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자의 존엄을 지키는 길, 공공의대에 답이 있다

2025-05-01

지난한 겨울이 끝나고 드디어 봄이 왔다. 12‧3 비상계엄으로 얼어붙었던 시린 겨울은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으로 녹아들었다. 국민은 일상을 되찾았고, 대한민국은 무너진 나라를 다시 세우기 위해 분주하다.

윤석열 탄핵은 주권자 국민의 승리이자 헌법의 승리였다. 우리는 이번 탄핵을 통해 헌법이 천명한 국민주권 원칙을 다시 확인했고, 헌법재판소는 국가와 헌법기관 모두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우리 헌법은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하고 있다. 건강권은 질병 예방, 의료서비스 접근, 건강한 생활환경을 보장받을 권리를 뜻한다. 헌법이 명시한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 추구권을 실현하기 위해 건강권은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권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는 이 건강권을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게 보장하고 있는가?

수도권 일극 체제로 급속히 소멸하는 지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비정상적인 수도권 일극 체제 아래 사람과 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의료기관 같은 필수 인프라도 함께 무너지고 있다. 전국 44개 상급종합병원 중 절반이 서울·경기·인천에 몰려 있다. 서울 시민은 평균 2.77km만 가면 종합병원을 만날 수 있지만, 전북도민은 20.36km를 이동해야 한다. 이 숫자는 지방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생명권이 차별받고 있다는 가슴 아픈 증거다. 한시가 급한 응급 상황에도 먼 거리를 버텨야 하는 현실,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부당함을 끊어내기 위해 필자는 국회 입성 직후 「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로 발의했다. 국정감사를 통해 지방 의료 붕괴 현실을 알렸고, 동료 의원과 시민사회, 지방의회와 연대하여 공공의대 설립을 촉구해 왔다. 특히 전북은 남원의료원 부근에 부지를 확보하고, 오랜 시간 공공의대 유치를 위해 시민과 정치권이 하나 되어 싸워왔다. 최근 이재명 대표의 공약에 공공의대 설립이 포함된 것은 그간의 간절한 노력이 맺은 작은 결실이다.

공공의대는 지역과 필수의료 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해법이다. 일본은 이미 1970년대에 자치의과대학을 설립해 학비 전액 지원과 9년 의무복무를 통해 지역의료를 지켜왔다. 지금까지 4,857명의 졸업생 중 74%가 의무복무를 마쳤고, 복무 이후에도 64%가 지역에 남아 의료공백을 막고 있다. 우리나라도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윤석열 정부 이후 공공의료 확충 논의는 사실상 멈췄다. 일부 의료계 반발이나 지역이기주의라는 오명으로 공공의대 설립을 방해하는 것은 수도권 중심 의료체계를 더욱 고착시키고 의료취약지의 국민 건강권을 외면하는 일이다. 전라북도에 터를 둔 의원으로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공공의대 설립은 단순한 지역 이익을 넘어 대한민국 의료체계의 지속 가능성과 국민 생명권을 지키기 위한 절박한 국가적 과제이다.

서울에 살든, 전라북도에 살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플 때 적시에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거주지에 따라 건강권이 차별받는 대한민국은 우리 헌법이 그리는 나라라 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헌정질서를 짓밟으려 했던 권력에 맞서 승리했다. 이제는 의료에서도 주권자로서의 존엄을 되찾아야 한다. 공공의대 설립을 통해 국민의 건강권을 바로 세우고,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성을 지켜내야 한다. 긴 겨울을 이겨내고 지켜낸 봄, 그 따스함이 우리 아이들의 건강한 미래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함께 나아가자.

박희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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