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 칼럼니스트

“2016년부터 ‘안경너머세상’을 써 왔습니다. 10년입니다.
개방적으로 다양한 소재를 다루다 보니 시답잖은 글도 적지 않았겠는데, 한결같이 사랑해 준 여러분께 고개 숙여 고마운 인사를 올립니다.
사실은 제 건강이 좋지 않아 붓을 내려놓으려 하다가도, 가까이에서 제 글을 읽어 주시는 많은 강호 제현의 관심과 따뜻한 격려를 저버릴 수 없어, 쓸 수 있는 데까지 쓰자고 버텨 왔습니다. 사람의 깜냥엔 한도가 있는 거군요. 정겨운 시선으로 양해하시기를 바랍니다.
올리고 싶었던 글 ‘나라꽃이 제자리에 있는 나라’를 472회 마지막으로 제 칼럼을 마무리 하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무궁화의 존재감이 날로 퇴색하고 있다. 전엔 학교 교문을 들어서면 무궁화동산, 길가에도 줄을 지었던 꽃이다.
어째선지 무궁화가 피어 있는 풍경을 만나기 어렵다. 집엔 심으려고도 않는다. 일산 호수공원에서 본 무궁화 꽃 숲이 아름다웠다. 나라꽃에 환호했다. 한때 살던 조천은 제주 항일운동의 진원지다. 독립지사 열네 분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곳, ‘만세동산’이 있는 곳이다. 일경에 저항했던 지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동산을 성역화했다.
이곳 광장을 운동 삼아 걸으며 아쉬웠다. 널따란 경역에 무궁화나무가 고작 몇 그루밖에 없는데, 동선 따라 심은 후피향나무가 보기에 거북하다. 꼭 무궁화라야 한다는 게 아니다. 너른 터에 겹으로 심으면 되는 일이다. 항일기념관이 들어선 곳이면 의당 무궁화가 숲을 이뤄야 하지 않을까.
제주에 그치지 않고, 육지를 나들이하며 놀라는 게 이곳저곳 벚꽃 난분분한 정경이다. 처처에 즐비하다. 이러다 국토가 벚나무 숲으로 뒤덮이는 건 아닌지. 봄이 오면 나라 안이 벚꽃을 즐기는 상춘객들로 북적댄다. 벚꽃에 밀려 무궁화가 뒷전으로 물러서고 있다. 그나마 정부대전청사 숲 공원과 한밭수목원에 무궁화가 아름답다 하고, 과문(寡聞)에 무궁화나무를 심은 마을도 있단다.
7월에서 10월까지 백날을 끈질기게 피는 꽃이다. 하양, 분홍, 보랏빛에 화려한 무늬까지. 앞지르려 않고, 끼어들지 않고, 순번을 기다리듯, 순리대로 이어 가는 꽃-무궁화. 겨레의 성정을 빼닮았다.
한때 혹독히 수난을 겪었다. 일제강점기에 방방곡곡의 무궁화를 다 뽑아버리라 했다. 암울한 그 시대를 버텨 온 강건한 꽃이다. ‘학교 종이 땡땡땡’ 다음으로 무던히도 불러댔었지, ‘무궁화, 무궁화 우리 나라꽃’하고.
이제 평화가 깃든 이 나라 이 강토에 나라꽃이 제자리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에게 나라와 민족과 역사를 말할 수 있으리라. 왕벚꽃은 원산이 제주라는 이유만으로 벚꽃을 마구 심어대는 것도 생각할 문제다. 무궁화가 피는 이 땅의 향기, 한 가닥 훈풍에 실려 온 누리에 번지면 오죽 좋을까.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려 할진댄, 나라꽃이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 애국가 후렴에 나오는 우리나라 꽃 아닌가.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하고 부를 때면 가슴 뭉클하다.
무궁화는 곧 잠재적 교육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