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계환 전 해병대 사령관이 채모 상병 순직사건 수사외압 의혹이 불거질 당시 국군방첩사령부 간부와 통화하며 ‘VIP(윤석열 전 대통령) 격노’가 외부에 알려질까 봐 걱정하는 내용의 녹취가 확인됐다.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VIP 격노 의혹을 폭로하자, 박 대령이 이 내용과 관련된 자신과의 대화를 녹음한 건 아닐지 걱정한 것이다. 특검은 이 같은 우려가 김 전 사령관이 VIP 격노를 수사외압 초기부터 알고 있었던 정황으로 의심한다.
26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이명현 특별검사팀은 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로부터 김 전 사령관과 해병대 파견 방첩사 소속 문모 대령 간의 통화 녹취 파일을 넘겨받았다. 이 통화는 2023년 8월 한 것으로, 공수처가 지난해 김 전 사령관의 휴대전화에서 복원했다. 구체적인 통화 내용이 알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녹취에 따르면 김 전 사령관은 문 대령과 통화하며 “박정훈이 (나와의 대화를) 녹음했으면 어떡하냐”는 취지로 말했다. 수사외압을 폭로한 박 대령이 김 전 사령관으로부터 VIP 격노를 전해들었던 상황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일관된 주장을 반복하자 자신과의 대화가 녹음됐을 가능성을 걱정한 것이다. 이에 문 대령은 “그런 게 있었으면 (박 대령이) 진작 터뜨렸을 것 아니냐”고 안심시켰다고 한다.
김 전 사령관은 수사외압 의혹의 시작점인 윤 전 대통령의 격노 발언이나 이를 유추할 수 있는 정황이 외부로 새어나갈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간 박 대령은 2023년 7월31일 김 전 사령관으로부터 “대통령이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수사결과를 보고받고서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며 격노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해왔다.
특검이 파악한 김 전 사령관의 녹취에는 박 대령이 아닌 다른 해병대원들이 VIP 격노를 폭로할 가능성을 언급한 대목도 있었다고 한다. 김 전 사령관이 박 대령과 친한 사이인 이모 전 해병대 공보정훈실장을 언급하며 “이○○도 그 얘기를(VIP 격노 관련) 들은 것 같다”고 말하자 문 대령은 “이○○는 내가 막아보겠다”며 걱정말라는 취지로 답했다고 한다. 다만 이 전 실장은 최근 특검 조사에서 ‘김 전 사령관이나 문 대령으로부터 외압을 겪은 적은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수처와 특검은 김 전 사령관에게 이 녹취 등을 제시하며 ‘격노를 알고 있었던 게 아니냐’고 추궁했지만 김 전 사령관은 이를 부인했다고 한다. 그러다 지난달 2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모해위증 혐의에 대한 구속영장 심사에서 “대통령의 격노를 누군가로부터 전해들었다”며 처음으로 인정했다.
특검팀은 27일 오전 10시부터 박 대령을 불러 네 번째 참고인 조사를 진행한다. 이날 조사에서 박 대령이 김 전 사령관에게 윤 전 대통령의 격노 소식을 전달받은 시점, 당시 상황 등을 물을 예정이다. 특검팀은 조만간 김 전 사령관도 다시 불러 조사한 뒤 모해위증 혐의 사건과 관련한 처분 방향도 검토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