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AI 대비’라더니…“대공황 수준 실업, 청년·여성 먼저 타격”

2025-12-15

점(사실들): 회계사도 수습 채용부터 줄인다

선(맥락들): AI 도입이 불평등 심화하는 이유

면(관점들): 이익은 기업, 비용은 노동자 몫?

“맥시멈(최대치) 시나리오의 경우 약 74%의 일자리가 대체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청년층이나 여성 (비율이 많은) 사무·판매직이 타격을 받지만, 남성 중심의 제조·전문직까지도 영향이 확산할 수 있습니다.”

지난 8일 기획재정부가 주최한 2025년 미래전략 콘퍼런스, 대표적인 미래학자 서용석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인공지능(AI)이 국내 직업을 얼마나 대체할지 분석한 결과에 대해 이같이 말했습니다. 서 교수는 점선면과 통화에서 대공황 수준의 실업이 올 수 있다며 “AI는 기회의 상징이 아니라 불평등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까지 말했는데요. 왜 청년·여성층이 더 큰 충격을 받는 걸까요? 오늘 점선면이 정리해보겠습니다.

사실 시나리오에서 예측한 청년층 고용 한파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 10일 발표한 2025년 고용동향에서 15~29세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17만7000명 줄었습니다. 2020년 이후 5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인데요. AI 기술 발달과 경력직 선호로 신규 채용을 꺼리는 업계 흐름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됩니다.

청년고용 한파에 전문직도 예외는 아닙니다. 회계사는 내년 선발인원이 올해보다 50명 줄어든 1150명으로 결정됐는데요. 회계업계가 AI 도입·불황 등을 이유로 신입사원 채용 규모를 줄인 영향입니다. 한 현직 회계사는 통화에서 “예전에는 엑셀로 수작업하던 것들을 요즘에는 AI 프로그램으로 쉽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AI 충격의 영향을 청년들이 고스란히 떠안은 셈입니다.

선(맥락들): AI 도입이 ‘불평등 심화’ 하는 이유

실제로 청년층이 타격을 받는 이유로, 주로 신입이 하는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업무를 AI가 대체하기 쉽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지난 10월 한국은행 ‘AI 확산이 청년층 일자리에 미친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경력이 적은 청년층의 정형화된 업무일수록 AI가 상대적으로 쉽게 대체했습니다. 경력에 기반한 암묵적인 지식이나 사회적 기술이 필요한 업무에서는 AI가 보조적으로 쓰였고요.

채용된다고 해도 AI의 위협은 계속됩니다. 특히 여성·노인·농촌·소수자·이주민 등에게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는 예상이 나옵니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지난 2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에서 “AI는 노동 시장에서 기회를 불균등하게 재편하고 있다”며 “특히 여성은 구조적 불리함으로 인해 기술 변화에 취약하다”고 밝혔습니다. AI 도입이 디지털 격차·성별 고정관념 등 기존 사회가 가진 구조적 불평등을 키운다는 겁니다.

유엔 경제사회국(DESA)이 지난 10월 발간한 보고서에서도 생성형 AI의 영향을 받는 여성 일자리 비율(27.6%)이 남성(21.1%)보다 높았는데요. 고소득·중상위소득국에서 여성들이 사무직, 교육, 공공행정 분야에 집중돼 있기 때문으로 분석했습니다. 국내에서도 AI 도입이 빠른 콜센터 업계에서 여성 상담사 대량 해고 문제가 이미 불거졌습니다.

면(관점들): 이익은 기업, 비용은 노동자 몫?

일련의 불평등은 공통적으로 청년·여성의 잠재력·능력과는 무관한데요. 당장 AI가 대체하기 쉬운 업무와 직종에 청년·여성 비율이 높은 건 맞지만 이는 구조적 불평등의 반영일 뿐이라는 겁니다. 이들이 조직 내에서 상대적으로 협상력이 낮고 고용 안정성도 떨어진다는 점도 기업의 미채용·해고 부담을 낮추는 요인이 됩니다.

결국 구조적 차별이 먼저 시정되지 않으면 불평등은 심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단적인 예가 AI 채용에서의 학습된 편향입니다. OECD와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 10월 공동발간한 ‘한국의 인공지능과 노동시장’ 보고서는 AI 시대 부작용을 상쇄할 대안 중 하나로 차별금지법의 확대를 거론하는데요. 미국 캘리포니아·콜로라도주, 캐나다, 유럽연합(EU)의 입법 사례는 고용 시 AI에 내재된 편향이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기업의 책임이 요구됩니다. AI 도입의 가장 큰 수혜자가 바로 기업들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올해 해고된 직원만 18만여명에 달했는데 기업들은 이를 통해 막대한 돈을 축적했다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파비안느 스테파니 옥스퍼드 인터넷연구소 교수는 CNBC 인터뷰에서 “현재 일어나는 해고가 정말 AI로 인한 효율성 향상 때문인지 회의적”이라며 기업들이 쉬운 해고를 위한 변명으로 AI를 써먹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서용석 교수는 중기적으로 디지털세와 로봇세 확대, 장기적으론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했습니다. AI의 일자리 대체가 생존권을 위협하는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고 로봇세를 확대해 기본소득과 사회 전환을 위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건데요. 서 교수는 통화에서 “디지털세·기본소득은 오히려 글로벌 기업의 CEO들 차원에서 먼저 나온다”며 세계적인 흐름에 적극적으로 발맞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일각에선 AI 시대가 새로운 일자리와 노동 수요를 만들 거라는 낙관적 전망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차별이 시정되지 않는 한 그 기회는 이미 자본과 권력을 가진 사람만 누리게 될 겁니다. 안전망이 없다면 변화에 취약한 노동자들은 퇴출당할 테고요. 미래가 달린 문제입니다. 정부와 기업은 지금, AI 도입의 비용을 누구에게 전가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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