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전에 한표” “4일 연휴 즐기려 미리 나서” [6·3 대선]

2025-05-29

전국 3568곳 사전투표소 첫날 표정

근무 중 잠깐 나온 직장인도 눈길

투표용지 든 유권자 밖까지 장사진

한때 ‘용지 반출’ 논란 제기되기도

6·3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29일 전국 투표소 3568곳에는 이른 아침부터 유권자 발길이 이어졌다. 3년 만에 다시 치르는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저마다의 소망을 담아 소중한 한표를 행사했다. 서울 시내 한 투표소에서는 투표용지를 든 시민들의 대기줄이 투표소 밖으로 이어지며 ‘용지 반출’ 논란마저 제기됐다.

이날 사전투표 열기는 일찌감치 감지됐다. 상당수 직장인이 출근 전 투표소를 찾으면서 이른 아침부터 투표소에 줄을 섰다. 대선을 치르는 6월 첫째 주에 현충일이 끼어있는 탓에 휴가를 즐기려 미리 투표소를 찾은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서울 종로구보건소에서 만난 직장인 손모(47)씨는 “이번주에 빨리 투표하고 다음주에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내와 데이트하려고 휴가를 냈다”며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심각한 사회갈등을 해결해 주고 어지러운 정국이 정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1문화센터 사전투표소를 찾은 은행원 김모(39)씨는 “8시 출근인데 아침 업무를 마무리하고 잠깐 짬 내서 나왔다”며 “당일에는 줄이 길 것 같고 회사 근처에 사전투표소가 있으니 부장님이랑 같이 왔다”고 했다. 송모(63)씨는 “서민들을 위한 정책이 먼저 나오길 희망하고, 그런 정책이 공약에 그치지 않고 실제 시행되면 좋겠다”며 “대외적인 미국발 경제 위기도 빨리 해결돼야 덜 불안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 설치된 사전투표소는 투표 후 출국하려는 여행객들로 붐볐다. 인천공항 사전투표소는 제1, 2여객터미널 3층 출국장에 각각 설치됐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사전투표가 실시되는 이틀 동안 하루 20만명 내외의 여객이 공항을 이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날 오전 제1터미널 사전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조모(48)씨는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기 전에 투표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 미래를 책임질 후보에게 한 표를 행사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11시50분쯤 부산시청과 가장 가까운 사전투표소인 부산 연제구 거제3동행정복지센터 1층 평생학습실에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투표하려는 공무원과 직장인들로 가득했다. 한 30대 공무원은 “이번 대선은 특정 후보의 당선이 유력하다는 얘기가 파다해 사전투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사전)투표 참여자가 많아 놀랐다”고 말했다.

주택가에 위치한 울산 남구 신정4동행정복지센터에 마련된 신정4동사전투표소에는 비교적 나이가 많은 유권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업무 중 지나는 길에 투표소에 들렀다는 한 60대 유권자는 “사전투표 날만 기다렸다. 얼른 선거가 끝나 새로운 대통령이 어수선한 대한민국을 바로 잡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전 7시 경남 창원시 성산구 용지동 사전투표소인 경남연구원에서 투표한 20대 이선영씨는 “창원에 이사 와서 두 번째 하는 투표인데, 투표를 이렇게 자주 하게 될 줄 몰랐다”면서 “TV토론을 볼 땐 고민이 많았는데 누가 되든 현재 닥친 위기를 헤쳐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전투표소가 마련된 대전 월평중학교에서 만난 김낙현(63)씨는 “사람들이 많이 몰릴 거 같아서 오전에 왔는데 벌써 20분 넘게 기다리고 있다”며 “이번 대선이 왜 치러지는지를 심판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의 구신촌동주민센터 사전투표소 앞에서는 본인확인 후 투표용지를 받아 든 시민들이 건물 밖으로 줄을 서며 사진을 찍거나 이탈한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투표소 내부가 가득 차자 줄이 바깥까지 이어진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측은 “정상적인 절차다. 본인 확인을 거친 사람들이 투표용지를 받은 것”이라며 “이를 인지한 후 즉시 투표소 안에서 대기하도록 조치했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다만 ‘투표용지 사진을 찍거나, 투표용지를 들고 인근 식당에서 식사하고 온 사람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 “현재 사실 확인 중”이라고 전했다.

법무법인 법승 이승우 대표 변호사는 “죄형법정주의상 현재 이를 처벌하거나 벌칙 조항을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공직선거법에 선거 방법과 관련된 조항에서는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공직선거법상의 취지에는 정면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행동”이라고 강조했다.

일부 투표소에선 사소한 부정선거 시비가 이어졌다. 종로구 가회동주민센터 사전투표소에선 “도장이 선명하게 나오지 않는다”며 항의하던 한 노인이 “투표가 제대로 된 거 맞냐”고 연신 소리쳤고, 같이 온 이들이 말려 투표소를 나가면서도 의심 어린 눈초리로 투표관리원들을 흘겨봤다.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공동대표를 맡은 공명선거전국연합 등은 전국 각지 투표소에서 이른바 ‘부정선거 감시 활동’을 벌였다.

급기야 선거관리원을 때리거나 난동을 부린 이들이 경찰에 잇따라 체포되기도 했다. 이날 오전 10시40분쯤 광주 북구 오치1동행정복지센터 사전투표소에서 선거관리원의 뺨을 때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50대 남성이 경찰에 체포됐다. 이 남성은 투표소 입구에서 특정 후보의 얼굴이 실린 공보물 여러 장을 바닥에 부착하려다 관리원이 제지하자 난동을 부린 것으로 조사됐다. 제주의 한 사전투표소에서도 60대 남성이 “부정선거”라고 외치며 소란을 피워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중국 동포가 많이 거주하는 영등포구 대림2동 사전투표소 앞에는 부정선거를 감시하겠다며 청년과 유튜버 대여섯명이 모이기도 했다. 이들은 “중국인들이 신분을 위조해 투표할 수도 있다”며 “만약 우리가 말을 걸었는데 한국말을 한마디도 못 한다면 이상하지 않냐”고 주장했다. 한 청년은 “대학생인데 교수님이 숙제를 내주셨다”며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냐”고 묻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부정선거론에 선을 그었다. 지성우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부정선거와 관리 부실은 다르게 봐야 한다. 이번 건은 관리 부실 문제”라며 “선관위에서 문제의 재발을 막기 위해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준호·최경림·소진영 기자, 인천공항=박연직 선임기자,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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