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성장에서 필요한 성장으로

2025-11-09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가 10일부터 21일까지(현지시간) 브라질 벨렝에서 열린다. COP30에 즈음한 기후 현실은 엄중하다.

지난 5일 나온 유엔환경계획(UNEP) ‘배출량 격차 보고서 2025’를 보면 2024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2023년 대비 2.3% 증가했다. 2023년 증가율 1.6%를 크게 웃돌고 기후위기 대응이 미약했던 2000년대 연평균 증가율 2.2%보다도 높은 증가율이다. 기후위기는 심해지는데 증가율이 높아지는 게 심상치 않다. UNEP는 현재 추세라면 지구 평균온도는 2100년까지 산업화 이전 대비 2.8도 오르고, 각국이 기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이행해도 2.3~2.5도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 감축 하한선은 '위헌적 숫자'

파리협정은 회원국이 5년마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이전보다 강화해서 제출하도록 정했는데, 올해는 2035년 감축 목표를 제출하는 해다. 하지만 원래 기한인 9월 말까지 제출한 나라는 64개국뿐이었고 지금까지 제출한 나라도 전체의 40%를 밑돈다. 지난 6일 우리 정부는 ‘50~60% 감축’ 또는 ‘53~60% 감축’을 ‘2035 NDC’ 최종안으로 공개했다. 그동안 48%, 53%, 61%, 65% 감축안을 두고 논의해왔지만, 특정 숫자가 아니라 ‘범위’를 목표로 내놓았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기후소송에서 NDC는 ‘과학적 사실’과 ‘국제 기준’에 근거해 수립해야 한다고 판결했고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 ‘2035 NDC’는 2018년 대비 61.2% 감축이다.

정부가 내놓은 감축 하한선 50%나 53%는 과학적 사실과 국제 기준에 근거하지 않은 ‘위헌적 숫자’이며 상한선 60%는 지키지 않아도 그만인 ‘영혼 없는’ 숫자다. 정부 말대로 하한선이 ‘현실적 실현 가능성’을 염두에 둔 목표라면 실현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상한선은 비판을 무마하려는 숫자 놀음이다.

우리는 대개 온실가스 감축을 ‘탈탄소 기술’에 의한 감축으로만 생각한다. 화석연료는 재생에너지로, 내연기관차는 전기차·수소차로, 철강 생산은 코크스(석탄)에서 수소환원제철 방식으로 전환하고 대기 중 탄소는 포집·저장하는 식이다. 하지만 온실가스 감축이 탈탄소 기술에 단순 비례한다고 여기면 착각이다. 어떤 기술도 구현하려면 기계가 필요하고, 기계를 만들려면 물질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물질을 얻으려면 에너지가, 에너지를 얻으려면 물질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은 불가피하다. 재생에너지 발전을 늘리려면 발전 설비가 더 많이 필요해져 핵심 소재인 철강 수요가 늘어난다. 철강 생산은 탄소를 대량 배출한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무조건 성장에서 필요한 성장으로

시대의 화두인 인공지능(AI)은 ‘전기 먹는 하마’다. AI 구현의 핵심인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생산에는 막대한 전력이 들어간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가 완공되면 수도권 전력 수요의 25%에 달하는 10GW(기가와트) 이상의 전력이 필요하다. 3GW는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으로 충당한다는데, 발전소 건설과 가동에서 모두 온실가스가 나온다. 나머지 전력을 다른 지역에서 끌어오려면 총 14개 노선 1153㎞에 이르는 송전선을 깔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지역 주민의 삶과 자연은 파괴되고 온실가스도 대량으로 나오게 된다. 전국 곳곳에서 ‘밀양’이 재현될 판이다. 정부는 AI 강국만 외쳤지 이 엄연한 현실은 외면한다.

갈수록 에너지 소비를 늘리면 어떤 기술로도 온실가스를 ‘지금 필요한 만큼’ 감축할 수 없다. 에너지 전환과 함께 삶을 전환해야 한다. 기후위기는 단순히 에너지 문제가 아니라 ‘더 많은’ 이윤이 목표인 성장주의 경제 문제다. 성장은 ‘더 많은’ 에너지와 물질을 요구한다. 성장 체제는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줄이지 못한다. 플라스틱 생산을 줄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체제 전환 없이 필요한 만큼 온실가스를 줄일 수 없다. 기술로 성장을 추동하며 온실가스도 함께 줄이겠다는 주장은 기만이다. 전환과 함께 물질 사용 총량을 줄여야 한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온 성장을 재고해야 한다. 무조건 성장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무조건 성장’을 ‘필요한 부문의 성장’으로 전환하자는 말이다.

현재를 고집하면 미래는 현재의 연장이며 변화는 없다. 성장이 가져올 미래는 현재의 양적 팽창일 뿐이다. ‘우리의 현재’를 직시해도 그런 미래가 바람직할까? 먼저 우리가 바라는 미래를 그려보자. 그 미래를 현실로 만들려면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지, 온실가스는 얼마나 줄여야 할지 고민하자. 그럴 때 미래는 현재의 변화를 이끄는 힘이 된다. 이제 공은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로 넘어갔다. 허수아비가 될 것인가, 과학적 사실과 국제 기준에 비추어 심의·의결할 것인가. 위원회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묻는 물음에 엄중히 대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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