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기업의 ‘부채 성장 공식’

2025-05-19

성공적인 사업모델을 구축한 벤처 기업들은 벤처캐피털이나 그로스캐피털(growth capital) 등 기관투자자들을 통해 성장 자금을 유치하는 것이 일반적인 공식이다. ‘시리즈’ 혹은 ‘라운드’라 불리는 단계를 거쳐 가며 기업 가치를 높이고, 그 가치를 기준으로 신규 자금을 모집한다. 최종적으로는 상장을 통해 투자자들에게 투자금 회수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대규모 신규 자금도 확보한다.

최근 미국에서는 사업 모델이 검증된 벤처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대안적 자금 조달 방식인 ‘벤처 부채’가 주목받고 있다. 벤처 부채는 시중 금리보다는 조금 높은 이자율과 몇 가지 강제 상환 조건을 묶는 형태로 발행된다. 신주인수권(워런트, warrant)이 함께 제공되어, 신주를 낮은 가격에 인수해 추가 이익을 누릴 수 있는 옵션이 제공되는 경우도 많다.

벤처 부채가 주목받는 이유는 벤처 기업의 창업자나 기존 투자자들의 지분 희석을 최소화하면서도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회사가 신주 발행으로 투자금을 모집하는 경우에는 기존 주주들의 지분 희석이 불가피하다. 일반적으로는 기업 가치를 높여 신주를 발행하기 때문에 희석 정도가 낮기는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마지막 라운드와 동일하거나 낮은 기업 가치로 신주를 발행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희석 정도가 커질 수밖에 없다.

자본이 아닌 부채의 성격을 가진 벤처 부채의 경우, 신주인수권이 행사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지분 희석 없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해준다. 회사의 기업 가치가 장기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확신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단기적으로 높은 기업 가치로 투자 유치가 어려운 경우, 벤처 부채는 매우 매력적인 선택지다. 높은 기업 가치로 신주를 발행할 수 있는 시점이 오면, 그때 유치한 자금으로 부채를 상환하면 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실리콘밸리은행(SVB), 허큘리스캐피털 등이 벤처 부채 사업에 매우 적극적이다. 미국의 에어비앤비와 도어대시, 영국의 리볼트 등 유명 벤처 기업들이 이를 활용해 성장 자금을 조달한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는 최근 마이리얼트립과 직방이 사모펀드로부터 벤처 부채를 조달하면서 시장이 막 조성되고 있다.

국내 은행과 증권사 등 대형 금융기관들도 이 새로운 시장에 대한 관심을 보이며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다만, 벤처 기업들에 대한 가치 및 신용 평가 체계가 명확하지 않아 리스크 관리가 어렵다는 점은 이들의 진입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결국 성공 사례가 쌓이고, 평가 체계가 구축되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철민 VIG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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