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공호’ 다시 짓는 러시아·독일…“드론·핵 공습 대피 최선책”[이현호의 밀리터리!톡]

2025-08-04

지난 2024년 12월 초 로이터통신의 보도가 전 세계의 눈길을 끌었다. 러시아가 역사상 처음으로 핵폭발에 따른 방사능 등을 막아주는 이동식 방공호를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비상사태부 산하에 민방위 및 비상사태연구소 자체 개발한 ‘KUB-M’ 이동식 방공호 대량 생산에 돌입했다. 최대 54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방공호는 핵폭발의 충격파와 방사능으로부터 48시간 동안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다. 이동식으로 트럭으로 쉽게 운반할 수 있고 상수도에 연결해 사용하는 게 가능하다.

무엇보다 핵폭발은 물론 재래식 무기로 폭발과 화재, 화학물질 공격, 기타 자연재해 등의 각종 위협을 차단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 장점이다. 눈 여겨 볼 대목은 이 같은 보도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자국산 장거리 미사일로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는 것을 허용한 후 며칠 만에 나왔다. 실제 우크라이나군은 미국산 에이태큼스(ATACMS) 미사일로 러시아 본토를 타격했다.

러시아 정부는 크게 반발하며 선제 공격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에 대응해 러시아는 핵무기 사용 조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새로운 핵 교리(독트린)를 발표하며 미국을 압박했다. 새 교리는 핵보유국의 지원을 받은 비핵보유국의 공격도 공동 공격으로 간주하고 러시아와 동맹국 주권에 ‘중대한 위협’이 되는 재래식 무기 공격 시에도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장거리 미사일 ‘봉인 해제’ 결정에 러시아가 3차 세계대전을 언급하며 ‘핵 카드’로 맞불을 놓은 상황에 대비해 핵 대비 태세에 돌입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시 연구소는 “이동식 대피소는 다양한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다기능 구조물”이라며 “국민 안전을 강화하기 위한 중요한 조치”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러시아 정부가 이동식 방공호 설치에 나선 이유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발발할 수 있는 나토와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관측했다. 러시아와 나토 국가간 접경지역인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 지역 일대에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전쟁위협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 군사전문매체인 디펜스뉴스 보도에 따르면 당시 크리스토퍼 도나휴 유럽·아프리카 미군 주둔 사령관은 독일 비스바덴에서 열린 미 육군 행사에서 “나토군은 필요할 경우 순식간에 칼리닌그라드를 지도에서 지울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며 “러시아군이 향후 5~7년 이내 나토 회원국 중 한 곳의 영토를 침공할 가능성이 있다는 정보기관의 보고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러시아의 방공호 대량 생산 소식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3년 넘게 장기화되면서 나타난 눈에 띄는 화제거리다. 최근 유사한 보도가 나와 또다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 7월 20일(현지 시간)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자극받은 독일은 2029년까지 국방 예산을 약 2배로 증액해 전쟁에 대비하는 국가가 되겠다고 선언한 것과 관련, 냉전 이후 대거 폐쇄했던 지하 벙커를 러시아의 공습 가능성에 대비해 복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냉전시기 폐쇄했던 방공호 시설들을 다시 개·보수하는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2026년 말까지 독일 전역에 100만명 수용이 가능한 방공호를 확충하겠다는 계획이다. 기존 독일에 남아있는 방공호 시설은 2000개로 대부분이 폐쇄되거나 호텔과 미술관 등으로 개조돼 현재 580개 정도만 사용이 가능한 상황이다. 해당 방공호들에는 독일 전체인구 8300만명 중 약 5%인 48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

독일 정부 대변인은 WSJ에 “베를린에 있는 4개의 벙커를 포함해 남아 있는 대피소들은 기능을 상실했고 운영도 불가능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번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2029년까지 전체 인구 수용이 가능한 방공호 시설을 짓는 게 독일 정부의 목표다. 이를 위해 최소 100억~300억유로(약 16조~48조 원) 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WSJ는 독일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독일 정부는 지난해 전시 대비 작전을 세웠는데 이는 나토 병력을 위해 독일이 집결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된 계획”이라며 “중요 인프라를 보호하고 정부와 경제가 적의 공격에도 지속적 운영이 가능토록 방공호를 구축하는 게 핵심”이라고 전했다.

특히 독일 당국은 지하 주차장, 지하철역, 건물 지하 등 기존 구조물의 내구성을 강화해 대피소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개인 지하실을 벙커로 개조하려는 독일 국민도 많아지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러시아가 2029년 전후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맹국을 추가 침공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독일이 드론과 핵 공습 대비 방공호 확충에 나서는 분위기다. WSJ는 “불과 20년 전에도 독일은 자국 영토에 군사적 공격이 가해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판단해 마지막 남은 공습 대비 벙커들을 폐쇄했다”며 “그러나 오늘날 이 결정을 되돌리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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