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소설 작가 A씨는 얼마 전 계약서에 포함된 이상한 조항을 발견했다.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상물, 게임, 웹툰 등의 2차적 저작물을 제작하려면 자신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알고 있었지만, 계약서에는 “사업자가 2차적 저작물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는 조항이 버젓이 들어가 있었다. 심지어 계약이 끝난 이후에도 저작물 이용을 허용한다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었다.
A씨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올해 웹툰·웹소설 콘텐츠제공사업자(CP) 23개사의 계약서를 전수 조사한 결과, 총 1112개의 불공정 조항이 적발됐다.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플랫폼이 일방적으로 가져가거나 작가 동의 없이 제3자에게 권리를 넘기는 조항, CP가 공동저작권자로 등록돼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약관까지 각양각색이었다. 심지어 계약 해지 사유가 불명확하거나, 계약기간을 자동 연장하면서도 작가는 계약을 해지하기 어려운 구조도 확인됐다.
특히 다수의 사업자들이 웹소설 연재계약이나 출판권 설정 계약 등 원저작물 계약을 체결하면서, 영화·게임 제작권, 해외사업권 등 2차적저작물작성권까지 자신에게 포괄적으로 부여하는 조항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저작권법상 2차적저작물작성권은 원저작자인 저작자에게 귀속되며, 제3자가 이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저작자 허락이 필요하다. 저작물이 공개되기 전인 계약 체결 단계에서 이러한 권리를 포괄적으로 설정하는 것은 저작자의 진정한 의사로 보기 어렵고, 향후 2차적저작물 제작에 대한 선택권을 제약한다는 점에서 불공정 약관에 해당한다.
그래서 준비된 것이 바로 '표준계약서'다. 지난해 6월 제·개정한 만화 분야 표준계약서는 웹툰 작가들이 50회를 연재할 경우 2회의 휴재권을 보장하고, 웹툰 서비스 사업자들이 작가들에게 수익 정산서를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웹소설 분야 표준계약서도 마련됐다. 문체부는 지난 3월 웹소설 분야 표준계약서 제정안 3종(출판권 설정계약서, 전자출판 배타적발행권 설정계약서, 연재계약서)을 고시했다. 표준계약서에는 창작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조항들이 담겼다. 콘텐츠사업자가 2차적 저작물 작성권 계약 시 제3자와의 계약에 따라 권리관계가 변동될 수 있음을 감안해 저작권자의 사전 동의를 얻거나 합의를 거치도록 하는 조항을 담았다. 정산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매출 정보 제공, 사고·질병 시 연재를 쉴 수 있는 휴재권 보장, 성명표시권과 저작물 수정 협의권도 포함됐다.
한국저작권위원회 전현수 변호사는 “문체부가 마련한 웹소설 표준계약서를 통해, 웹소설 분야 창작자들이 보다 나은 작업환경에서 창작활동을 이어가며 웹소설 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데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권혜미 기자 hyemi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