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부의 노동에 대한 태도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선명하다. 물론 ‘친 노동’으로 출발했던 노무현 정부도 집권 6개월 만에 “노동계가 연대의 가치보다 조직 이기주의에 빠져있다”며 중립적인 태도로 변했던 사례가 있기에 이재명 정부의 노동존중 기조가 지속한다는 보장은 없다. 다만 이 대통령이 다른 어떤 대통령보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높다는 점에서 태도 변화의 가능성이 높지 않을 수 있다. 고용노동부에 산재 사망사고나 임금체불 개선을 끊임없이 독려하고, 하청노동자의 노동권 강화에 단호한 입장을 보였던 데에는 대통령의 의중이 작용한 듯하다.
민주당·국회, 노동정책 따로 추진
성과 제한적이고 부작용도 우려
대통령이 사회적 대화 되살리길

그러나 대통령의 노동 존중이 임기 중에 지속가능한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정책 동력으로 연결되려면 두 가지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첫째, 대통령의 관심 방향을 살피며 여러 정책 단위에서 속도전과 실적 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노란봉투법’ 논란이 가라앉기도 전에 고용노동부는 ‘4.5일제 추진단’을 서둘러 출범시켰고, 민주당은 연내에 법 개정을 목표로 정년연장특별위원회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국회 차원에서는 우원식 의장 주도로 사회적 대화 기구를 만들어 디지털 전환부터 플랫폼 노동까지 폭넓은 의제를 다루기로 했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 때문에 이재명 정부가 노사 사이에서 균형을 잃고 노동 존중 일변도로 흐른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과거의 사례에 비춰볼 때 정치권이 노동정책의 주도권을 쥐려는 조짐을 특히 경계할 필요가 있다.
둘째, 노동정책 과제들을 하나씩 쪼개서 각개약진하듯 추진하면 성과가 제한적이고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중대재해나 임금체불, 만성적인 과로노동 해소 등 밀린 숙제만 아니라 증가하는 사각지대 취업자 문제나 청년을 위한 좋은 일자리 부족 문제가 모두 노동시장 양극화에서 비롯된 병증이다.
노동시장의 왜곡은 한두 개의 법 조항이나 행정 조치로 단번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고, 따져보면 노동정책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여러 정책 수단을 모아 세트 메뉴로 만들어 4~5년 꾸준히 추진해야 조금씩 개선할 수 있을 정도로 고질적 문제다.
경제 변화 추세를 보면 적극적 정책 개입 없이 고용이 개선되고 격차가 축소될 가능성은 작다. 미국의 통상 압박 와중에 한국의 대표적 제조기업들의 대규모 대미 투자 러시는 좋은 일자리 창출에 부정적이다. 인공지능(AI)과 로봇의 확산으로 일자리 지도가 급변하고 격차가 확대되는 추세도 노동시장을 더욱 혼란에 빠뜨릴 전망이다.
중국의 도전에 밀린 석유화학과 철강 산업은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고, 배터리와 조선 부문도 미국의 중국 견제에 기대어 시장을 어렵사리 지키고 있다. 이로 인한 고용 충격은 시차를 두고 경제와 사회 전반을 압박해올 것이다. 이는 불가피한 전환 과정이고 위기와 기회가 교차하는 위험한 시기다.
이 전환의 계곡을 잘 통과해야 새로운 균형에 안착할 수 있다. 전환기 위기관리는 전적으로 대통령의 리더십에 달려있다. 대통령이 당면한 경제적 변화의 성격과 정부의 대응 방향을 잘 설명하고 노사 협력과 국민적 합의를 구해 나가야 한다. 대통령은 결국 경제 성장과 고용 지표로 평가받고, 구조 전환기에는 위기 극복을 위한 국민적 합의 형성이 정권의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는 물론이고, 주52시간제와 비정규직보호법 도입에 따른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노·사·정이 대화와 타협을 위해 노력했던 전통이 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30여 년에 걸친 대화와 타협의 경험을 축적해왔고 전문 인력도 있다. 국회가 주도하는 대화 기구에 민주노총이 참여한다지만 국회 차원의 사회적 대화는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되기 어렵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자리와 노동문제는 대통령 프로젝트로 추진해야 성공할 수 있다. 대통령이 나서서 노동시장 구조개혁과 일자리를 위한 사회적 대화를 주도하면 좋겠다. 경제 질서와 일자리 지도가 바뀌는 대전환기인 지금이야말로 노사가 거부할 수 없는 대담한 구상을 제시하며 노동시장 인프라와 노조의 역할을 새롭게 설계하는 대화와 타협을 시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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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기 전 한국노동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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