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시인 김지하가 떠난 지 3주기
1970년 '사상계'에 발표한 '오적' 회고
55년 전 풍자와 해학... 이 시대에도 공감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시인 김지하는 1970년 잡지 '사상계'에 발표한 담시 '오적(五賊)'에서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을사오적에 빗대어 당시 한국 사회에 만연했던 부정부패와 비리를 해학적으로 풍자하였다. 그 후폭풍이 엄청나서 김지하와 편집자들은 줄줄이 고문당하고, 결국 '사상계'는 강제로 폐간되었다. 그 시대의 청년들이 뒤늦게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같은 시만 접하다가 풍자와 해학, 시적인 은유가 넘치는 청년 김지하의 힘 있는 시를 읽고 감격하고 공감했다.

김지하는 판소리와 타령의 운율을 빌려 군부 독재로 멍들어 가는 시대를 한탄하면서 그 중심에 있는 오적의 행태를 실랄하게 비판했다. 한 구절 한 구절이 버릴 게 없는 명작이었다.
'시(詩)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딱 이렇게 쓸 것이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치안 본부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 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겠다/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 이야길 하나 쓸 것이다.'
이렇게 시작하는 '오적'에는 다섯 도둑이 차례로 끌려 나온다.
'첫째 도둑 나온다/ 狾䋢(재벌)이란 놈 나온다/ 돈으로 옷해 입고 돈으로 모자 해 쓰고 돈으로 구두 해 신고 돈으로 장갑 해 끼고/ 금시계, 금반지, 금팔찌, 금단추, 금넥타이 핀, 금커프스 버튼, 금 버클, 금니빨, 금손톱, 금발톱, 금지퍼, 금시계줄./ 디룩디룩 방댕이, 불룩불룩 아랫배, 방귀를 뽕뽕 뀌며 아그작아그작 나온다/ 저 놈 재조 봐라 저 재벌놈 재조 봐라/ 장관은 노랗게 굽고 차관은 벌겋게 삶아/ 초치고 간장 치고 계자 치고 고추장 치고 미원까지 톡톡 쳐서 실고추, 파, 마늘 곁들여 날름/ 세금 받은 은행 돈, 외국서 빚낸 돈, 온갖 특혜 좋은 이권은 모조리 꿀꺽/ 이쁜 년 꾀어서 첩 삼아 밤낮으로 작신작신 새끼 까기 여념 없다…'

'또 한 놈이 나온다./ 국회의원(匊獪狋猿) 나온다./ 곱사같이 굽은 허리, 조조같이 가는 실눈,/ 가래 끓는 목소리로 응승거리며 나온다/ 털투성이 몽둥이에 혁명 공약 휘휘 감고/ 혁명 공약 모자 쓰고 혁명 공약 배지 차고/ 가래를 퉤퉤, 골프채 번쩍, 깃발같이 높이 들고 대갈일성, 쪽째진 배암 샛바닥에 구호가 와그르르/ 혁명이닷, 舊惡(구악)은 新惡(신악)으로! 改造(개조)닷, 부정 축재는 축재부정으로!/ 근대화닷, 부정선거는 선거부정으로! 重農(중농)이다, 貧農(빈농)은 離農(이농)으로!/ 건설이닷, 모든 집은 臥牛式(와우식)으로! 社會淨化(사회정화)닷, 鄭仁淑(정인숙)을, 정인숙을 철두철미하게 본받아라!/ 궐기하라, 궐기하라! 한국 은행권아, 막걸리야, 주먹들아, 빈대표야, 곰보표야, 째보표야,/ 올빼미야, 쪽제비야, 사꾸라야, 幽靈(유령)들아, 표 도둑질 聖戰(성전)에로 총궐기하라!….'
'셋째 놈이 나온다/ 跍礏功無獂(고급 공무원) 나온다. / 풍선은 고무풍선, 독사같이 모난 눈, 푸르죽죽 엄한 살,/ 콱 다문 입꼬라지 淸白吏(청백리) 분명쿠나/ 단것을 갖다 주니 쩔레쩔레 고개 저어 우린 단것 좋아 않소,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말구/ 어허 저놈 뒤 좀 봐라 낯짝 하나 더 붙었다/ 이쪽 보고 히뜩히뜩 저쪽 보고 헤끗헤끗, 피둥피둥 유들유들 숫기도 좋거니와 이빨꼴이 가관이다./ 단것 너무 처먹어서 새까맣게 썩었구나, 썩다 못해 문드러져 汚吏(오리)가 분명쿠나/ 산같이 높은 책상, 바다같이 깊은 의자 우뚝나직 걸터앉아/ 功(공)은 쥐뿔 없는 놈이 하늘같이 높이 앉아 한 손으로 노땡큐요, 다른 손은 땡큐땡큐/ 되는 것도 절대 안 돼, 안 될 것도 문제없어, 책상 위엔 서류 뭉치, 책상 밑엔 지폐 뭉치…'

'넷째 놈이 나온다/ 장성(長猩)놈이 나온다/ 키 크기 팔대장성, 제밑에 졸개 행렬 길기가 만리장성/ 온몸이 털이 숭숭, 고리눈, 범아가리, 벌룸코, 탑삭수염, 짐승이 분명쿠나/ 금, 은, 백동, 청동, 황동, 비단공단 울긋불긋, 천근만근 훈장으로 온몸을 덮고 감아/ 시커먼 개다리를 여기 차고 저기 차고/ 엉금엉금 기어 나온다/ 長猩(장성)놈 재조 봐라/ 쫄병들 줄 쌀가마니 모래 가득 채워놓고 쌀은 빼다 팔아먹고/ 쫄병 먹일 소돼지는 털 한 개씩 나눠 주고 살은 혼자 몽창 먹고/ 엄동설한 막사 없어 얼어 죽는 쫄병들을/ 일만 하면 땀이 난다 온종일 사역시켜/ 막사 지을 재목 갖다 제집 크게 지어놓고/ 부속 차량 피복 연판 부식에 봉급까지, 위문품까지 떼어먹고/ 배고파 탈영한 놈 군기 잡자 주어 패서 영창에 집어넣고….'
'마지막 놈 나온다/ 장차관(瞕搓矔)이 나온다/ 허옇게 백태 껴 삐죽삐죽 술지게미 가득 고여 삐져 나와/ 추잡無比(무비) 눈곱 낀 눈 형형하게 부라리며 왼손은 골프채로 국방을 지휘하고/ 오른손은 주물럭주물럭 계집젖통 위에다가 증산, 수출, 건설이라 깔짝깔짝 쓰노라니/ 호호 아이 간지럽구나/ 이런 무식한 년, 國事(국사)가 간지러워?/ 굶더라도 수출이닷, 안 팔려도 증산이닷, 餓死(아사)한 놈 뼉다귀로 현해탄에 다리 놓아 가미사마 배알하잣!/ 째진 북소리 깨진 나팔소리 삐삐빼빼 불어 대며 속셈은 먹을 궁리/ 검정 세단 있는데도 벤츠를 사다 놓고 청렴결백 시위코자 코로나만 타는구나/ 예산에서 몽땅 먹고 입찰에서 왕창 먹고 행여나 냄새 날라 질근질근 껌 씹으며/ 켄트를 피워 물고 외래품 철저 단속 공문을 휙휙휙휙 내갈겨 쓰고 나서 어허 거참 達筆(달필)이다….'
결기가 넘쳐나던 김지하도 세상을 떠난 지 벌써 3주기가 됐다. 그는 말년의 언행 때문에 '변절'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청년 김지하의 결기는 지금 읽어도 대단한 언어적 감각은 물론 엄청난 용기가 수반되는 행동이었다는 데는 변함이 없다. 볼기를 맞을 각오로 세상의 온갖 부조리를 고발한 그의 용기는 당시로서는 목숨을 건 행동이었다.

그가 '오적'을 쓰던 시대에서 우리는 참 멀리 떠나왔다. 어느덧 5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그의 담시(譚詩) 속에서 거론한 지배 계층(?)들의 행태는 과연 달라졌을까. 작금에는 '오적'에서 몇몇 직업군을 갈아 끼우고 '신오적'을 쓴다면 낡은 내용의 시가 될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김지하의 시에 대입해 보니 그리 달라진 것도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우리는 달라져야 한다. oks34@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