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 밑 흙에서 가난한 이들과 지렁이, 지구를 고민한다···‘흙을 공부하는 사람’ 유경수

2025-12-16

올 하반기 SNS에서 ‘잔잔한 화제’를 일으킨 책 하나는 미국 미네소타대학교 트윈시티스 토양학과 교수 유경수의 <흙의 숨>(김영사)이다. “인간이 가장 오랜 시간 가장 깊이 경험한 자연”인 흙 이야기를 토양학, 인류학, 인문학을 토대로 생생한 르포와 자기 고백의 에세이로 술술 풀어낸 점이 호평을 받았다. 책은 흙과 겹치며 연결되는 똥, 쟁기, 논, 물, 강, 화전, 지렁이, 땅 이야기를 엮었다. “똥으로 시작해 땅으로 끝나는 책”이다. 지난 8월 나온 책은 11월 ‘중쇄’에 들어갔다

11~12월 화상 인터뷰와 이메일 인터뷰를 여러 차례 진행했다. 확인한 건 ‘유경수는 흙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는 “서리가 내린 흙을 밟을 때, 반쯤 얼어 있는 땅의 감촉이 운동화 바닥을 통과해 발바닥에 느껴지는 순간”(한강 <흰> 중)을 사랑한다. 쟁기질을 볼 때면 “흙 표면의 알갱이와 덩어리를 으깨버리는 순간 유기물이 어떻게 되는지까지”를 들여다본다.

유경수는 이 열정과 사랑을 엄중하게 여긴다. 연구실 홈페이지 첫 화면에 “흙은 숨 쉬고, 흙은 움직인다. 흙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고, 흙의 메시지를 함께 나누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는 말을 내걸었다.

17~18일 전남 진도에서 열리는 국제학술대회 ‘기후위기와 지역문화 변동’ 참가와 장흥과 고흥 등지의 생태 텃밭 모임 참석 등을 위해 15일 한국을 찾은 그와 추가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 1987년 연세대 물리학과 석사를 마치고,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로 유학을 갔는데요.

“당시 전 미국 대학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어요. 사실 유학 나오면서 미국을 처음 왔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어 버클리를 고른 것이 아니었고, 첫해부터 어떤 프로젝트에도 묶이지 않은 자유와 생활비를 포함 전액 장학금을 준다는 말에 혹했죠 와서 보니 이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연구 주제를 잡고 둘째 해부턴 스스로 생활비와 학교 등록금을 찾아야 했으니까요. 크게 생각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환경과학·정책·경영학과(Department of Environmental Science, Policy, and Management) 첫 한국인 유학생이었어요. 전공을 확 바꾸는 것에 부담이 많았습니다. 두렵기도 했고요. 환경학에 어떤 분야들이 있는지도 잘 몰랐죠. 비슷해 보이는 토양 물리학 하시는 분을 지도 교수로 정해서 왔어요. 물리를 잘 하지는 못했어도 양자 물리까지 했던 사람이라 토양 물리학은 어렵지는 않더라고요.”

- 토양 물리학을 하다 다시 전공을 바꾸신 이유는요.

‘토양 물리학’ 연구실은 실험에 집중해서 1년을 실험실에서 보냈어요. 야외 현장에서 직접 생태계를 보며 공부하고 싶었는데 이게 아니다 싶어졌죠. 토양학 하시는 분 중 로널드 아문슨(Ronald Amundson) 교수 연구가 현장 중심이었어요. 다행히 기꺼이 받아 주셔서, 1년 후 연구실을 옮겼어요.”

물리학도에서 토양학도로 변모한 이후 “땅속에서 일어나는 자연 현상을 배우고 알아가는 일은 즐거웠다”고 말한다. “거기에는 모든 물리적 ·화학적 생명 현상이 있었고, 내 발바닥 밑의 자그마한 땅이 지구 전체의 한 부분으로 작동하는 장대한 메커니즘을 생각할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 생태학엔 언제부터 관심을 두셨는지요.

“1987년 대학에 입학했는데, 겁도 많고 철도 들지 않았을 때라 뚜렷한 주관도 없이 학교에 다녔어요. 민주화 운동 시기였는데, 학생운동 주변에 얼쩡거렸지요.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과학자도 시민의 한 사람이며 과학과 사회의 접점이 중요하다는 어렴풋한 인식은 했던 거 같아요. 사회에서 과학자의 역할, 과학사와 과학철학에 관심을 두었고, 자연스레 환경과 관련된 책들을 읽었어요. 군대를 다녀와 석사 과정을 밟을 때 환경운동연합에서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골프장 환경영향평가서들을 읽고 정리하는 일을 잠시 도왔죠. 그때 생태학을 하겠다는 결심을 굳혔어요. 영향을 끼친 게 유진 오덤의 <생태학>입니다. 확 빨려 들어갔어요.”

- 어떤 점에서요.

“<생태학>은 교양서가 아니라 교재예요. 처음 읽은 생태학 교재죠. 생태학 하면 생물 개체들의 움직임이라든가 라이프 사이클을 전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게 아니구나 싶었어요. 책은 지구라는 시스템, 숲이라는 시스템을 보는 법을 알려줬어요. 나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흙의 숨>은 인류학도 녹였다. 유경수는 환경운동연합에서 자원 봉사할 때 당시 연세대 교수 조한혜정 등 인류학자, 인류학과 여성학 전공자들을 만났다. 환경운동연합, 또하나의문화 회원들도 많았다. 이들은 ‘시민사회 인터넷’이란 이름의 느슨한 조직을 만들었다.

“여러 시민단체에 인터넷을 소개하고, 새 운동방식을 함께 고민하는 데 초점을 두었어요. 학생들이나 활동가들도 젊은 분들이 대부분이라 사실 같이 노는 데 더 열심이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생각하는 분들과 산청 간디학교에 벽돌 올리러 같이 가기도 하고 그랬어요. 제 머릿속에 생태학과 인류학이 엉켜서 들어올 때이기도 합니다.”

유경수는 전공을 바꾼 뒤 현장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뜻은 충분히 이뤘다. 미네소타 구석구석, 세계 곳곳을 다녔다. 연구실 창고 흙 시료 출처엔 미국 캘리포니아의 해안, 시에라 네바다 산맥, 알래스카의 키나이와 놈 페어뱅크스, 미국령 사모아의 타우섬, 오푸섬, 투투일라 섬, 오스트레일리아 캔버라 벰보카 베가 지역, 스웨덴의 아비스코와 파젤란타 등지가 나온다.

제 연구실이 있는 건물 이름이 볼라우홀입니다. 녹색혁명의 가장 중요한 인물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미네소타 대학 졸업생인 육종학자 노만 볼라우의 이름을 땄습니다. 주차장을 가운데 두고, 볼라우홀 뿐만이 아니라 생태 및 진화 학과, 산림학과, 원예학과, 곤충학과 건물들이 나란히 있습니다. 생태학자, 농학자, 산림학자들이 우글거리는 곳이죠. 현대 생태계 생태학의 주춧돌이 놓인 곳이기도 합니다. 지하 가장 아래층 창고엔 제가 지금까지 수집한 흙 표본들이 꼬박꼬박 쌓여있습니다. 다시 분석할만한 이야기가 혹시라도 생길까봐 버리지 못해요. 애서가들이 책을 못 버리는 것과 똑같죠. 저희 과에서는 제가 가장 많이 돌아다니는 것 같아요. 그래도 동료 교수들 샘플들 또한 적지 않아서, 창고 공간을 두고 벌어지는 은밀한 신경전이 있습니다(웃음). 보관도 잘해야 합니다. 흙에 물기가 생기면, 곰팡이 같은 미생물들이 계속 살게 되죠. 혐기성 분해 때문에 메탄 같은 것도 쌓일 수 있고요. 흙을 저장하기 전에는 반드시 말리는 것도 일이죠.”

-‘삽질’도 하고, 흙도 운반해야 해서 힘들 듯한데요.

“야외 작업 때 고생스러운 것 중 하나가 일을 마치고 걸어 나오는 길이에요. 지고 날라야 할 흙이 너무 많아져서요. 막상 채취할 때면, ‘여길 언제 어떻게 다시 오겠어’ 하고 바득바득 샘플을 긁어모아요. 짐이 대책 없이 많아지고, 허리가 부러지겠단 생각이 들지요. 보통 샘플 한 점당 1㎏ 정도를 확보하려고 애써요. 사모아에서 돌아올 때 250여 점의 샘플을 가지고 왔어요. 타우에서 투투일라로 가는 항공편이 18인승이었는데, 제 샘플만 어른 네 사람 몫이었죠. 비행기 프로펠러는 돌고, 누가 탈 사람이고, 배웅나온 사람인지 알 수 없는 100여 명의 사람들이 서로 밀리고 밀치는 혼란 중에 짐을 실었는데, 동네 목사님이 앞장서서 도와주시어 짐도 싣고 비행기에도 간신히 올라탔던 기억이 납니다. 타우 선주민은 추장보다 목사를 더 어려워해요. 마을 분들 도움을 받아야 했고 사시는 모습이 궁금해서 주일이면 교회에서 살았습니다. 헌금도 하고, 사모아 말 찬송가도 부르고요. 젊은이들과 아이들이 밀림도 안내하고, 흙 파는 일도 많이 도와줬어요. 같이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밥도 같이 먹고 파티도 하고 정이 많이 들어서, 떠나기 전 마지막 주일 예배 때는 정말 눈물이 터질 뻔했어요.”

- 지렁이 샘플을 옮기는 건 어떤가요.

“알코올을 채운 튜브에 지렁이를 보관하는데, 자칫 샐 수 있죠. 비행기에 순도 높은 알코올을 가지고 갈 수도 없고, 알래스카 오지에서 알코올을 구할 수도 없어요. 독한 위스키를 사서 키친타월에 적신 뒤 지렁이 한 마리 한 마리를 감싼 다음 플라스틱 튜브에 넣어 왔어요. 아메리칸 사모아에서 돌아오는 길엔 하와이에서 가족과 잠시 머물렀는데요. 호텔 방에서 백몇 개의 플라스틱 튜브를 알코올로 다시 채웠다가, 미국 본토로 올 때는 다시 알코올을 묻힌 키친타월로 감싸는 일을 반복해야 했어요. 제 아이들 도움을 받았죠. 사모아와 알래스카에서 수집한 지렁이도 지하 창고에 잘 있습니다. 지렁이도 그렇고, 흙도 국경을 넘을 때 허가를 받고, 여러 절차도 밟아야 해요. 지렁이에 얽힌 재미 난 이야기도 있어요. 알래스카 페어뱅크스에 지렁이를 찾는 미네소타 대학 연구팀이 왔다는 소문이 퍼졌는데, 가드닝 모임들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어요. 마을 회관에 모인 분들이 앞을 다투어 정보를 주시고 서로 당신 집에 우리를 데려가려 하시는데, 그런 장면이 상상되세요?(웃음).”

- 상상이 잘 안 가는데요(웃음).

“지렁이가 어디서나 있는 환경에서 자란 분들한테는 참 특이한 이야기죠. 페어뱅크스 주민들은 채솟값이 비싸기도 하고 워낙 춥고 겨울이 긴 곳이다 보니 텃밭에 대한 애정이 더 커요. 자그마한 온실을 애지중지 가꾸죠. 온종일 해가 뜬 여름엔 단기간에 자라는 양배추 같은 걸 온실에서 키워요. 모종들을 외부에서 들여오다 지렁이까지 따라오는 거죠. 알래스카 북극해 가는 길에 와이즈만이라는 조그만 동네가 있어요. 오두막집에 일단 머물렀는데, 정말 잘한 선택이었어요. 주인아주머니가 ‘누구누구가 숲에서 지렁이를 봐서 동네 사람들끼리 찾아 나선 일이 있다, 그런데 못 찾았다’며 이런 이야기를 해요. 전설 속 동물 목격담을 들려주듯 말이에요. 여기서 평생 수렵, 채취하며 사시는 분 이야기를 건네 들은 적이 있어 만나고 싶었는데 연락할 길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 아주머니 오빠더라고요. 사냥도 하지만 감자 농사를 짓는 분이었어요. 이분들이 농사를 지으려면 가장 큰 골칫덩어리 하나가 유기물층이거든요. 낙엽과 아스펜 나무의 뿌리 이끼 등이 쌓인 무려 30㎝ 두께의 유기물층을 걷어내고 뭘 심어야 하는데, 지렁이가 유기물층을 먹어 치워요. 유기물이 풍부한 광물질 흙을 만들어주는 거죠. 이분 말씀이 동생이 페어뱅크스 다녀오는 길이면 지렁이를 사 오곤 했고, 본인은 그 지렁이를 텃밭에 넣어줬다는 거죠. 학생들하고 그분 텃밭에서 지렁이를 찾았는데, 결국 못 찾았어요. 지렁이 없는 곳에 사니까 지렁이 얘기가 없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많은 거예요. 아 정말 아이러니했던 것이 있어요. 여긴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그리즐리 곰이 많은데, 저와 제 학생들은 그분 곰 이야기를 들으면서 흥분하고, 정작 그분은 곰보다 지렁이 이야기를 하며 흥분하고요(웃음).”

세상의 흙을 둘로 나누라면, 난 먼저 지렁이가 있는 흙과 지렁이가 없는 흙으로 나누겠다. 지렁이가 있는 흙을 바탕으로 하는 온대와 열대 지중해의 숲과 초지에서는, 두루뭉술하게 말하자면 10년마다 모든 흙 알갱이가 지렁이의 내장을 통과한다. 그러니까 지렁이의 내장은 흙의 광물과 유기물질의 미생물이 가까이 섞이고 접촉하는 반응기이다. 숲속을 걷는 것은 지렁이 똥을 밟고 다니는 것이며, 나무와 작물이 자란다는 것은 지렁이 똥에 뿌리를 담근다는 것이다. <흙의 숨> 255쪽

2024년에는 독립영화 감독 김대현과 함께 다큐멘터리 <흙의 숨: 진도 이야기>를 만들었다. 두 사람은 지렁이 다큐를 제작 중이다.

“스웨덴 아비스코, 미네소타 여러 곳, 또 알래스카 등지까지 촬영은 1~3년에 걸쳐 다 마쳤어요. 편집만 하면 되는데, 문제는 지금부터죠. <흙의 숨: 진도 이야기>는 울주 영화제에서 4500만 원가량 지원을 받아 만들었는데, 지렁이 다큐는 별 예산 없이, 감독님 사비로 여기까지 왔어요. 스웨덴의 오랜 친구이자 협력자인 조나탄 클라민더가 스웨덴 아비스코 여행 경비를 대기도 했고, 미네소타와 알래스카의 동료 교수들이 정말 아낌없이 도와주었어요. 지렁이 편도 편집할 일이 산 넘어 산인데, 화전 이야기도 강 이야기도 찍을 생각을 하고 있어요(웃음).”

-김대현 감독과는 어떻게 함께 작업하신 건지요.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형이에요. 대현이 형은 대학 때 영화에 빠져서,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동국대 연극영화과로 갔어요. 8㎜ 영화를 찍을 때 배우가 없다고 절 조연으로 부른 적도 있어요. 대학교 2학년 때였어요. 그때 이화여대 근처에 문화 운동하시는 분들이 ‘우리 마당’이라는 공간을 운영했고, 거기 필름을 보관했어요. ‘우리마당 습격 사건’이라고, 경찰이 보관물을 다 뺏어가고, 간사도 폭행하고 했어요. 그런 때였어요. 형과는 오랜 인연이 있죠. 미네소타 대학에 와서 ‘인간과 흙’을 주제로 수업을 계획할 때, 대현이 형에게 한번 보여드렸죠. 책으로 엮으려고 했는데, 다큐가 될 수 있을지도 궁금했어요. 유심히 관심을 가져주셨어요. 제가 진도를 들락거리면서 같이 갈 기회가 생겼고, 대현이 형도 진도 이야기에 빠져든 거죠.”

현장 일은 인류학, 고고학 답사와 닮았다. 현장은 단지 흙을 채취하는 공간이 아니다. 어느 곳에나 인간이 산다. 불모지에도 인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유경수는 주민들의 삶을 배우려고 했다. 동히말라야 산 중턱의 화전민에서 진도의 젊은 농부까지 만나 듣고 또 들었다. 그들과 나눈 대화를 “첫째가는 자료”로 삼았다. 책을 쓸 때나 연구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삼는 원칙이 ‘현장 우선’이다. 그는 “현장이 이야기를 끌어가도록 했다”고 말한다.

아메리카 선주민 다코다 사람들의 땅인, 미시시피강과 미네소타강이 한눈에 보이는 브도트에선 살인, 사기, 종족 말살, 착취, 차별의 기억과 현재 진행형인 부정의를 되짚었다. 지질-생태학적 흙을 보도록 훈련받은 유경수는 “주제넘은 포부”라면서도 “흙을 통해 사람 이야기”를 듣고 전하려 했다.

- 교수님에게 ‘현장’은 무엇인지요?

“흙이 주인공이 되는 모든 순간이 현장입니다. 첫 안식년 때 미국 교육자이자 사회운동가인 파머 파커의 <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읽었습니다. ‘수업의 주인공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나왔는데, 학생이 주인공이라고 하겠지 싶었어요. 그게 아니었어요. 저는 그때까지 수업에 들어가면 학생들이 두려웠습니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수업에 들어가기 전부터 맘속엔 학생들이 이걸 어떻게 볼까 하는 걱정 그리고 상처받을 제 에고(ego)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파커는 수업 주제 또는 대상이 주인공이라는 거에요. 선생과 학생이 둥그렇게 둘러싼 그 중심에 있어야 할 수업 주제가 바로 주인공이라는 거죠.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데, 그때는 핵펀치를 맞은 느낌이었어요. 그 말을 새기면서 머릿속에서 따로 놀던 연구와 교육이 차차 하나가 되었습니다. 제 연구도 흙이 중심이고 제 수업도 흙이 중심인 거죠. 함께 흙을 보는 사람은 계속 바뀌지만, 저는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고요. 관찰자로, 사랑하는 사람으로, 가르치는 사람으로 역할은 바뀌지만 흙과 저와의 관계는 늘 같은 것이죠. 현장은 꼭 어딜 가야만 만나는 곳이 아니었어요. 제가 흙을 주인공으로 초대하는 순간이 바로 현장이 되는 것이죠.”

- 현장을 자주 다니다 보면, 여러 일화가 있을 듯한데요.

“많죠, 수업 중간중간 몸을 풀어주어야 할 때 하나씩 꺼내놓는 이야기들이죠. 영국 에든버러 대학의 사이먼 머드 교수와 캘리포니아 시에라네바다의 외진 곳을 돌아다닐 때입니다. 갑자기 숲속에서 한 사내가 튀어나와서 길을 막고 애원을 했어요. 집까지 태워달라고요. 조금 가니 이 사내 신원이 밝혀지기 시작했어요. 약(아편)을 팔려고 하더라고요. 깊은 산골에 숨어 양귀비를 재배하던 사람이었던 거죠. 모자란 연구비로 다니느라 고생도 많았습니다. 알래스카 페어뱅크스에서 북극해까지는 돌튼 하이웨이라고 하는 700㎞에 가까운 비포장도로가 있습니다. 대부분이 동토 지역이라 길이 얼고 녹으면서 뒤틀려 위험하기 짝이 없는 도로입니다. 대학원생 둘과 갔었어요. 차를 빌려야 했는데, 쌈짓돈 같은 연구비로는 나이 어린 대학원생들의 비싼 보험료를 감당할 수 없었어요. 결국 모든 운전을 혼자 했습니다. 시속 20~40㎞로 바짝 긴장한 상태로 하루 열 시간을 운전하고 틈틈이 삽질하고 토론하고 결정하고 질문받고 저녁엔 같이 밥하고 설거지하니 힘들더라고요. 알래스카의 대자연을 보는 맛에 그럭저럭 버텼습니다.”

- 대자연 보는 맛이 어땠는지요.

“북극해로 가는 돌튼 하이웨이를 따라갈 때 진짜, 말 그대로 대자연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디를 가나 지평선 너머 영원까지 이어질 것 같은 숲, 툰드라 강과 습지의 한복판에 있었어요. 동물들도 종종 보고, 아주 가끔 북극해 유전에서 내려오는 트럭과 마주쳤지만 대부분 저희 일행뿐이거든요. 알래스카 노스 레인지 산맥을 딱 넘어가면서 보면 거기서부터 북극해까지 200㎞가 절대 평지입니다. 강들하고 툰드라가 펼쳐지는데 그렇게 사람 흔적이 텅 빈 공간을 처음 보았습니다. 모든 게 다 살아있는 느낌도 너무 좋았죠. 같이 갔던 두 학생도 자기 인생에서 큰 경험이었다고 이야기해요.”

“흙을 핑계로 나눈 즐거운 대화”들

유경수에게 가장 큰 관심거리이자 흥밋거리는 ‘흙’이다. 책엔 “흙을 핑계로 나눈 즐거운 대화”가 여러 대목 나온다. 인터뷰 때도 흙 이야기만 나오면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 즐거운 이유 한두 가지만 꼽으신다면요.

“침입 지렁이 연구하러 알래스카 패어뱅크스에 처음 갔을 때, 대학 영농 프로그램을 하시는 분이 제게 물었어요. ‘이 추운 알래스카 내륙에서 포도원과 포도주 양조장을 만들려는 사람이 있는데 만나 보겠느냐고’고요. ‘거기 가면 지렁이가 있을지도 몰라’ 하면서요. ‘알래스카에 지렁이라니! 포도 재배라니!’ 했죠. 이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현실로 바꾸려는 분이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자라고 알래스카에서 지질학을 공부한 젊은 친구였죠. 5년째 페어뱅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먹고 자면서 에스펜 나무뿌리가 얽힌 두꺼운 유기물층을 걷어내려고 사투를 벌이더라고요. 그 현장을 방문해 생생한 1인칭 이야기로 들었습니다. 알래스카 내륙 최초의 와인메이커가 될 수도 있는, 이 젊은이 이야기를 들으며, 최초의 농부들을 떠올렸죠. 농사가 시작하던 그 순간들이요. 흙이 인간에게 가장 익숙한 지구가 되던 그때를 말이죠. 흙 이야기는 모두 그 겹침에 닿아있습니다. 흙은 인간에게 가장 익숙한 지구이기 때문에 평범해 보일 수 있지만, 평범하다는 한 꺼풀도 안 되는 선입견을 넘고 나면 흙만큼 흥미진진한 자연이 없어요.”

뒤죽박죽인 것은 물질一죽어 있든 살아 있든一만이 아니다. 시간 또한 뒤죽박죽인 게 흙이다. 흙 속에서는 수억 년 전 마그마에서 주조된 광물만이 아니라 물에 녹은 양이온과 음이온이 결합 침전해 생긴 최신의 점토 광물이 섞여 있다. 수만 년 전 죽은 동식물에서 유래한 오래된 유기물부터 조금 전 뿌리에서 분비된 최신 유기물까지 서로 다른 시간이 뒤죽박죽 공존하는 곳이 흙이다. <흙의 숨> 13쪽

유경수는 “흙의 과학 이야기를 하고 다니면, 사람들이 흙이 가진 반전에 매료당한다”며 말을 이어갔다.

“지렁이 침입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댄다’라는 말을 들어 알고 있는데도, 유기농 마스코트로 활약하는 지렁이가 침입종이 되고, 생태계 하나를 말아먹기도 한다는 말에 당황하고 놀라면서도 재밌어해요. 울창한 열대 우림과 빈약한 스프루스(Spruce, 가문비나무속 영어이름)들이 서 있는 동토를 보여주고 이 둘 중 어느 흙에 유기물이 많을 것 같냐고 물으면 백이면 백 열대우림을 꼽아요. 눈에 보이는 것이 눈에 안 보이는 세상으로 이어질 거라고 믿는 거죠. 또 반전이 일어나요. 이걸 제대로 아는 게 기후 변화를 이해하는 것으로 이어지면서 또 한 번 반전이 일어나요.”

물과 얼음, 기후변화의 합작품인 흙

책엔 이 반전 이야기가 이어진다. 유경수가 사는 미네소타에서는 암석의 풍화로 흙이 만들어지는 것은 드문 일이다. 학생들은 “그렇다면 흙이 뭐로 만들어진다는 거죠?”라고 묻는다. “미네소타의 흙은 빙하가 실어 온 캐나다의 돌과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게 정답이다. “돌과 흙을 몸에 지닌 빙하가 전진을 멈추고, 녹고, 사라”진 것이다. 유경수는 “미네소타의 흙은 물과 얼음 그리고 기후변화의 합작품”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물은 고정된 명사로 볼 수 없다. 능동태의 동사여야 한다.” 예를 들어 “눈 녹은 물이 흙으로 스며드는 과정은 물의 몸이 흙의 몸과 얽히는 것”이다. “물이 머무를 틈이 없다면, 흙에 깃든 무수한 생명체를 일구기에, 물은 너무나 순간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북스웨덴 순록은 눈의 두께를 82%까지 압축한다. “대형 초식동물을 방목하면 눈이 다져지고, 눈 속의 공기가 빠지면서 토양에서 대기로의 열전도가 빨라져, 짐승을 방목한 곳은 지면에서 1m 깊이 토양의 연평균 온도가 방목하지 않은 곳보다 약 2도나 낮았다.”

- ‘토양을 연구한다’가 아니라 ‘흙을 공부한다’고 소개하셨는데요.

“‘흙도 공부해요?’라고 묻는 분들도 있어요. 책 제목도 ‘토양 호흡’이라고 하지 않고 ‘흙의 숨’이라고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토양학 하는 제 동료 교수들도 소일(soil)을 격식 있는 말로 여겨요. 더트(dirt)라는 표현은 토양을 내려다보는 거로 생각하고요. 한국에서도 흙 공부한다고 하지 않고 토양학을 한다고 얘기하잖아요. 그럼에도 우리말 흙은 사람들에게 더 가깝고, 친숙하며 의미가 큰 단어죠. 기독교인들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명심하십시오’(창세기 3:19 절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말에서 따왔다)라는 말이 익숙하실 거예요. ‘토양에서 왔으니 토양으로 돌아갈 것을 명심하십시오’ 하고 말하지 않잖아요. 토양보다는 흙에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숨도 호흡보다는 우리한테 더 가까운 말이죠.”

책에 생사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는 “죽어 땅속에 묻힌 내 몸이 흙이 되고 대기와 물로 스며들어 세상천지를 누비는 과정”을 상상하기도 했다. 이어 “죽은 후 집이 될 흙을 나만큼 알고 죽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라고 썼다.

흙구덩이 속에 누워 보는, 무덤 체험 이야기도 책에 나온다. 그는 “<백 년 동안의 고독> 중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의 “누군가 이 땅에 죽어 묻힐 때까진 우린 여기 속한 것이 아니야”라는 말을 떠올리기도 했다.

-흙이 생사 문제를 환기하는 듯도 합니다.

“흙의 과학을 공부하기 훨씬 전에도 삶과 죽음과 관련된 흙은 알았던 것 같아요. 제대로 파인 흙구덩이를 처음 본 것은 여섯 살 때입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모신 관이 내려가던 장면이 선합니다. 흙은 붉었는데, 흙이 왜 붉은지 물어본 기억이 나질 않아요. 너무 질문이 많아 어른들을 그렇게 귀찮게 했다는 어린 저에게도 흙은 그냥 그렇고 그런 것으로 보였나 봐요. 그래도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들어가는 흙의 이미지는 오래 남았어요. 사람의 흔적과 상처를 가장 깊게 간직한 지구가 바로 흙이라는 생각도 흙을 공부하기 전부터 했던 것 같아요. 인간 생사 문제를 환기하는 흙에 관해 써야겠다는 마음은 진도에 들락거리면서 생겼습니다. 진도의 상장 의례인 씻김굿, 왜군 시신까지 묻어준 왜덕산 등을 배워가면서, 저 자신의 섣부른 무덤 체험에서 남은 의문이 하나씩 풀려나갔죠. 그걸 글로 쓰고 싶었습니다. 죽은 사람을 흙으로 돌려보내는 것을 늘 물리적, 화학적 객관성 즉 과학적인 관점에서만 봤는데, 이게 가장 도덕적이고 인간다운 행동이라는 걸 깨달은 곳이 진도였습니다. 진도 사람들은 심지어 적군이었던 죽은 이에게 사람 대 사람으로 예를 다해 논과 밭과 숲의 한쪽을 양보한 거지요. 2006년 일본 수군 후손 20여 명이 왜덕산 묘소를 참배하고 동네 주민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고 해요. 어쩌다 보니 과학자가 흙을 소개하는 책을 쓰면서 가장 먼저 쓴 챕터가 인간의 죽음과 흙에 관한 것이었어요. 책 가장 마지막 장이 되었지만 가장 먼저 쓴 챕터가 10장 ‘땅’입니다.”

남해 서쪽 끝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풍경 중에서,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보이는 대파밭과 올망졸망 그 대파밭에 맡겨진 양 버려진 무덤들이 오랫동안 내 눈길을 끌었다. 버려진 무덤은 숲에도 많았다.

한번은 남해를 바라보는 여귀산의 난대림에서 흙을 채취하다 전화를 받았다. 접도에서 씻김굿이 있다는 소식이었고, 몇 시간 후 나는 아들을 잃은 집에서 강신무인 송순단의 씻김굿을 보았다. 진도에 머물 때면,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거리가 사라졌다. 이 거리감의 상실은 사람으로 한정된 것이 아니어서,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생동감과 죽은 것들의 아련함이 함께 밀려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의 상태에 나는 머무르곤 했다. 먹고살기 위해 가꾼 밭 한복판에 죽은 이가 묻혀 있고, 죽은 이를 흙으로 보내던 사람들이 다음 날이면 그 흙을 가꾸는,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흙이 보였다. 돌이켜 보면 삶과 죽음이 되풀이하는 장이 내가 공부하는 흙이었다. <흙의 숨> 20쪽

인류가 자연을 상대로 벌여온 가장 오래된 전투

생사는 도처에 있다. 유경수는 논밭, 잔디, 화단의 공통점을 두고 “모두 죽음을 부르는 곳”이라며 이렇게 썼다.

특정 식물만 자라도록 자연이 그냥 놓아두질 않기 때문이다. 자연의 풍부함과 다양성은 논밭에 갇힐 수 없는 것이다. 그대가 부지런히 몸을 놀리지 않는다면, 거름도 물도 햇빛도 그대가 심은 식물이 아닌 자연이 심은 잡초에게 갈 것이다. 원하는 특정 식물을 뺀 나머지를 상대하는 그대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 그 나머지의 죽음이다. 논밭이 식량의 원천이라면, 그대가 먼저 죽이지 않으면 잡초가 그대를 굶겨 죽일 것이다. 제초라는 극한 작업은 인류가 자연을 상대로 벌여온 가장 오래된 전투이고, 쟁기는 전투의 기본 무기였다. 못 견디게 더운 7월의 어느 날 내가 비장하게 말했던 것처럼, 화학 제초제 이전의 농부는 땅을 갈아엎어 잡초를 죽였다. 쟁기질이었다. <흙의 숨> 111쪽

- 인류학, 생태학, 역사를 르포 저널리즘과 결합하는 글쓰기를 하셨는데, 이런 접근을 하신 이유는요.

“책을 쓴 동기 때문에 그렇게 쓸 수밖에 없었어요. 자연권이면서 동시에 문화권에 속한 흙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썼습니다. 그래야만 인류가 부딪힌 기후 변화 또 지구를 망가뜨리지 않고 잘 먹고 잘 사는 길 중심이 흙이라는 걸 설득할 수 있다고 믿었거든요. 흙의 과학, 인간의 문화에 이어 또 하나의 꼭짓점은 지극히 개인적인 흙과의 인연들이었어요. 그래야만 흙은 인류의 문제이기 전에 나 자신의 문제임을 보여줄 수 있겠구나 싶었거든요. 이 세 개 꼭짓점을 엮어 나가려면 여러 접근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직접 판 흙들을 기록하려면 생태학과 지구과학이 필요했고, 흙과 서로를 만들어온 사람들 이야기를 하려면 역사와 인류학이 들어와야 했어요. 현장에서 제가 만난 사람들의 말을 옮기고 나면 르포 저널리즘이 되고, 제 이야기를 하려면 고백같은 것이 되었어요. 이런 이질적인 요소들이 서로 부딪히지 않고 주고받고 하면서 하나의 공통 목표를 향해 나가야 했기 때문에, 제 나름 머리를 많이 썼어요. 읽는 분들 머릿속에 들어가 보려고 노력도 하고요. 쉽지 않았죠. 논문이란 글들의 건조함에 지치기 시작할 때라 아주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덕분에 논문과 책이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를 두고 여러 관점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한편 영어에 구애받지 않고 우리말로 내가 할 수 있는 말을 실컷 한다는 자유가 정말 시원했습니다.”

그는 책에 “우리말을 쓸 때면 해방감을 느낀다. 내가 이 책에서 풀어내고 싶은 자연 현상이자 인문 현상으로서의 흙 이야기는 모국어의 해방감 없이는 제대로 해낼 수 없는 것이라고 나는 결론지었다”고 썼다. 그는 생물학 교과서에서 ‘토양 호흡’이란 말을 처음 접했을 때 ‘시집에서 나온 단어’인 줄 알았다고 한다. ‘토양 호흡’을 ‘대지의 숨결’로 이해했다. 문학적 소양 덕인 듯하다.

- 소설, 영화, SF, 다큐, 인문학, 음악 등 여러 장르를 인용하셨는데, 평소 연구 관련이든, 취미든 어떤 분야에 관심을 두시는지요.

“특별한 취미가 없어도 담아둘 것들, 재밌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흙의 숨> 속 인용문들도 다양한 장르를 많이 섭렵해서가 아니라 어쩌다 하나씩 읽고 보고 들은 것들이 제 마음에 큰 파장을 일으켜 오래 담아둔 것들입니다.”

유경수는 “오래 담아둔 것들을 재료로 기도와 묵상을 한다. 그래서 흙 이야기와 함께 드러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가톨릭 신자로 자랐다.

“가톨릭 교리에 마음을 다 주지도 못하고, 교회에 적잖은 의문을 지니고 있으며, 최대한 멀리하고 싶었던 적도 있습니다. 빅뱅과 진화를 포함한 현대 과학의 충실한 실행자이면서도,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관계를 통해 세상을 보는 기독교 신학은 늘 저를 설레게 합니다. 세계 곳곳의 창조설화를 읽는 것이 또한 큰 즐거움입니다.”

<흙의 숨>은 가난한 사람과 흙, 지렁이 쪽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책은 세상 사람들이 가치나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 이 비가시적 존재들을 가시적 존재로 드러낸다. 트랙터와 가축 관계는? 미국에서 1951년 한 해 56만4000대를 만들었다. 1950년대에 화학 질소비료 생산과 판매가 미국에서 본격화됐다. 10년 사이 “가축은 노동과 거름 생산에서 해방되었지만 팔자가 펴지기는커녕 고깃덩이로 전락”했다.

“조한혜정 선생은, 정확한 문장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소수자를 ‘분명 있는데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존재들’이라고 정의했어요. 흙을 공부하면서 종종 생각했어요. ‘흙의 목소리를 듣고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게 내 공부’다. 이렇게요. 흙이 보이는 반전에 사람들이 매료된다는 것은 참 희망적입니다. 흙수저라는 말이 달리 만들어진 것 같지 않아요. 하지만 제가 가진 흙의 첫 이미지는 부활이에요. 권정생 선생의 <강아지 똥>에서도 나오잖아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강아지 똥이 빗물에 녹아들어 꽃으로 돌아가는, 그 보이지 않는 세상의 무대가 흙이죠. 가치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세상을 소리 없이 굳건히 움직이는 실체가 바로 흙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바로 생태학과 지구과학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과학적 사실이에요.”

첫 장을 ‘똥’ 이야기로 시작하신 이유도 알 듯합니다. ‘보고 듣지 않으려는 대상’이란 점에서요. 인분은 “혐오와 처리의 대상”이 되어버렸는데, 교수님 책을 보면 가깝고, 소중한 존재로 다가옵니다.

“똥 이야기만 하면 아이들이 웃어요. 아이들 웃게 하려면 그냥 똥! 하면 충분해요(웃음). 우리 입안으로 들어오고 우리 몸 밖으로 나가는 것들이 가장 개인적인 것이면서도 가장 지구적인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바로 먹거리와 똥오줌이죠. 그 둘을 통해서 우리 몸이 지구랑 연결되어 있고요. 이 똥오줌과 먹거리를 이어주는 것이 바로 흙이라는 이야기로 책을 시작하면 되겠구나 싶었죠. 책 목차 순서를 크게 의식하지 못하고 쓰는 작업에 몰입해 있을 때는, 책 제목이기도 한 ‘흙의 숨’ 장을 첫 장으로 생각했어요. 기후변화와 가장 가까이 있는 장이니까 시의적절하다고 보았죠. 그러다 강영특 편집장과 함께 책 전체의 구조를 가늠하는 과정에서 농사 이야기들을 전진 배치했고, 그 과정에서 가장 친숙한 주제인 똥이 맨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똥으로 시작 땅으로 끝나는 책이 되었습니다(웃음).”

유경수는 책에 “밥을 같이 먹어 식구라고 한다지만, 먹는 것만큼이나 똥 앞에서 진실한 것이 식구”라며 “‘아빠 어디 있어?’ 찾는 막내에게 둘러대지 않고 ‘아빠, 똥 눠!’ 있는 대로 말할 수 있다”고 썼다. 미군 부대에 채소를 조달하는 마을에서 인분 퇴비를 본 미군 장교의 분노 같은 일화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는 “(한국 전쟁 중) 어린 아버지가 만난 미군 장교가 인분 거름을 한국의 미개함에 대한 증거로 삼았다면, 20세기 이전 아시아를 방문한, (곤두박질친 토양 비옥도로 식량 안보가 무너지기 직전이었던) 유럽의 지식인은 아시아의 큰 도시를 누비는 똥오줌 수집가를 경탄하며 바라보았다”며 똥오줌에 축적된 양분이 토양의 비옥도를 복원하는 역할을 한 점을 설명했다. 유경수는 자신의 텃밭 미생물에게 질소를 보충해주려고 똥을 넣고 싶었으나 이웃의 시선이 두려워 종일 모은 오줌만 퇴비에 부은 이야기도 함께 전했다. 똥오줌 이야기는 “당장 화학비료를 중지하고 똥거름을 주자는 말이 아니다. 똥이 비료일 때 일어나는 과정, 즉 질소와 탄소를 하나의 유기물 패키지로 흙 속에 유지하는 시스템을 되살리자”는 취지로 쓴 것이다. 그는 이렇게도 적었다.

“우리는 질소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절박한 물음은 ‘작물과 흙 속 생명이 공존하는 세상이 가능한가’라는 질문, ‘식량을 얻기위해 지하수, 강과 바다를 오염시키지 않는 세상이 가능한가?’라는 질문, ‘농산물을 키우기 위해 대기의 화학 조성을 바꾸지 않는 세상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맞닿아 있다. 이 질문들은 모두 하나의 물음표로 수렴한다. 인간을 먹이기 위해 지구를 파괴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가능한가?” <흙의 숨> 63쪽

- 교수님 책이나 연구는 특정 지역의 흙이나 지렁이 같은 미시적인 것들을 파고들면서 생태계 같은 거시적인 것들을 드러내는 듯합니다.

“연구가 그런 것 같아요. 연구라는 게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아주 작은 것이나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이라도 파고들어 가다 보면 끝도 없이 문이 열리고, 또 끝도 없이 새로운 게 나오고요. 나 혼자만 이런 생각을 한 줄 알았는데 많은 사람이 이미 연구를 또 했고요. 아주 작고 좁은 부분을 날카롭게 들어가서 결국은 전체적인 것의 핵심까지 이르는 게 가장 좋은 연구죠. 대학원 논문 쓸 때 포켓 고퍼(Pocket Gopher)라는 눈 뜬 두더지이자 초식성의 두더지 같은 설치류 동물에 관심을 가지면서 나중에 이제 지렁이까지 이어졌는데요. 포켓 고퍼가 흙을 헤집고 다니면서 흙을 섞고 침식을 유도하는 것에 놀랐죠. 그때 ‘흙은 움직인다’라는 생각이 배었습니다. 흙의 움직임이 흙의 유기 물질, 풍화, 영양물질 순환과 어떻게 엮이는지도 공부했고요. 그러니까 동물들이 만들어내는 흙이 지구 전체랑 어떤 연관을 가지게 되는지를 들여다본 거죠. 사람들이 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작물을 키우기 위한 거죠. 농학으로서의 토양, 작물을 위한 흙이죠. 즉 토양학의 가장 큰 아이디어들은 식물을 중심으로 돌아가요. 제가 보기 시작한 건 동물과 흙과의 관계죠. 흙과 작물의 관계라기보다는 흙과 동물에서 시작했어요. 그러다 지구 전체의 탄소 순환, 산맥의 형성까지 따지게 되었죠. 유진 오덤의 <생태학> 서문은 아폴로 13호의 사례를 들면서 시작해요. 1970년 아폴로 13호가 달 착륙 임무 중 산소 탱크 폭발 사고를 겪어요. 지구로 귀환해야 하는데 아폴로 13호 안에 사람이 타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아폴로 13호가 ‘생명 유지 시스템’인 거죠.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아폴로 13호 밖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 거기 갇혀버린 존재가 된 거죠. 이 지구를 외부의 도움 없이 자체적인 생명 유지 시스템에 의존해야 하는 ‘우주선 지구호(Spaceship Earth)’에 비유하며 지구 생태계의 상호 연결을 강조한 거죠. 이 이야기가 저한테는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 저는 이제 부품을 하나하나 보는데, 그 부품들이 전체랑 이어지는 거니까요. 저도 지렁이 얘기하면서 기후 변화 이야기, 지구 규모의 탄소 순환 이야기를 이어낸 거죠. 미시적인 이야기가 거시적인 이야기가 어떻게 닿아가는지 알아가는 것도 연구의 묘미죠.”

지렁이와 기후 변화가 이어지듯 이어짐, 겹침, 닿음은 책을 관통하는 열쇳말이기도 하다. 유경수는 “강을 만지면 땅이 변하고, 땅을 만지면 강이 변한다. 굳건한 시실은 강과 땅이 하나라는 것”이라고 썼다. 그는 “흙 이야기는 모두 그 겹침에 닿아있다”고도 했다.

“제 연구 주제 중 하나가 토양 생성 즉 흙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입니다. 책 맺음말에 남해 현령 조광진의 꿈에 나타난 노인 이야기를 썼어요. 이 노인은 ‘내가 가천마을에 묻혀 있는데 그 위로 우마의 통행이 잦아 일신이 불편하여 견디기 어려우니 파내어 세워주면 필히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했죠. 현령이 땅을 파게 하여 보니 바위 둘이 나왔고, 이 암수 바위는 지금도 남해 다랭이 마을에 서 있습니다. 현령의 꿈에 나와 고통을 호소하던 노인은 흙의 침식을 걱정하는 마을 사람의 절실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흙이 씻겨 나가고 드러나는 바위들은 다랭이 논의 유지에 치명적이었으니까요. 남해바다가 보이는 다랭이 마을에서 배운 암수바위의 역사는 제 공부와도 맞닿아 있었어요. 암석이 흙으로 전환하는 여정이 제 공부의 중요한 부분이거든요. 나무가 자라면 뿌리도 같이 자라잖아요. 암석 사이 틈이 있으면 뿌리가 그 틈으로 들어가면서 굵어지고 그러면서 암석 사이 틈을 벌려 놓고요. 뿌리가 죽으면 그사이 빈틈으로 흙이 들어가고, 흙 속 유기물 등에서 나오는 산이 암석을 부식시키고, 결국 암석이 점진적으로 흙이 되는 것이죠. 흙과 암석 사이에 끼인, 즉 흙의 침식되면 드러나 마을 사람들의 생계와 농사를 위협할 돌이 남해 현령의 꿈속 노인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봤습니다. 남해 가천 마을을 둘러보고, 그 마을 역사를 배우면서 참 고생들이 많았겠다 했어요. 마을 사람들이 경사진 비탈을 깎아 평평한 계단 논을 만들고, 핵석을 파내고, 핵석과 쇄설물로 축대를 놓아 흙을 고정하는, 토양 침식을 막으려고 그렇게 고생하지 않았다면 지금 여기 흙이 과연 남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글을 썼지요. 암석이 흙이 되는 그곳에서 사람의 역사와 자연이 엮이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흙은 자연적인 과정으로만 만들어진다 생각했는데, 인간 역할이 매우 컸던 것이죠. 히말라야, 멕시코, 페루 등 산악농지에서 자란 우리 학생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런 생각이 더 강해집니다. 현장을 다니면, 인간 손길 밖에 있는 흙을 찾기란 생각보다 아주 어려웠어요. 흙이라는 게 결국은 자연적인 과정과 인간적인 과정이 겹치는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흙을 잘 알아가면, 사람에 관해서도 알 수 있다

- 흙을 다룬다는 점에서 고고학자 일과도 비슷하단 생각이 듭니다.

“고고학자랑 토양학자랑 서로 통하는 바들이 있죠(웃음). <흙의 숨>의 강 챕터에서도 역사고고학자인 동료 교수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끔 고고학 하시는 분들의 세미나를 찾아가요. 제가 굉장히 재미있게 들었던 것 중의 하나가 있어요. 미국 남부 조지아 쪽에는 피드몽이라는 곳이 있어요. 기온이 미네소타보다 높고, 강우량도 많은 곳인데 목화를 재배했거든요. 수많은 흑인 노예들을 투입한, 사람한테도 자연한테도 굉장히 약탈적인 농업이었어요. 그 흙 속에서 당시 노예들의 유물을 찾아내는 분이 있었어요. 인간 문명의 상처 같은 것들도 흙에 남는 거죠. 흙을 잘 알아가면, 사람에 관해서도 많이 알 수 있죠. 다윈, 지렁이에 얽힌 이야기도 재밌죠.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이 말년에 고향 집에서 칩거하면서 파고든 게 지렁이예요. 마지막으로 남긴 책이 <지렁이의 활동과 분변토의 형성>인데, 이 중 한 장이 고고학에 관한 얘기예요. 유물들, 즉 호미든 벽돌이든 왕관이든 흙 속에 일부러 묻은 것도 아니고 땅 표면에 떨어뜨려진 건데,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왜 흙 속에서 발견되는가를 물어요. 답이 지렁이예요. 지렁이가 계속 흙을 움직여 유물이 흙에 덮이게 만드는 거죠. 유물 아래 흙은 느슨하게 만들고, 유물 위로 분변토를 올리면서, 유물이 아래로 가라앉는 거죠. ”

- 책 띠지를 보니 모토 하나가 ‘사람을 생각하는 과학자’더군요.

“감수성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특히 요즘 기후 변화에 대해 굉장히 답답해하고, 절망해 하는 과학자들이 많거든요. 왜 사람들이 과학을 이해를 못 하나 하면서요. 어떻게 과학을 제대로 설명할 것인가 하는 고민도 많이 하죠. 과학자가 자기 전공을 열심히 가르치려 하는데, 일반인들이 엉뚱한 질문을 하거나 잘못 이해하면 마음의 상처를 받는 거예요. 잘못된 지식을 바로잡아줘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또 기후변화를 막는 활동에 더 참여를 촉구하려는 열정으로, 더 많은 사실 더 많은 통계를 쏟아붓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마음을 더 다치기도 하고 사람한테 실망도 하고, 그러면서 사람하고 사이도 안 좋아지기도 해요. 그런 면에서 사람을 아는 것이 참 중요하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 책을 쓰면서 과학을 설명할 때 더 많은 숫자나 통계보다는 제 얘기나 사람들 이야기를 넣으려고 했어요. 전 과학자이지만 사람이 숫자로만 움직인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은 정서적이고 영적인 존재입니다. 지구의 아픔을 느끼고 공감하는 것과 사람의 아픔을 느끼고 공감하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닐까요? 지구의 아픔에 선뜻 나서지 않는 것은 우리가 아직 온전한 사람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어떤

접근 방식이 옳고, 더 효과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가지 다양한 접근 방식이 필요한 것 같아요. ‘사람을 위한 과학’이라는 말 자체가 사실 커다란 물음표에요. 사람이란 무엇인가, 과학자가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가, 달라야 하나같은 물음이 이어지죠. 과학을 정확히 이해는 못하더라도 직관에 의한 선택으로 또는 가난에 의한 타의로 생태학자 없이도 더 생태적으로 사는 사람도 있어요. 마찬가지로 과학을 잘 이해하고도 자기 행동을 바꾸지 않을 사람도 있고요.”

- 또 다른 모토 하나가 ‘삶을 즐기는 연구자’인데요.

“‘삶을 즐기는 연구자’ 이야기를 하자면, 우리 과 대학원생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어요. 대학원생 중엔 아이디얼한 친구들이 많아요. 의미 있는 삶을 살아보려는 학생들이죠. 어쩌면 그래서 이런 이야기가 통할 수도 있을 텐데요. 우리가 정말 정말 훌륭한 과학자가 되어야 하는데, 나도 잘 살고 너도 잘 살게 즐겁게 해보자는 거죠.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오면서 논란이 되었지만 이게 바로 DEI (다양성, 공정성, 포용성, 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에요. 대학원 생활을 어떤 분위기에서 어떻게 하냐에 따라 우리 졸업생들이 만들어나갈 학계는 달라질 거라고 믿어요. 서로 밀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환대하는 지적인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훈련을 해야죠. 그런 뜻에서 삶을 즐기는 과학자 얘기를 학생들한테 많이 해요. 저희 대학원생들이 첫 학기에 모두 참여하는 오리엔테이션 수업을 맡고 있어서 저한테 또한 아주 중요한 주제입니다.“

유경수는 “파워포인트 대신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는 수업 만들기에 힘쓰고 있다”고도 했다.

- 학생들이 정신 건강 문제로 어려워한다는 얘기도 하셨더라고요.

“학생들도 대학원이라는 긴 과정을 지나기가 참 어려워요. 저도 겪었지만, (20대 중후반, 30대 초중반) 그 나이가 복잡할 때잖아요. 실수도 많이 하고요. 자기 미래에 대한 불안도 크고요. 미국 밖에서 온 학생들은 소속감을 느끼기가 힘들고요. 쉽게 고립될 수 있어요. 우리 과 대학원 오리엔테이션 클래스도 맡고, 대학원 과정을 이끌어가는 책임을 맡고 있기도 한 저로선 중요시하는 게 소셜한 것들이에요. 대학원생들끼리 서로 만날 기회를 계속 만들어주는 거죠. 그중 하나가 가령 같이 밥 먹는 자리를 많이 만들어주는 겁니다. 우리 대학원에서 노력을 많이 쏟는 점이에요. 자질구레한 피자 점심 외에도, 과 구성원이 모두 모이는 성대한 저녁 식사들도 있습니다. 학부까지는 지식의 소비자였다 대학원에서 지식의 생산자가 되죠. 지식을 생산하는 공동체의 멤버가 되는 거고요. 지금까지 지식의 생산자가 되는 기술을 가르치는 게 대학원이었다면은, 환대가 기본인 지식생산 공동체를 일구는 아트 또한 초점이 되어야 해요. 가령 학생들이 학과에 기여할 다양한 공간들을 계속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희 학과의 경우 몇 년 전부터 한 달에 한 번씩은 교수 회의 이전에 커뮤니티 미팅을 합니다. 학과 직원, 대학원생, 포스트닥, 우리 학과에 관심을 가진 외부인까지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데, 참여도가 무척 높습니다. 올 10월에는 처음으로 저소득 국가에서 흙, 물,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학자를 초대해 이야기를 듣고 교류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첫 방문학자로 구아테말라 분이 오셨고요. 몇 학생과 제 노력으로 작은 펀딩을 받아 시작했지만, 관심과 호응이 커서 계속 이어질 듯합니다. 대학원 공동체의 면면이 학생들이 나중에 만들어갈 학계의 모습에 영향을 끼칠 겁니다. 고립, 경쟁, 독점이 아니라 DEI를 통한 탁월함으로 가도록 하는 게 중요하죠.”

- SNS에선 책이 잔잔한 화제를 일으켰습니다. 반응은 확인하셨는지요.

“네. 늘 궁금하죠. 여러분들이 쓰신 글들 보면, 좋아하시는 챕터들이 달라요. 어떤 분은 지렁이 챕터, 어떤 분은 맨 똥 이야기, 어떤 분은 강이나 물을 꼽아요. ‘고르게 읽혔구나’ 하는 안도감이 있죠. 책이 자연과학을 다루면서도 인문 이야기를 녹여 어렵지 않고 친숙하게 읽힌다는 코멘트도 안도감을 주고요. 여러 장르를 넣다 보니, 걱정을 좀 했는데, 특별하게 모자란 점으로 다가가지는 않은 것 같아 또 안도감이 들고요. 텃밭 하시는 분들이 흙을 더 가깝게 느꼈다, 흙을 다시 보게 됐다는 코멘트들이 제일 반가워요. 책에 조선시대 문장가 유한준의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는 명언이 문화재만이 아니라 흙에 관해서도 사실이라고 적었죠. ‘다시 보게 될 흙에는 오래된 경험을 미래의 지속가능한 농업으로 승화시켜줄 경이로운 발견들이 기다리고 있다’고요. 책이 제 역할을 했다는 느낌이 들고요. 한국에서 물리학과를 나와서, 생태나 토양 분야 분들을 잘 몰라요. 책 출간 덕에 관련 분야 분들도 조금씩 알게 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생태 운동, 텃밭 하시는 분들과 만날 교차점들도 생겼어요. 그 교차점이 잘 자라나면 좋겠습니다.”

유경수는 지난 15일 한국을 찾았다. 교차점이 생긴 덕이다. 17~18일 전남 진도 국립남도국악원에서 열리는 국제학술대회 ‘기후위기와 지역문화 변동’ 참가한다. 그는 “인구 감소, 문화유산보존, 역간척, 생태 복원 등 다층적 의제를 지역차원에서 다루는 학술 회의”라고 했다. 그는 ‘진도의 생태복원: 자연과학 끌어오기’를 18일 발표한다. 그는 “지역에선 인문 문화쪽 분들에게 많은 영감을 받는다. 안타깝게 그 분들의 멋진 아이디어들이 지자체와 개발 세력 건설 토목에 눌리기 십상이다.이 간극을 메꿀 자연과학자들의 목소리가 없다. 건설토목 주체와 물질적 자연에 대해 논쟁할 자연과학자의 부재다. 앞으로 일어날 중요한 쟁점 중 하나가 역간척 문제다.진도의 앞날을 걱정하시는 분들께 관련 자연과학자들과의 협력을 제안하려고 쓴 글”이라고 했다.

이어 전남 장흥과 고흥에선 문화운동과 생태 텃밭 모임을 하는 토박이, 이주 농부와 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22일 인천도시농업네트워에서 ‘텃밭 농부 지렁이 그리고 지구’라는 제목의 강의를 한다.

- 집 뒷마당 텃밭 이야기도 책에 나옵니다. 무엇을 기르시는지요.

“올해는 풋고추, 호박, 오이, 토마토, 방울토마토, 깻잎, 청경채, 그리고 감자를 심었습니다. 지난해에는 옥수수와 가지를 더했고요. 이번 여름 알래스카의 놈을 열흘간 다녀와서 바로 다음 날부터 오대호 주변을 돌았어요. 두 번째 여행은 식구들과 함께 갔는데, 여름에 집을 대책 없이 보름을 비웠더니 모든 것이 정글이 되었더라고요. ‘보름 만에 이렇게 된다면 1년이면 어떨까? 10년, 100년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습니다. 너무나 대단하게 느껴져 자연으로 돌아가는 그 과정을 그대로 방치하고 싶다는 유혹도 들었죠. 올가을은 유난히 바빠 텃밭은 그 상태로 가을을 났고 서리가 내림으로써 한해 농사가 끝났습니다. 한 10m X 5m 정도의 작은 텃밭인데도, 나오는 족족 먹어 없앨 수가 없더라고요. 그나마 고추는 알차게 먹었고요. 방울토마토 깻잎과 오이는 미처 따지도 못한 채 서리에 죽었습니다.”

- 텃밭 가꾸기 말고 일과도 소개해주신다면.

“아마 많은 분이 비슷하게 느끼실 텐데, 직장 일을 중심으로 보면 집안일에 너무 시간을 뺏기는 것 같고, 집안일을 중심으로 보면 직장 일에 너무 시간을 뺏기는 것 같고 그렇습니다. 시간 관리에 재주가 없는 데다가 공상하고 쓸데없는 일을 벌이는 게 타고난 습관이라 능률적인 사람도 못 됩니다. 그러다 보니, 가족과 많은 시간을 잘 보낸 것도 아니고 아이들한테 좋은 아빠가 되지도 못했으면서, 저만을 위해 쓴 여가 또한 없는 상황이 되었죠. 옛날엔 책도 다방면으로 많이 읽고, 음악도 영화도 찾아서 듣고 보고 그랬는데, 아이들 아빠가 되고서는 그럴 틈이 안 나더라고요. 아이들이 옆에 있으면 뭘 어떻게 해줘야 할지도 잘 모르면서도 아이들을 놔두고 취미생활 하는 것은 맘이 불편해 못하는 아주 비효율적인 아빠죠. 그렇게 20여 년을 지내고 보니 ‘나한테 취미라는 게 있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 책엔 가족 이야기도 많이 나옵니다. 특히 막내 이야기가 많더군요. 막내아들 이름을 미네소타 뜻을 따와 지었다고 했는데요. 이름은 안 나오더군요.

“민하에요. 가족이 자주 가는 곳 미네하하(Minnehaha) 폭포에서 ‘Minha’를 따왔어요. 다코타 말로 뜻이 ‘물의 웃음’이라고 들었는데, 나중에 다시 알아보니 물이 떨어진다는 즉 폭포라는 뜻이었어요. 그래도 저희 마음속에서 미네하하는 물의 웃음이 되었죠. 한자로 하늘 민 물 하를 썼어요. 하늘을 비춘 물이라는 뜻인데, 미네소타(Minnesota)가 다코타 말로 똑같은 뜻이에요. 미네소타를 돌아다니면 이게 얼마나 딱 들어맞는 이름인지 알게 돼요. 민하의 두 형의 이름도 ‘하’로 끝나요. 삼 형제 덕에 우리 가족은 하하하 패밀리로 불립니다(웃음). 큰아이가 태어날 무렵 한국의 동강댐 문제가 컸습니다. 학교에서는 하천 지형학 수업을 들고 있었고, <소리 잃은 강 (Silenced Rivers: The Ecology and Politics of Large DamsSilenced Rivers)>도 주 관심 있게 읽고 있었어요. 큰아이 이름이 ‘흐르는 강’이 되었고, 둘째는 ‘아름다운 강’이 되었습니다. 첫째 둘째가 태어나는 사이에 박사과정 중이었는데요. 생태학을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을 섭외해서 함께 <소리 읽은 강>을 번역했어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강화에서 갯벌 보존 운동하시는 분이 <소리 잃은 강>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씀하시며, 인삼 한 세트를 보내 주셔서, 그때 총대를 메길 잘 했구나란 생각이 처음 들었어요. 학위 논문 쓰는 일로 쫓기는데 역자 서문도 써야 하고 여러분이 따로 번역한 장들도 손봐야 하고, 열심히 하면서도 맘은 편치 않았거든요.”

- 한국으로 돌아오실 건지요.

“2013~2014년 안식년으로 한 해를 한국에서 보냈어요. 부모님 뵈러 해마다 갑니다. 생각하면 맘만 복잡해져서, 애써 생각을 안 해요. 답을 못 내는 주제 같아요. 태어나고 자란 곳이 그립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사실이고, 이곳에 내린 뿌리도 깊어서 타국도 남의 나라가 아닌 게 된 거죠.

- 흙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교수님의 제2의 고향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진짜 그러네요. 저희 아이들이 한국에 가는 거를 참 좋아해요. 할아버지, 할머니 만나는 것도, 한국 음식도 좋아하고요. 저도 아내도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늘 있는데 여기서 계속 애들이 자라니까 쉽지 않은 문제 같아요.”

제목은 ‘흙의 숨’이다. 유경수는 책에 “몸을 가진 것은 숨을 쉰다. 흙의 몸이 숨을 쉰다는 것, 혹은 흙의 몸을 못살게 굴면 흙이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 사람을 위한 것만큼이나 흙을 위해서도 중요해졌다”고 썼다. 그는 2020년 5월 25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경찰의 몸에 깔린 조지 플로이드가 9분 동안 스무 번 넘게 “숨을 쉴 수 없다”고 호소한 일을 떠올렸다. “폭력적인 정권의 압제 아래서 또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쟁 속에 억눌린 사람들은 그 고통을 ‘숨을 쉴 수 없다’고 표현”하는 일도 상기했다. 이어 “흙의 몸과 흙의 숨 그리고 그 관계에 개입하는 인간에 관해 생각”했다. “생각의 자리라고 여겼던 그곳에 대신 호흡이 있었다. 나를 통해 온 우주가 숨을 쉬고 있었다”는 명상으로도 이어냈다.

- 책에서 가장 전하고픈 메시지는 무엇인지요.

“우선 흙과 인연을 맺어 보시라는 초대이고요. 흙이 생태 기후 식량 문제의 중심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맺음말의 마지막 두 문단에서 압축하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공동의 집과 공동의 문제는 무엇일까? 지구를 망가뜨리지 않고도 잘 먹고 잘 사는 길을 찾아야 하는 오늘날, 모두의 집인 지구는 남쪽의 큰 바다로 배수진을 친 다랭이 마을처럼 달리 갈 곳이 없는 유일한 거처이다. 다랭이 마을에서 그랬던 것처럼, 공동의 문제와 공동의 집을 향한 절실함이 한 길 사람 속에서 솟아오르길, 그리고 꿈에서조차 마을 사람들의 절실함에 반응한 현령처럼 우리의 과학과 문화가 한 길 사람 속을 향한 감수성을 살려 나가길 소망하면서 책을 맺는다.

암석으로 만들어진 지구의 표면 그 어디에서 흙은 시작하는 것일까? 한 길 땅속, 한 길 사람 속. 바로 그곳에서 자연이자 문화인 흙은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그 교차점에서 건져 올린 문제 덩어리 암석이 다산과 풍요를 비는 대상물이 되었다. 흙이 시작하는 그곳, 자연과 사람이 만나는 교차점을 응시한다. 우리도 그들처럼 한 길 땅속 한 길 마음속에 묻힌 공동의 문제를 지상으로 끌어올릴 힘, 풍요로운 공동의 집을 향해 첫발을 디딜 힘이 있을 것이다. <흙의 숨> 391~392쪽

유경수는 이렇게 부연했다.

“그냥 먹고 사는 게 아니라 이제 잘 살고 잘 먹는 거라고 썼어요.”잘“이 참 중요해요. ‘교수 생활하기’와 ‘교수 생활 잘 하기”는 다르죠. 어영부영하면 다 하는데, 잘 하는 거는 어렵잖아요. ‘잘 한다’는 게 뭘까?라는 성찰적인 질문도 할 수밖에 없고요. 흙과 농사의 경우, 내가 이렇게 먹는 게 나를 위해서도 지구를 위해서도 잘 하는 것일까, 내가 먹는 것들을 이렇게 만들어도 되는 걸까, 내가 소비를 이렇게 해도 되는 걸까라고 질문하게 되죠. ‘흙의 숨’ 챕터에서 기후변화와 이어지는 흙의 탄소 배출과 균형을 소개하면서 인간의 숨도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인간이 자연에게 암세포 같다고들 해요. 하지만 인간의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활동이 문제임을 말하고 싶었어요. 인간을 미워하지 말고 죄를 미워해야 한다는 말과 통하는데, 인간의 몸을 긍정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활동을 바꾸어야 함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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