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2심 판결 수용, 상고 포기
“집 앞 국정원 사무실, 살해 협박”
‘그알’ 출연 “악플에 자살 시도”

배우 김규리가 국정원이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의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한 2심 판결을 수용하자 “이젠 그만 힘들고 싶다”고 했다. 16년이란 세월은 그에게 혹독했다.
김규리는 9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사실 트라우마가 심해서 ‘블랙리스트’의 ‘블’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킨다”며 “그 동안 말을 안하고 있었던 제 경험 중에는 ‘저희 집 골목에 국정원 사무실이 차려졌으니 몸조심 하라는 것’과 며칠 내내 이상한 사람들이 집앞에서 서성거렸던 일들”이라고 밝혔다.
이어 “블랙리스트 사실이 뉴스를 통해 나온 걸 접했을 때 SNS를 통해 심정을 짧게 표현한 걸 두고 그 다음날 ‘가만 안 있으면 죽여버린다’는 협박도 박았었고 휴대전화 도청으로 고생했을 일 등등”이라고 했다.
■ 김규리 사라진 10년의 커리어, 자살 시도까지
김규리를 둘러싼 이명박 정부의 블랙리스트는 2009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원세훈 전 원장 시기였던 국정원은 김주성 당시 기조실정 주도로 ‘좌파 연예인 대응 TF’를 구성해 정부 비판 성향 연예인이 특정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도록 전방위 압박에 나섰다.
이후 국정원은 청와대와 교감 아래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명단에 오른 인사를 상대로 방송 출연 중단, 소속사 세무조사, 비판 여론 조성 등 전방위로 퇴출 압박 활동을 해왔던 것으로 국정원 적폐청산 TF 조사에 의해 드러났다.
원 전 원장 시절 국정원 TF가 관리했던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인물은 ▲이외수 조정래 진중권 등 문화계 6명 ▲문성근 명계남 김규리 등 배우 8명 ▲이창동 박찬욱 봉준호 등 영화감독 52명 ▲김미화 김구라 김제동 등 방송인 8명 ▲윤도현 신해철 김장훈 등 가수 8명 등 총 82명이다.

김규리는 과거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국정원 TF는 2010년 3월 김규리(당시 김민선) 출연 가능성을 차단해달라고 SBS에 요청했다. 김규리는 ‘현정아 사랑해’ ‘한강수타령’ ‘러브홀릭’ 등 다수의 드라마에 주연으로 출연했으나 이후부턴 활동이 뜸했다. 김규리는 개명까지 시도하며 여러 방면으로 재기를 시도했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김규리는 약 10년 동안 수많은 악플에도 시달려야 했다. 김규리는 2017년 9월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에 출연해 “악성 댓글에 자살 시도도 했다”며 “제 글에서 ‘청산가리’ 하나만 남게 해서 글 전체를 왜곡했던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과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비판한 글을 올린 것에 대해 “국민의 건강권은 보수적으로 지켰으면 했고 검역주권을 포기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려서 썼던 글”이라며 “이 몇자에 나의 꽃다운 30대가 훌쩍 가버렸다. 10년 이란 소중한 시간이”라고 했다.
■ 2년 만에 뒤집힌 판결, 국가도 ‘블랙리스트 책임’

김규리를 포함한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들은 2017년 9월 이명박 전 대통령,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 8명을 고소했다.
1심 법원은 2023년 11월 소멸시효를 이유로 국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서울고등법원은 지난달 17일 판결을 뒤집었다. 2심 재판부는 “정부는 이명박, 원세훈과 공동해 원고들에게 각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국정원은 지난달 30일 대법원 상고를 포기했다. 국정원은 “피해를 입은 당사자분들과 국민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다만 김규리는 이번 글에서 “사죄를 하긴 했다는데 도대체 누구한테 사죄를 했다는 것인지”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