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유산청은 올해로 6번째인 쪽샘지구 유적 발굴에서 신라 돌방무덤(K91호 무덤)과 덧널무덤(J230호 무덤)을 조사해 신라 지배 계층의 다양한 무덤 축조 방식과 장례 모습을 확인했다고 29일 밝혔다.
이번 조사에 포함된 돌방무덤(K91호 무덤)은 쪽샘지구의 1300여기 무덤 중 최초로 확인된 형식인데, 5차례에 걸쳐 독특한 형태로 매장이 있었다. 돌방무덤(石室墓)은 판돌 또는 깬돌을 이용하여 무덤방을 만들고, 출입시설을 갖춘 무덤이다.

깬돌을 사용하여 네 벽을 쌓아 만든 무덤방은 길이 2.9m, 폭 2.3m 크기로, 방 안에서는 시신과 부장품을 안치한 공간이 5곳 확인되었다. 방의 가장 안쪽인 북쪽 벽에 붙여 폭 76cm, 높이 15cm의 시신받침(시신과 부장품을 놓기 위해 만든 시설)을 만들고, 그 위에 금귀걸이 한 쌍을 착용한 시신을 안치한 것이 최초 매장이었다. 주변에서는 미늘쇠, 철제 낫, 운모 등 부장품도 함께 출토되었다. 시신받침이 있는 곳을 제외하고 무덤방의 바닥에는 자갈돌을 깔았다.
2·3차 매장은 1차 시신받침의 남쪽에 붙여 1차보다 높은 31cm 높이에 폭 78cm, 폭 79cm의 시신받침을 각각 만들어 시신과 부장품을 안치하였다. 4차 매장은 3차 시신받침 남쪽에 붙여, 폭 70cm, 높이 31cm의 시신받침을 만든 후 공간이 좁아 널길까지 확장해 이루어졌다. 2~4차 매장에서는 금동제 허리띠 장식, 철제 손칼, 미늘쇠, 쇠도끼, 병(甁) 등이 부장품으로 출토되었는데, 여러 차례 이뤄진 매장으로 인해 흐트러진 채 출토되었다.
5차 매장은 이전 매장과 달리 남북 방향으로 긴 부장 공간을 만들었는데, 동쪽 벽에 붙여 폭 50cm, 높이 20cm로 만들었다. 남쪽으로 굽다리접시 등 토기류를 부장하였고, 좁은 공간 때문에 시신 안치는 기존 2~4차 시신받침을 재사용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국가유산청은 설명했다.
돌방무덤에 있는 사람들은 주변 돌무지덧널무덤(K254·K255호)에 먼저 묻힌 사람들과 가족 등 긴밀한 관계였던 것으로 추정됐다. 무덤 방 주변으로 돌려져 있는 2개의 석렬(石烈)을 통해 안에서 밖으로 확장하면서 봉토를 쌓는 ‘양파형 성토법’으로 축조됐다.
출토 유물들로 미루어 돌방무덤은 6세기 중·후엽 경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돌방무덤은 쪽샘지구 1300여 기의 무덤 중 최초이며, 대릉원 일원 전체에서도 7기에 불과하다. 국가유산청은 “6세기 이후 신라 지배층의 무덤 형태가 돌무지덧널무덤에서 돌방무덤으로 변화하는 모습, 나아가 당시 사회 집단 또는 계층별 무덤군의 장소 선정이나 장례 방식 등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함께 조사된 덧널무덤은 구덩이를 파고 길이 3.4m, 폭 0.8m의 나무 곽을 짜서 넣은 뒤 구덩이와 나무 곽 사이 돌을 채운 형태로, 내부에는 시신과 함께 철제 창, 큰항아리, 컵모양 토기 등을 부장하였다. 유물로 보아 쪽샘지구에서는 드문 4세기 후반 경에 만들어진 무덤으로 추정된다. 이 무덤의 반경 20m 내에서는 크기가 비슷한 덧널무덤이 무리 지어 있는 데 반해, 동쪽에서는 5세기에 만들어진 지름 10m 이상의 돌무지덧널무덤이 무리 지어 있었다. 국가유산청은 “쪽샘지구 무덤군이 시기별, 계층별로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밝힐 수 있는 자료”라고 설명했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는 동국대 WISE캠퍼스 고고미술사학과와 쪽샘지구 유적에서 매년 공동으로 발굴조사를 해오고 있다. 이번 조사 성과와 출토 유물은 30일 발굴조사 현장에서 일반에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