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표님께 세일즈 포지션을 제안받았을 때는 ‘어떻게 이렇게 험한 일을…’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제 편견이었습니다.”
‘채널톡’을 서비스하는 채널코퍼레이션에서 영업을 담당하는 양효진 씨는 이달 11일 서울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서 열린 ‘우먼 인 스타트업 콘퍼런스’에서 이같이 서두를 뗐다. 그는 기존 관계 구축형 영업 대신 고객의 문제를 풀어주는 일로 영업을 재정의했다. 영업의 품질을 상향 표준화하는 ‘맥도날드 세일즈’라는 전략을 내세웠고 영업자 개인 역량이 아닌 데이터와 시스템으로 뛰어난 성과를 만들었다. 술자리에서 친밀감을 쌓고 관계를 구축하는 기존 영업 대신 새로운 방식이 통한 것이다. 그 결과 현재 채널코퍼레이션의 영업 분야 4명의 리드(중간관리자급)는 전원이 여성이다.
이날 콘퍼런스에서는 영업·재무·개발·대관 등 전통적으로 남초 영역에서 여성 중간관리자들이 마주한 유리천장과 이를 돌파한 경험이 공유됐다. 이들의 사례는 희망적이었지만 현실과의 괴리는 컸다. 같은 자리에서 공개된 ‘스타트업 성평등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스타트업 200곳의 중간관리자 중 여성 비율은 25.3%로 조사됐다. 임원으로 올라가면 여성 비중은 13.7%로 급감한다. 분야별 편차는 더욱 커 모빌리티 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1.8%에 그쳤다.
10년 전 셰릴 샌드버그 전 메타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린인(Lean In)’을 내세우며 여성들에게 “일단 회의실에 앉으라”고 조언했다. 그간 많은 여성들이 자리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AI 시대에 유리천장은 더 은밀하고 정교한 방식으로 강화되고 있다. 채용부터 평가, 승진이 인사관리(HR) AI 에이전트의 업무로 자동화되면서 기존의 유리천장을 반영한 데이터가 활용되고 있다. 아마존이 개발한 AI 채용 프로그램이 여성에게 점수를 더 낮게 준 것도 기존의 불평등 데이터를 학습했기 때문이다. 유리천장에 따른 불평등 수치가 다음 세대 AI의 학습 기준이 되면 데이터가 새로운 유리천장이 되는 ‘유리 알고리즘’이 두려운 순간이다.
AI 시대의 ‘린 인’은 달라져야 한다. 회의실에 앉는 것을 넘어 AI 시스템에 개입해야 한다. 데이터 구조를 감시하고 평가 알고리즘의 출발점을 바꿔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영역에 도전해 기존 데이터를 뒤엎는 사례를 만들어가는 데 있다. 이는 개개인의 노력을 넘어 기꺼이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리더에게도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