인이 됐죠.”

“고장난 방향타, 도면 직접 그려 수리”

그 뒤에는요?

“수주 인증받기 한 달 전에 미 해군 측이 ‘당신들이 (인증)될 거니까 미리 월리 쉬라 MRO에 입찰해보라’고 제안하더군요. 바로 준비에 들어가 입찰을 따냈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미 해군함은 미 선급협회(ABS)의 인증을 받아야 운항이 가능한데 월리 쉬라는 입찰 당시 인증 잔여기간이 닷새밖에 남지 않아, 배가 바로 우리 조선소에 들어왔어요. 원래는 한 달간 준비 기간을 가진 뒤 배를 맞이하는데 그럴 시간도 없이 바로 정비를 개시해야 했죠. 그래서 정비 기간이 두 달가량 길어지며 계약한 금액보다 근 두 배 수익이 늘어났죠. 미 해군은 ‘서둘러 배를 입고했는데 신속한 수리는 물론 숨은 결함까지 해결해 깔끔하게 정비를 완료했다’고 고마워했어요.”

숨어 있던 결함은 뭐였나요?

“약 15년 된 배였는데 핵심 부품인 방향타(Rudder)의 손상이 심하더군요. 물속에 있고, 눈에 잘 띄는 부품이 아닌데, 우리 측 엔지니어들이 발견한 거죠. 원래는 미국의 제작사로 보내 수리해 갖고 오거나, 새 걸로 교체해야 했는데 그러면 두세달은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듭니다. 이걸 우리가 ‘역설계’로 해결했죠. 외양만 보고 직접 설계도를 만든 뒤 훼손 부위를 복원했어요. 뭐든 직접 설계해 만드는 기술이 있으니 단시간에 저비용으로 해결한 거죠.”

미 해군 반응은요?

“‘엄지 척’이었죠. 미 해군 태평양 사령부 홈페이지(CFP.MIL)는 ‘한국 엔지니어들은 파손된 방향타를 역설계로 완벽히 고쳐냈다. 많은 시간과 자원이 절약됐다. 업체의 공급망과 기술·인력이 뛰어난 증거’라고 칭찬했죠. 발주처인 미 해군 수송선 사령부(MSC)도 ‘지금까지 관리한 함정 중 최고’라고 평가했습니다.”

지난달 30일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을 방문한 존 펠란 미 해군성 장관을 수행했는데요.

“유콘함 정비 현황과 스마트 관제센터 등 설비를 보여줬는데, 펠란 장관은 동시에 큰 배를 여러 척 건조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것 같아요. ‘이런 스펙터클(장관)은 보기 힘들다’며 만족을 표시했죠. 지난해에도 델토르 전임 미 해군성 장관이 둘러보고 ‘이렇게 스마트하게 많은 배를 동시에 생산하는 조선사는 본 적이 없다’고 발언했죠. 1년에 만드는 배가 70척이 넘어요.”

“설계·생산 동시에…한국만의 경쟁력”

세계 조선 시장에서 한국의 경쟁력은 뭘까요?

“중국이 전 세계 선박의 50%를 생산하고 우리가 30%, 일본이 15%선이죠. 하지만 1척당 1억~2억 달러인 고부가가치 선은 우리가 생산 1위이고 중국은 5000만 달러급 배를 주로 만듭니다. 우리의 핵심 경쟁력은 ‘빨리빨리’ 민족답게 속도입니다. 원래 배를 만들 때는 먼저 도면을 만들고, 생산 계획을 세운 뒤 제작에 들어가는데 우리는 도면 그리는 단계부터 제작을 개시합니다. 설계와 건조를 동시에 하는 거죠. (중간에 도면이 바뀌면요?) 그럴 때도 적응할 수 있게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요. 그게 역량이죠. 애초에 ‘속도가 경쟁력’이란 전략을 구사해온 데다 장비·부품 업체들도 거기 특화돼 건조 속도가 30%는 빨라 세계에서 가장 빠른 납기를 자랑합니다. 쇄빙 LNG선 등 첨단 선박을 세계 최초로 건조한 기술력도 강점이죠.”

일본 조선은 어떤가요?

“일본은 70~80년대 조선이 세계 1위이던 시절 ‘도요타 방식’을 도입해 표준화시킨 뒤 싸게 파는 방식으로 영업했어요. 하지만 선박들이 대형화·첨단화하는데도 표준화에만 매달린 끝에 설계 인력이 줄며 뒤처지게 됐죠. 반면 우리는 선주들이 원하는 대로 배를 빨리 만들어주는 방식이라 설계 인력이 2500명에 달해요. 1척당 3000억원이 넘는 LNG선과 컨테이너를 2만개 넘게 탑재하는 초대형 컨테이너선 등 고부가가치선 생산에서 한국이 1위를 고수하는 이유죠. LNG선에 쇄빙 기능을 탑재한 북극 운항선도 한국이 최초로 개발했습니다. 암모니아·수소 등 차세대 선박 연료 연구도 상당하고요. 이걸 미국도 아니까 우리를 택한 거죠. 우리만의 강점은 또 있습니다.”

뭔가요?

“조선업체가 밀집한 거제도 반경 50? 안에 관련 업체가 1000개나 있어 부품·자재 수급이 용이해요. 인력도 2000년대 초 조선업 활황 시절 육성된 기술자 수만 명이 여기에 밀집해 있어요. 중국엔 이런 ‘조선 콤플렉스’가 없어요. (중국도 강점이 있을 텐데요?)인건비가 싸고 내수시장이 엄청나죠. 우린 그 점에선 상대가 안 되니 고부가가치선에 중점을 두죠. 중국도 이 분야를 쫓아오고 있으니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해야죠.”

미국과 협업이 그 점에서 도움이 되나요?

“조선은 규모의 경제가 중요합니다. 미국, 특히 해군 함정은 큰 시장이고 첨단기술이 요구되니 이점이 크죠. 미 해군 MRO는 매년 세계 MRO 시장(80조원)의 25%인 20조원에 달해요. 그래서 미국 현지에서도 선박 건조가 가능하도록 지난해 12월 미국 필리조선소를 인수한 바 있고, 올해 MRO 대상인 미 해군 군수지원함 12~15척에 대해서도 전력을 다해 입찰을 시도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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