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자지급결제대행(PG)사들이 스테이블 코인 확산에 따른 결제 시장 재편에 대비해 기술 개발과 제도 대응에 속도를 내고 있다. 스테이블 코인이 활성화될 경우 중개 구조가 생략되면서 PG사의 수수료 기반 모델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주요 업체들은 이를 오히려 새로운 기회로 보고 선제 대응에 나서는 모습이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다날, NHN KCP, KG이니시스, 케이에스넷(KSNET) 등 주요 PG사들은 스테이블 코인 기반 결제 인프라 구축과 기술 개발, 글로벌 파트너십 확대 등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스테이블 코인이 법정화폐에 연동돼 가격 변동성이 낮고, 블록체인 기반의 직접 결제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PG사의 기존 역할을 줄일 수 있다는 우려와는 다른 행보다.
다날은 스테이블 코인 기반 결제 분야에서 계열사 페이프로토콜이 출시한 ‘페이코인 마스터카드’를 통해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이 카드는 전 세계 마스터카드 가맹점에서 사용자가 보유한 USDC(미국 달러에 연동된 스테이블 코인) 등으로 실제 결제를 할 수 있게 해준다. 다날은 앞으로 USDC 외에도 다른 가상자산을 추가로 지원할 계획이다.
회사는 스테이블 코인 기반 결제의 확산이 수익 모델 다변화와 가맹점 서비스 활성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결제 절차가 간편해지고 정산까지의 흐름을 자체 시스템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되면서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중간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다날은 2020년 페이코인 결제가 활발했던 시기에 절감된 수수료를 기반으로 다양한 할인 제휴 프로모션을 운영하며 가맹점 매출 확대를 이끌어낸 바 있다. 회사 측은 스테이블 코인 역시 이와 유사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날은 올해 2월부터 국내 규제에 맞춘 방식으로 페이코인 앱 연계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는 결제가 가능한 가상자산의 범위를 페이코인,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으로 확대 중이다. 앱 연계 결제 방식은 국내 특허 출원을 마쳤으며, 향후 20년간 유사한 서비스는 출시할 수 없다.
다날 관계자는 “다날은 가상자산 발행과 운영, 결제 서비스 상용화, 관련 인프라까지 모두 갖춘 상태”라며 “PG사 특성상 가맹점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결제와 정산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쌓아온 만큼 스테이블 코인을 새로운 성장 기회로 삼아 글로벌 결제 시장으로 나아가려 한다”고 말했다.
NHN KCP는 스테이블 코인 기반 결제가 확산되더라도 단순히 결제 수단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일 뿐 결제 서비스 제공자의 역할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회사는 스테이블 코인 유통 확대에 대비해 내부 지갑, 블록체인 노드, 거래 감시 시스템 등을 갖춘 ‘온체인 결제’ 구조가 마련될 경우, 기존 카드 등 전통 결제 수단에서 발생하던 수수료 수익은 줄어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결제 연동 수수료, 자산 운용 수익, 토큰 보상 등 다양한 새로운 수익 모델이 생겨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NHN KCP는 스테이블 코인의 확산이 경쟁 구도에도 변화를 줄 것으로 내다봤다. 기존에는 다른 PG사들과의 경쟁이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메타마스크 같은 글로벌 블록체인 지갑이나 탈중앙화 앱이 새로운 경쟁상대로 부상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회사는 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제도적 안정성과 공공정책과의 연계를 고려한 ‘정책형 서비스’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지역화폐, 공공수당 지급 수단, 소상공인 대상 결제 지원책 등 다양한 공공 서비스 영역에서 스테이블 코인을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스테이블 코인 생태계에서는 단순한 결제 기능을 넘어서 ‘누가’ 지급 결제의 주체가 되고 플랫폼을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중요해지고 있다. NHN KCP는 프라이빗과 퍼블릭 블록체인을 모두 연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살펴보는 한편, 한국은행 등 주요 공공기관 시스템과의 연동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기존 PG 수수료 체계를 벗어나 새로운 수익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특히 소상공인을 위한 업무 효율화, 세무 자동화 서비스 등을 준비하는 동시에 디지털자산기본법 및 전자금융거래법 개정 흐름에 맞춰 사업자 구조 재정비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NHN KCP 관계자는 “스테이블 코인 사용이 늘수록 고객사와의 정산 과정이 더 효율적으로 바뀌어 비용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며 “지급결제 분야는 신뢰성과 안전성이 핵심인 만큼, 온라인 해킹 등 다양한 위험에 대비해 단순한 중개자 이상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전자금융 업계의 새로운 성장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NHN KCP는 전략기획 조직 내에 스테이블 코인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전담 팀을 두고 관련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KG이니시스는 스테이블 코인 도입 움직임과 디지털 금융 환경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회사는 이러한 변화에 맞춰 자사의 역할과 기능을 다시 점검하고, 내부적으로 필요한 준비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현재로서는 스테이블 코인과 관련된 구체적인 사업 계획이나 향후 전망을 밝히긴 어렵다는 입장이지만, 회사는 관련 분야에 일부 진출한 상태다. 지난 2022년에는 가상자산 전문 기업인 ‘메타핀컴퍼니’를 100% 자회사로 설립하고, 스테이블 코인을 활용한 플랫폼으로 서비스 대중화에 나선 바 있다.
회사 관계자는 “새롭게 열리는 시장에 전략적으로 대응해왔으며, 이번에도 같은 방향으로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케이에스넷은 국내에서 신용카드 단말기와 온라인 PG 결제창 등 기존 결제 인프라가 널리 쓰이고 있는 만큼, 스테이블 코인을 기존 ‘페이먼트 레일(payment rail)’에 자연스럽게 통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회사는 글로벌 가상자산 기업인 크립토닷컴과 파트너십을 맺고 관련 사업을 공동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협력을 통해 국내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크립토닷컴 페이’를 활용해 국내 주요 패션, 뷰티, 면세점 매장에서 암호화폐로 직접 결제할 수 있게 됐다.
케이에스넷은 스테이블 코인 관련 업무를 전략기획실에서 맡고 있으며, 이슈별로 필요한 인력이 유연하게 참여하는 방식으로 운영 중이라고 말했다.
A기업은 스테이블 코인 기반 결제 방식이 탈중앙화 흐름을 통해 민간 기업 간 결제 서비스 확대를 이끌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기존 결제 생태계의 참여자 외에도 새로운 사업자들이 승인이나 정산 서비스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간 PG사는 지금까지 가맹점의 다양한 결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인프라 구축에 지속적으로 투자해왔다. A기업은 스테이블 코인 도입 시에도 이에 맞는 추가 시스템 투자와 설계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스테이블 코인을 새로운 결제 수단으로 확대하는 것은 시장 경쟁력 확보 측면에서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다만 실질적인 거래 증가나 가맹점 매출 확대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투자 비용이 회수되지 못한 채 ‘매몰 비용’으로 남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A기업 관계자는 “스테이블 코인이 기존 결제 방식을 단순히 대체하는 데 그친다면, 이는 새로운 수익이 아닌 기존 매출의 결제 방식만 바뀌는 것으로 PSP(결제 서비스 제공자) 입장에서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반면 스테이블 코인 제공자가 온·오프라인 가맹점의 신규 매출 창출에 기여한다면 PSP에게도 새로운 수익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회사는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는 지급 수단의 재정 건전성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기존 카드사나 은행과는 성격이 다른 만큼 단순 비교는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A기업은 과거 티몬 사례에서 발생한 해피머니 상품권 부실처럼 결제 수단 자체에 문제가 생기면 가맹점 정산을 대행하는 PG사에 직접적인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수민 기자>Lsm@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