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식으로 문학의 한 터전을 일궈내는 이들을 만나 왜 문학을 하는지 듣는다.

출판사 걷는사람의 첫 책은 박근혜 정부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99명 시인들의 작품을 모아 엮은 시선집 <검은 시의 목록>이다.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사무실에서 만난 김성규 걷는사람 대표는 “출판사의 첫 책은 ‘앞으로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이다’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문학이면서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진 책을 내겠다는 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2004년 등단한 시인이다. 그가 출판사를 차렸으니 시가 주가 되는 것은 당연했다. 2016년 문을 열었는데, 마침 블랙리스트 사태가 불거진 때였다. 바로 책을 준비했고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선고가 나기 전 책이 나왔다.
이후 시인선을 꾸렸다. 2018년 시작한 걷는사람 시인선은 올해 1월 100호를 넘겼고 최근 123호로 최호빈 시인의 <물의 숨겨진 맛>을 냈다. 1호 작품은 김해자 시인의 <해자네 점집>이었다. 국내 출판사들의 시인선 중 여성 시인이 1번을 차지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라 당시 소소하게 화제가 됐다.
“창비시선 1호가 신경림 시인의 <농무>였다. 농촌이 파괴되면서 도시화가 진행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리얼리즘을 표방한 창비시선의 상징이었다. 문지 시인선 1호는 황동규 시인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로 모더니즘 계열이다. 두 출판사가 명확한 색깔을 보여주며 시인선을 내왔지만, 2000년대 이후 색이 흐릿해졌다. 우리는 다시 리얼리즘을 표방하고 싶었다. 김해자 시인이 사회운동을 많이 하신 분이다. 여성으로 미싱사로 일하며 노동운동을 하면서 리얼리즘 계열의 시를 쓴다. 이런 시인을 1번으로 해서 출판사의 자산으로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인선의 작가를 정하는 기준 중 하나는 ‘지역’이다. 한국의 인적·경제적 자원이 모두 서울과 수도권으로 모인다고 하는데, 문학 역시 그렇다. 김 대표는 “예전에는 유명한 시인들이 20~30대 시절에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은 지역에 작가들이, 특히 2030 작가들이 없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등단을 하고도 네트워크 등이 없어서 문학의 장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이런 분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기억에 남는 작가로 김명기 시인을 꼽았다. 경북 울진에 사는 시인은 걷는사람 시인선 56호로 <돌아갈 곳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를 냈다. 이 시집으로 만해문학상을 받았다. 김 대표는 “우리 출판사 시집 낸 작가들이 문학상을 많이 받는다”며 웃었다.
시인선 외에 소설, 에세이, 희곡선도 낸다. 에세이 중에는 <우리는 표류하고 있습니다>가 인기 작품 중 하나다. ‘경상도의 딸들은 왜 진보가 되었나’라는 부제를 단 책으로 한국 사회에서 젊은 여성이 왜 진보적인 색채를 가질 수밖에 없었는지, 부모 세대와의 불화 등을 담은 책이다. 정치적으로 좌파인 딸이 프랑스로 여행을 가며 우파인 엄마에게 고양이를 부탁하는 내용의 책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도 있다. 양극화된 정치 지형 속에서 세대 간의 소통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들이다.
최근에는 도전적인 작업도 했다. 지난해 낸 소설가 박태순 중단편 소설전집이다. 총 7권이었다. 2019년 별세한 작가는 1960~1970년대 변두리 빈민과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다루는 작품에 천착했다는 평을 받는다. 신경림, 염무웅, 황석영 등과 함께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한국작가회의 초창기 전신) 창립을 주도하고 문예지 ‘실천문학’ 창간에 앞장섰다. 동시대 작가들에 비해 유명도가 높지 않다 보니 전집을 발간하는 작업이 쉽지는 않았다.
김 대표는 “한국 문학과 사회의 민주화, 통일 문제에도 기여한 작가다.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했고, 걷는사람이 작은 출판사지만 ‘전집을 냈다. 방대한 작업을 했다’는 의미가 있다”며 “상업적으로 이익을 얻기는 힘들어도 우리가 꾸준하게 갈 출판사라는 상징적인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반적으로 ‘어리숙하지만 우직하게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담아 지은 걷는사람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작업들로 보인다. 김 대표에게 문학이란, 시는 무엇인지 왜 출판을 하는지 물었다. 모르겠다는 혼잣말을 한참하다 답했다.
“시는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 차제가 상처에 대한 치유다. 일상의 수많은 무의미한 일들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는 일을 통해 자신과 삶에 대해서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된다.”
▼걷는사람이 출판한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