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잃은 엄마는 왜 직접 ‘마약 카르텔’을 쫓았나

2025-11-06

두려움이란 말 따위

아잠 아흐메드 지음 정해영 옮김 동아시아 | 424쪽 | 2만원

미리암 로드리게스(1960~2017)는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멕시코 동부 타마울리파스주의 작은 농업 도시 산페르난도에서 자랐다. 세 살 많은 건장한 남자 루이스 살리나스와 10대 후반에 결혼했다. 대학에는 가지 못했지만 농무부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1977년 딸 아잘리아를, 1982년에는 아들 루이스 엑토르를 낳았다. 농무부 공무원을 그만둔 다음해인 1992년 태어난 막내딸 카렌은 가족의 마스코트였다.

미리암은 2000년대 중반 체중이 150킬로그램까지 불어났지만 위 우회 수술을 통해 90킬로그램을 감량하고 자신감을 회복했다. 남편과 함께 운영하던 가게도 잘 돌아갔다. 남편의 고질적인 외도와 그 반작용으로 엇나가기 시작한 카렌을 제외하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삶이었다. 2014년 1월24일 카렌이 마약 카르텔 조직원들에게 납치되기 전까지는.

뉴욕타임스 멕시코 특파원을 지낸 아잠 아흐메드가 4년 동안의 취재를 바탕으로 쓴 <두려움이란 말 따위>는 딸의 납치범들을 추적하는 엄마의 분투를 담은 책이다. “죽을 각오로 모든 관련자들을 끝까지 추적”한 미리암의 용기 있는 행동은 마약 카르텔에 의해 붕괴된 멕시코 지역 사회의 참상과 멕시코 정부의 무능력이라는 배경 위에서 더욱 도드라지게 빛난다. 책은 저자의 치밀한 스토리텔링에 힘입어 마지막 페이지까지 단단한 흡인력을 유지하면서, 10만명이 넘는 멕시코의 악명 높은 실종자 문제가 얼마나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인지를 생생하게 드러낸다.

‘실종자 10만명’ 악명 높은 멕시코

딸 납치범 추적 분투 담은 논픽션

범죄 조직·권력 결탁 사회의 비극

피해자가 미온적 경찰을 대신해

증거 찾아내고 관청 압박해 조사

연루범들 찾아 수감·사살했지만

결국 탈옥 조직원들에 총살당해

원래 타마울리파스주를 지배하고 있던 건 ‘걸프 카르텔’로 알려진 범죄 조직이었다. 미국 금주법 시대인 1920년대 미국으로의 주류 밀수로 시작한 걸프 카르텔은 1980년대에 접어들어 마약 밀수로 세력을 크게 키웠다. 1998년 걸프 카르텔이 경쟁 조직들을 제압하기 위해 육군 특수부대 출신들을 영입해 준군사 조직 세타스를 창설하면서 마약 카르텔들의 폭력성은 변곡점을 맞았다. 세타스는 인질을 산 채로 불태우거나 절단한 사체를 거리에 전시하는 등 차원이 다른 잔혹성으로 악명을 떨쳤다.

이후 독자 세력화를 추진한 세타스가 2007~2010년 사이 걸프 카르텔과 ‘전쟁’을 벌이면서 마약 밀매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반 주민들도 위험에 노출됐다. “무고한 사람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폐기처분됐다. 2010년에는 세타스가 산페르난도를 사실상 ‘점령’하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해 8월 미국 밀입국을 위해 트럭을 타고 가던 72명이 세타스 조직원들에게 살해됐다. 걸프 카르텔과 세타스가 분열한 다음해였던 2011년 멕시코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은 2만8000건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세타스의 온갖 악행 중 가장 악질적인 건 마약 밀수와 함께 ‘지역 주민 납치’를 조직의 자금줄로 삼았다는 점이다. 걸프 카르텔과 싸우면서 활동 자금이 부족해진 세타스는 부유한 사람만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도 표적으로 삼았다. “세타스 입장에선 지역 주민 대상의 납치와 약탈은 마약 밀수와 무관하면서도 안정적인 수입원이었다. 곧 다른 조직들도 이와 같은 범죄를 벌이기 시작했다.”

선거 승리를 위해서라면 범죄 조직과도 손을 잡았던 멕시코 역대 정권은 마약 카르텔 단속에 미온적이었다. “계속 돈줄을 쥘 수만 있다면 정부에서는 밀수업자들을 내버려뒀고, 필요하다면 보호해 주기까지 했다.” 세타스가 장악한 지역의 정치인과 경찰은 “뇌물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총알 세례를 받을 것인지” 선택해야 했다.

미리암은 2년 동안 혼자 힘으로 증거를 축적하고 관청과 경찰을 압박해 조사에 나서게 만들었다. 용의자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일거수일투족을 추적하면서 그는 경찰보다 지역 범죄 조직의 동향과 사정을 잘 꿰뚫게 됐다. 연방경찰이 미리암에게 수사 협조를 요청할 정도였다. 세타스는 공포로 사람들을 지배하려 했지만 타고난 담력과 집요함, 딸을 잃은 슬픔과 분노로 무장한 미리암에게 “두려움은 한낱 단어일 뿐”이었다. 결국 카렌 납치에 연루된 범인 4명은 교도소에 수감됐고 6명은 멕시코 해병대의 총에 사살됐다.

미리암은 2016년 2월 카렌의 유해 일부를 수습해 산페르난도 공동묘지 근처 사이프러스 숲 뒤편에 묻었다. 정의를 추구하는 미리암의 행보는 다른 피해자들과의 연대로 확장됐다. 멕시코는 피해자 권리 보장을 위한 법률을 갖추고 있었지만, 정부의 실행 의지가 부족하고 당사자들조차 법률의 존재를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미리암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실종 피해자 가족들이 정부를 압박해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할리우드 영화 같은 이야기지만 미리암의 이야기에 ‘해피엔딩’은 없다. 2017년 3월22일 타마울리파스주 시우다드 빅토리아 교도소에서 수감자 29명이 탈옥했다. 이 교도소에는 카렌 납치·살해에 가담한 세타스 조직원들이 다수 수감돼 있었다. 미리암의 정보원은 교도소에서 세타스 조직원들이 ‘보복’을 결정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미리암은 정부에 신변보호를 요청했지만, 하루에 한 번 집 주변을 순찰하는 게 전부였다.

2017년 5월9일, 밤늦게 퇴근한 미리암은 10시30분쯤 집 앞에 도착했다. 차에서 나오는 미리암을 향해 권총을 든 남자 2명이 다가갔다. 미리암은 총 8발의 총알을 맞았다. 미리암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을 거뒀다. 그날은 멕시코의 ‘어머니의날’이었다.

원서는 2023년 미국에서 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저자는 올해 5월 아프가니스탄 관련 보도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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