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 까르띠에 하이 주얼리 컬렉션 ‘앙 에킬리브르’ 공개
까르띠에 2025 하이 주얼리 컬렉션이 지난 5월 26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공개됐다. 총 115점의 아름다운 보석을 아우르는 주제는 ‘균형’. 극적인 화려함과 한계 없는 호사로움으로 대변되는 하이 주얼리 세계에서 이 키워드가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전 세계 미디어가 모이는 전시 현장을 찾았다.
전통·혁신, 자연·도시 양립하는 곳
‘주얼리계의 오트 쿠튀르’. 주얼리 역사가 비비안 베커는 하이 주얼리를 이렇게 정의한다. 실제 세계적 패션 하우스가 기성복과 별도로 고급 맞춤복인 쿠튀르 컬렉션을 제작하는 것처럼, 주얼리 명가 역시 소비층이 넓은 파인 주얼리보다 한 단계 수준 높은 하이 주얼리를 매년 선보인다.
1847년 파리의 보석 아뜰리에에서 시작, 178년의 역사를 이어온 까르띠에 역시 예외가 아니다. 매년 5월 말에서 6월 초, 100점 안팎의 예술 작품 같은 신규 컬렉션을 공개하는데, 그 자체가 하나의 이벤트다. 컬렉션 테마와 연관된 유럽도시 중 한 곳에서 ‘챕터 1’이라 명명한 첫 공개 행사를 열고, 같은 해 9월과 이듬해 4월 다른 지역에서 챕터 2·3을 이어간다.
최근 몇 년 간 컬렉션의 첫 무대는 스페인 마드리드, 이탈리아 코모·피렌체였고, 지난해에는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이어졌다. 지역은 달랐지만 언제나 그곳의 문화와 유산에 대한 깊은 유대감을 내세우며 극적인 행사를 펼쳐온 것은 한결 같았다. 이를 두고 보석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기대를 모으는 아티스트의 신곡 발표회와 같다”는 평이 나온다.

올해는 조금 색다른 장소를 골랐다. 바로 스웨덴 스톡홀름이다. 소박하고 군더더기 없는 실용주의로 대변되는 이 북유럽 대표 도시가 눈부시고 화려한 하이 주얼리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예상치 못한 목적지는 컬렉션에 대한 호기심을 일찌감치 배가시켰다.
이에 대한 답은 5월 26일 전세계 미디어와 셀럽을 초대한 디너 행사에서 찾을 수 있었다. 까르띠에의 마케팅 총괄 부사장인 아르노 카레즈는 인사말을 통해 “스톡홀름은 이상적인 장소”라면서 “이 도시는 전통과 혁신, 도시와 자연, 그리고 안락함과 단단함 사이에서 완벽함을 내포하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상반된 두 가지를 내포하는 스톡홀름의 가치는 2025년 까르띠에 하이 주얼리 컬렉션 주제 ‘앙 에킬리브르(En Équilibre, 균형)’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브랜드는 컬렉션에서 충만함과 공허함, 대칭과 비대칭, 건축적 풍요로움과 단순한 절제 사이에서의 조화로움을 지향했고, 이를 주얼리에 충실히 구현했다. 그리고 이 완벽한 균형점을 지형적으로 문화적으로 품은 스톡홀름을 컬렉션의 베일을 벗는 최적의 장소로 꼽은 것이다. 또 하나, 스웨덴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대표하는 ‘ 라곰(LAGOM)’ 역시 의미를 보탠다. ‘딱 맞는’ 또는 ‘너무 많지도,너무 적지도 않은’이라는 뜻의 이 단어는 2025년 컬렉션의 디자인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되었다.
세련된 단순함이 만드는 역설

컬렉션은 스톡홀름의 옛 자동차 공장 건물인 나카 스트란드스마산(Nacka Strandsmässan)에서 공개됐다. 불필요한 요소를 배제해 간결하고 기능적이지만, 동시에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스웨덴 산업 디자인의 특징을 그대로 품은 현장이었다.
전시에서 까르띠에가 내세운 균형의 요소는 세 가지였다. 컬러·볼륨 그리고 리듬. 생생하면서도 절제된 원석의 색채, 대칭과 비대칭이 만드는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형태, 견고함과 빈틈 사이의 리드미컬한 상호 작용이었다. 까르띠에 하이 주얼리 크리에이션 디렉터인 재클린카라치는 이러한 접근 방식을 “세련된 단순함의 역설”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실제 이날 공개된 115점 중에서도 균형의 세 요소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주인공들이 관람객의 시선을 오래 붙잡았다.
가장 먼저 꼽힌 대표 선수는 쉬토(Shito) 네크리스였다. 일본어 뜻 그대로, 조용하게 내리는 비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이 목걸이는 49.37캐럿 잠비아산 에메랄드 두 개와 곡선을 이루는 다이아몬드가 어우러진 것이 특징. 원석 그대로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는 까르띠에의 비전을 고스란히 보여준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 형태면에서도 정교한 라인만을 내세우며 ‘최소한의 과함’이라는 원칙을 그대로 유지했다.

히알라(Hyala) 네크리스 역시 균형의 개념을 완벽하게 구현한 작품으로 꼽혔다. 소프트 컬러의 핑크 골드, 다이아몬드, 사파이어가 서로 스며들듯 조화를 이루는 데다, 각 보석이 마치 그물망처럼 부드럽고 유연하게 이어지면서 굴곡 있는 쇄골 부위에도 완벽히 안착할 태세였다. 전시 도슨트의 설명은 이 목걸이에 좀 더 의미를 부여했다. “제2의 피부같이 밀착되면서 몸의 움직임에 따라 형용할 수 없는 리듬을 만들어내죠. 주얼리는 감상용이 아니라 몸에 걸치는 작품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오는 겁니다.”

까르띠에의 시그너처라 할 수 있는 팬더 모티브 주얼리들도 이번 컬렉션에선 주인공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산호 카보숑(Cabochon, 윗부분이 둥글거나 볼록하게 연마된 돌) 위에 앉아 있는 팬더를 형상화한 ‘팬더 오르비탈(Panthère Orbitale)’이 그중 하나. 에메랄드로 만든 눈, 다이아몬드와 오닉스로 장식한 몸통 장식도 강렬하지만, 산호와 자수정의 강렬한 색채 대비가 특히 두드러졌다. 이와 대조적으로 ‘팬더 덩틀레(Panthère Dentelée)는 다이아몬드·에메랄드·오닉스로 장식된 부드러운 팬더를 선보였다. 이 목걸이는 콜롬비아산 에메랄드 비즈를 마치 폭포 물줄기처럼 형상화하면서 보석 사이사이로 투과되는 빛의 조화를 극대화시켰다.

여기에 공작의 꼬리와 눈알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파보셀(Pavocelle) 네크리스 역시 또 하나의 하이라이트였다. 동물의 꼬리를 연상시키 는 플래티넘 투각(Traforata, 문양 부분이나 배경부분을 완전히 도려내어 구멍을 뚫은 기법) 피스들이 58.08캐럿 실론 사파이어 카보숑을 둘러싸며 볼륨감을 극대화시켰다. 특히 메인 피스를 떼어 브로치로 쓸 수 있고, 잠금장치에 박힌 페어형 다이아몬드를 펜던트로 다시 부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연한 형태의 균형을 보여주기도 했다.
백야에서 빛난 하이 주얼리
까르띠에 하이 주얼리 컬렉션 행사의 꽃은 따로 있다. 바로 갈라 디너다. 황홀한 보석의 세계를 그대로 이어가는 비현실적 시공간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이번엔 어떤 장소가 될지 스톡홀름의 유서 깊은 명소를 떠올리며 후보를 점쳤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손님들을 불러들인 곳은 스톡홀름 군도의 아름다운 베름되섬에 위치한 아르티펠라그(Artipelag) 아트 갤러리. 손님 모두가 자동차가 아닌 보트를 타고 이동하는 자체가 이미 특별한 이벤트의 시작이었다.

이윽고 도착한 선착장에서 갈라 디너 장소까지 걸어가며 감상했던 ‘타블로 비방(Tableaux Vivants, 연극적 구성과 회화적 정지를 활용한 퍼포먼스 기법)’ 퍼포먼스 역시 깜짝 이벤트가 됐다. 이탈리아 출신 오트 쿠튀르 디자이너 지암 바티스타 발리의 드레스를 입은 모델들이 앙 에킬리브르 컬렉션의 주요 작품과 함께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 것. 오후 10시나 돼야 해가 지는 북유럽의 ‘하얀 밤’을 배경으로, 숲에서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듯한 동화적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한편 당일 만찬에는 미국 배우 조 샐다나와 스웨덴 배우 알렉산데르 스카스가드, 하우스 앰배서더인 인도 배우 디피카 파두콘과 일본 배우이자 가수인 안나 사웨이가 참석하여 자리를 빛냈다. 이어진 파티에서는 캐나다 밴드 ‘더 비치스’의 공연과 뮤지션 도리온 피젤의 디제잉이 함께 하며 컬렉션 론칭을 축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