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교류 더 많아져야 이해의 폭 넓어질 것” [차 한잔 나누며]

2025-05-11

‘지한파’ 日 언론인 다치가와 마사키

초년생 기자 시절 DJ와 인연

유신정권 저항 인사 취재하다

민청학련 연루 누명으로 옥고

취재 중에 만난 한국인들 소개

‘한국인명사전’ 발간 준비 한창

“양국 정치인 서로 트집만 잡아”

“일본과 한국 사이에 각급 교류가 더 많아져야 해요. 서로 왔다 갔다 하면서 대화도 하고 싸우기도 해야 서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가깝게 지낼 수 있는 거죠.”

일본 대형 출판사 고단샤의 시사지 슈칸겐다이(週間現代)에서 1970년대 초부터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담당했던 일본의 ‘지한파’ 언론인 다치가와 마사키(太刀川正樹·79)씨의 말이다.

올해 한·일 관계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DJ는 물론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고 김운용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 등 그간 취재 활동 등을 통해 만난 한국인들의 진면목을 소개하는 책 ‘한국인명사전’(가제)을 준비 중인 그는 “양국 정치인들이 자기 (정치적) 이익을 위해 서로 트집만 잡는다”면서 양국 간 교류 활성화 필요성을 역설했다.

후쿠오카에 거주 중인 그는 지금도 고단샤 계열 매체 닛칸겐다이(日刊現代)에 칼럼 등을 게재하며 현업 언론인으로 활동 중이다. 2019년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의 한국 외교를 비판적으로 분석했고, 2020년에는 한국에서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던 현장을 취재했다. 일본에서 18년 만에 열리는 가수 계은숙의 디너쇼 취재차 지난달 말 도쿄로 올 예정이던 그와 만나기로 했으나, 디너쇼가 취소되는 바람에 대신 전화와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20대 초반 부산과 전남 목포·진도 등을 여행하며 한국에 흥미를 갖게 됐다는 그는 초년생 기자 시절 DJ와 인연을 맺었다. 1972년 10월 유신이 터지자 다리 부상 치료차 일본에 와 있던 DJ가 망명을 결정하면서다. 다치가와씨는 “그때 DJ는 유신 체제를 비판하기 위해 정력적으로 일본과 미국을 오가며 많은 정치인과 언론인을 만났다”며 “중앙정보부 감시를 피해 거처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던 DJ를, 독일 쥐트도이체차이퉁의 게브하르트 힐셔 기자의 소개로 도쿄 신바시에서 만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1972년 말로 기억하지만, 최근 동교동 DJ 사저 정리 과정에서 발견된 DJ의 ‘망명일기’에는 1973년 3월8일로 기록된 두 사람의 첫 만남이었다.

1973년 8월 DJ 납치사건 발생 직후에는 한국으로 급파됐다. 그는 “의외로 아무런 방해 없이 DJ와 동교동 사저에서 수차례 만나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인터뷰 후에는 녹음테이프 하나를 받아 일본의 DJ 지지단체 쪽에 전달하기도 했다. DJ가 도청·감시를 우려해 중요한 연락은 외신기자 등을 통해 인편으로 주고받던 시절이었다.

그는 유신정권에 저항하는 대학생과 재야인사들을 취재하다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10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끼니를 거르기 일쑤이던 대학생들에게 “불고기라도 사 먹으라”며 준 돈 7500원이 화근이었다. 이 돈이 수사 과정에서 ‘북한 간첩 공작금’으로 둔갑했다. 그의 누명은 2010년 1월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되면서 36년여 만에 벗겨졌다. 그때 만난 대학생 유인태(전 국회 사무총장), 이철(전 코레일 사장)과 감옥 동기 장영달(전 국회의원)도 그가 집필 중인 책에 들어가게 될 터다.

억울한 일을 겪고도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식지 않았다. 1980년대 초반 뉴욕에서 근무하던 시절 미국에 망명한 DJ를 만나 인터뷰했고, 1997년 대선 때는 일본 TV방송의 DJ 생중계 인터뷰에도 함께했다. 이런 인연으로, 그는 올해 2월 방한해 DJ 망명일기 출간 준비 작업을 도왔다.

그는 DJ를 한·일 관계 발전에도 큰 획을 그은 정치인으로 평가했다.

“DJ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일본 자민당 일각에선 ‘납치사건에 관한 양국 정부 간 유착에 불만을 품고 일본에 냉랭한 입장을 취하는 것 아니냐’는 경계심이 컸어요. 하지만 DJ는 유연한 태도를 보였고 1998년에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선언하며 양국 간 새 시대의 막을 올렸죠.”

도쿄=유태영 특파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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