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미 대표의 기업 커뮤니케이션으로 살아남기] 〈7〉오바마와 잡스가 증명한 '인상을 남기는 커뮤니케이션'

2025-07-07

우리는 누군가의 발표를 들을 때, 그가 무슨 말을 했는 지보다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말투로, 어떤 자세로 말했는지를 더 강하게 기억한다.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에 인상을 새기는 작업이다.

이때 핵심은 비언어적 요소다. 말의 내용은 문서로 남지만, 태도와 표정, 시선, 목소리의 떨림은 청중의 뇌에 정서적 기억으로 각인된다. 사람은 무의식 중에 말하는 이의 진정성, 자신감, 준비도를 목소리와 몸짓에서 판단한다. 이는 개인 커뮤니케이션에서도 중요한 요소지만, 기업을 대표하는 발표자의 자리에서는 그 중요성이 몇 배로 증폭된다.

심리학자 알버트 메라비언(Albert Mehrabian)의 유명한 연구는 이러한 비언어적 요소의 비중을 수치로 설명한다. 그는 감정이나 태도가 담긴 메시지를 전달할 때, 언어의 내용이 전달에 미치는 영향은 고작 7%에 불과하며, 목소리의 어조가 38%, 나머지 55%는 표정과 제스처 같은 비언어적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고 밝혔다. 이른바 '7-38-55 법칙'이다. 물론 모든 상황에 이 법칙이 똑같이 적용되진 않지만, 감정이 얽히고 신뢰가 중요한 상황에서, 비언어적 요소가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 법칙을 기업 커뮤니케이션에 대입해보면 더 큰 의미가 생긴다. 기업은 정보를 전달하는 조직이지만, 동시에 시장과 이해관계자에게 신뢰를 형성해야 하는 존재다. 그 신뢰는 숫자와 전략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회사의 의도를 설명하는 사람의 말투와 태도, 시선과 리듬에서 전달된다.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준 인물 중 하나는 버락 오바마다. 그는 연설문보다 연설 '방식'으로 기억되는 정치인이다. 그의 말에는 일관된 속도, 적절한 멈춤, 낮은 톤, 청중을 향한 안정된 시선이 있었다. 정치적 신념이나 정책보다 먼저, 사람들은 그가 말하는 태도에서 '생각하는 대통령', '책임지는 리더'라는 인상을 받았다. 많은 청중은 오바마가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말투에서 느껴졌던 진중함, 침착함, 여유로움은 뇌에 오래 남는다.

또 다른 대표 사례는 스티브 잡스다. 그는 제품을 설명하는 대신, 제품의 존재 이유를 전달하는 말의 방식을 택했다. 그는 청중을 향해 눈빛을 고정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 절제된 손동작으로 메시지를 강화했다. “세상에서 가장 얇은 노트북”이라는 문장을 말할 때, 그 어조에는 확신과 자부심이 녹아 있었고, 손의 제스처는 그 메시지를 시각화했다. 잡스의 발표에서 청중은 스펙이 아니라 느낌을, 신뢰를, 철학을 받아들였다.

잡스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은 의상에서도 이어진다. 그는 수년간 발표 때마다 같은 옷을 입었다. 이세이 미야케의 검정 터틀넥, 리바이스 501 청바지, 뉴발란스 운동화. 단순한 패션이 아니라, 선택의 피로를 줄이고 메시지에 집중하겠다는 의도, 그리고 '잡스'라는 브랜드를 하나의 상징으로 각인시키는 전략적 이미지 설계였다. 발표 내용보다도, 그의 모습은 애플이라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대변했다. 이는 말보다 강력한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이었다.

그런데 우리 기업 현장을 보면 여전히 내용을 암기한 채 무대에 오르는 대표자와 임원들이 눈에 띈다. PPT는 완성됐지만, 발표자의 말은 흔들리고, 시선은 불안하며, 말투는 기계적으로 흐른다. 자료는 정돈돼 있지만, 말의 태도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다.

발표자는 단순한 정보전달자가 아니라 기업의 얼굴이며, 감정적 대변인이다. 발표자의 표정과 손동작, 말의 리듬과 시선, 목소리의 높낮이는 곧 그 기업이 시장에 말하는 방식이 된다. 비언어는 말의 부속이 아니라, 메시지의 본질을 지배하는 요소다.

따라서 기업은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신뢰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을 양성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스피치 훈련을 넘어서, 조직의 정체성과 핵심 메시지를 드러내는 말의 설계, 태도의 훈련으로 이어져야 한다. 발표자는 보고서를 낭독하는 사람이 아니라, 브랜드와 메시지를 살아있는 얼굴로 표현하는 존재다.

커뮤니케이션은 단어의 나열이 아니라 인식의 구조를 만드는 과정이다. 문장은 잊히고, 이미지는 남는다. 회사가 어떻게 보일지는 결국 그 말을 누가, 어떤 표정과 어떤 말투로 말했는가에 달려 있다. 기업을 대표하는 자리에 서는 사람의 태도는, 곧 그 기업의 정체성과 무게를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다.

문경미 ㈜더컴퍼니즈 대표 (기업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chloemoon@thecompanies.co.kr

길재식 기자 osolgil@etnews.com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