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서울 가락시장 염두에 두고 농산물 유통구조 개혁 추진
온라인 도매시장 확대 중점…전문가 “셀러와 연계되지 않을 땐 한계”

[주간경향] 이재명 정부의 ‘농산물 유통구조 개혁 방안’ 골자가 나왔다. 지난 9월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①도매시장에서 농산물을 중개·경매하는 도매시장법인 간에 경쟁 체제를 도입하고, 경매 외에 예약 거래 방식을 확대하며, 도매시장법인의 중개수수료(거래금액의 7% 이하)를 낮추는 방안과 함께 ②온라인 도매시장을 활성화시켜 전체 농산물 유통의 50%를 담당토록 하겠다는 내용 등을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조만간 농식품부가 발표할 계획이지만, 이날 송 장관의 보고 내용은 지난 정부에서 발표한 방안을 조금 다듬은 수준이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이번에는 좀더 구체적으로 도매법인의 경쟁을 촉진하는 방법과 관련해 세부적인 수단을 담을 예정이고, 온라인 도매시장도 물류기지까지 연계해서 구체화하고 이를 확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말했다.
농산물 유통구조 개혁 방안은 사실상 공영 도매시장 중 가장 영향력이 큰 서울 가락시장을 염두에 둔 조치다. 가락시장은 전국 32개 농산물 공영 도매시장 중에서 가장 크고, 취급하는 물량도 많다. 매일 경매가 진행되고 낙찰가는 공개되는데, 전국의 농민과 상인들은 이 가락시장 낙찰가를 보고 자신이 취급하는 농산물의 가격을 결정하는 데 기준 자료로 쓴다. 다만 가락시장 낙찰가는 그날의 공급과 수요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기 때문에 가격 등락 폭이 심하다. 예컨대 폭설이나 폭우가 내려 산지에서 가락시장으로 가는 물량이 줄어들면 그날은 공급 부족으로 낙찰가가 상승한다. 농식품부는 경매제 외에도 미리 물량과 가격을 결정하는 예약 거래를 늘려 이런 경매제의 단점을 보완하겠다는 판단이다.
현재 가락시장에서 농산물(청과) 경매를 진행하는 도매시장법인은 총 6곳인데, 이들은 한 번도 퇴출된 적이 없다. 농식품부는 도매시장법인을 평가하는 위원회를 설치해 법인이 서비스를 개선하고 중개수수료를 낮추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여기에 온라인 도매시장까지 활성화하면, 가락시장을 통한 유통이 줄고 생산지에서 바로 소비지로 배송되는 시스템이 만들어진다는 게 농식품부 설명이다.
“셀러와 연계되지 않는 온라인 도매시장은 성공 못 해”
특히 송 장관이 가장 중점을 두는 건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2023년 개설한 온라인도매시장이다. 현재는 많은 물량을 취급할 수 있는 공급자와 소비자만 이곳에서 거래할 수 있지만, 앞으로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출 계획이다. 온라인 도매시장에 물류센터를 도입하고, 정부가 물류비 일부를 담당한다. 생산자가 물류센터까지 농산물을 배송하면, 물류센터에서 구매자에게 전달하는 구조다. ‘쿠팡’과 비슷한 방식이다.
지난해 농식품부는 온라인 도매시장 거래 규모를 5000억원까지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실제로 6737억원을 달성했다. 하지만 기존 가락시장 물량이 온라인 도매시장으로 이동했는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지난해 가락시장 거래물량과 거래금액이 줄어들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실제 거래 없이 편법으로 거래 기록만 남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온라인 도매시장은 농산물 구매자금을 한 달간 무이자로 빌려주는데 이를 받기 위해 허위 기표가 이뤄진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온라인 도매시장은 확대될 수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양석준 상명대 교수는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에서 거래하는 방식이 확대돼야 한다”면서도 “지금처럼 온라인 도매시장이 대규모 직매입 방식으로 쿠팡의 유통방식을 따라가는 건 성공할 수도 없고, 성공해서도 안 된다. 온라인 시장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쿠팡은 물류센터 등 물류에만 엄청난 자금을 투자하면서 성공했는데, 정부가 물류에 대한 투자도 없이 쿠팡처럼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망하는 겁니다. 실제로 ‘도매꾹’이나 ‘도매매’ 같은 온라인 도매업체들은 도매 플랫폼만 제공하고, 이를 통해 생산자들과 셀러(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등을 운영하는 온라인 소매상)들을 연결해 줘요. 셀러와 연계되지 않는 온라인 도매시장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지역 도매시장은 이미 망해가는 중”
전국의 농산물이 가락시장으로 몰리고, 가락시장에서 거래돼 다시 전국으로 분산되는 지금의 유통구조야말로 불필요한 유통비용을 늘리는 일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최병옥·정은미 연구위원이 지난 7월 발표한 ‘지역유통 순환체계와 지방 도매시장 기능 재편 사례’ 논문을 보면, 강원도 춘천의 공영 도매시장의 경우, 지역 과일의 반입 비율이 2.5%에 불과했다. 생산자들이 서울 가락도매시장이나 경기도 구리도매시장까지 1시간 내외로 이동이 가능하다 보니, 가격을 더 쳐주는 수도권으로 직접 출하하기 때문이다. 지역 공영 도매시장의 ‘수집’ 기능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얘기다.
최병옥 연구위원은 주간경향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도매시장법인들이 수집 부문에 투자해서 ‘우리 쪽으로 출하해 달라’고 홍보도 하고, 높은 가격으로 잘 팔아주겠다고도 하고, 관계도 잘 구축하면서 물량을 유치해야 하는데, 그냥 농가들이 농산물을 들고 찾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수집 활동은 안하고 중개수수료 수입에만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지방 도매시장에는 능력이 안 되는 법인이 굉장히 많아요. 거의 다 망했죠. 그런데 퇴출을 안 시키고 그냥 이고 가는 겁니다. 기능이 다한 도매시장과 법인들은 과감히 통·폐합하고, 권역별로 일부만 남겨 지역의 농산물을 수집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비효율적인 부분을 줄일 수 있죠.” 하지만 주간경향의 취재를 종합하면 이재명 정부의 농산물 유통구조 개혁안에는 이런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역대 정부마다 유통구조 개혁을 얘기하지만, 유통 전문가들은 이것만으로 물가를 잡을 수 없다고 말한다. 당장 출하가 진행 중인 햇사과도 주산지인 경북 지역의 산불에 병충해까지 겹쳐 가격이 고공행진 중이다. 기후위기 하나만의 문제도 아니다. 농가는 고령화하고 조직화하지 못한 데다, 정부가 물가 억제를 위해 낮은 관세로 들어오는 수입물량을 늘리는 일이 반복되면서 농가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친환경 농산물을 취급하는 유통업체 대표 A씨는 주간경향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우리 농정의 가장 큰 문제는 그 품목의 성격을 고려한 맞춤형 정책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농산물 유통도 마찬가지에요. 생산자, 유통인, 학자, 공무원 등 관계자 모두가 들어가 논의하는 품목별 심의위원회 같은 걸 꾸리고 하나씩 접근해야지요. 역대 정부마다 그냥 유통구조만 잡겠다고 하니 답이 안 나오는 게 아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