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 1심…법원, ‘페달 오조작 가능성’ 운전자 패소

2025-05-13

도현군 가족 주장 모두 받아들이지 않아

2022년 12월 강원 강릉에서 발생한 일명 ‘손자 사망 급발진 사고’ 책임을 둘러싼 민사소송에서 법원이 제조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13일 춘천지법 강릉지원 민사2부(재판장 박상준)는 고(故) 이도현(당시 12살)군 측이 KG모빌리티(KGMㆍ옛 쌍용자동차)를 상대로 제기한 9억2000만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전자제어장치(ECU) 소프트웨어 결함으로 인해 급발진이 발생했으며, 급가속 시 자동 긴급제동 보조 시스템(AEB)이 작동하지 않아 이 사고를 예방하지 못했다’는 도현군 가족 측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ECU는 차량에 사용되는 전자제어장치를 의미한다. 스마트키, 디지털 대시보드, ABS 브레이크, 자동 헤드라이트, 자동 공조기, 엔진 제어, 크루즈 컨트롤 등 전자적으로 제어되는 모든 기능은 각각의 ECU에서 실행된다.

AEB는 주행 중인 차량이 전방 자동차나 사람 등의 장애물을 인식해 충돌을 예상하고 만약 운전자가 개입하지 못하면 브레이크를 자동으로 작동해 충돌을 방지해주는 기술이다.

재판부는 도현이 가족의 ECU 결함 주장에 대해 ‘사고 전 마지막 5초 동안 가속페달 변위량이 100%였다’는 사고기록장치(EDR) 기록의 신뢰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EDR의 사고 전 운행기록이 저장되는 과정에 비추어 보면 원고 측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설령 ECU 결함으로 잘못된 주행 명령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그런 오류가 가속페달 신호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운전자 변속레버 변경한 것으로 보여

이어 “이 사고 차량과 같은 연식의 차량으로 실도로 주행 재연 시험한 결과 EDR 기록상의 속도와 차이가 시속 8∼14㎞로 크지 않고, 모닝 차량과의 추돌이 티볼리 차량 성능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며 “실제 상황을 재연한 실험상의 한계 등을 고려하면 원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사고 당시 가속페달이 아닌 브레이크를 밟았다는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티볼리 차량이 굉음을 내며 급가속 주행을 시작한 뒤부터 최종 충돌 시점까지 브레이크등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또 처음 급가속 현상이 나타나면서 모닝 승용차를 추돌했을 상황을 두고는 국과수 분석대로 운전자가 변속레버를 굉음 발생 직전 주행(D)에서 중립(N)으로, 추돌 직전 N에서 D로 조작한 것으로 봤다.

도현이 가족은 음향분석 감정인이 “변속레버를 D에서 N 또는 N에서 D로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분석한 점을 근거로 변속레버는 줄곧 D상태에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이 점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모닝 차량 추돌 전 굉음성엔진구동음이 발생하기 직전 뭔가 ‘철컥’하는 듯한 다소 상이한 음향이 들린다”며 “음향 발생 시점, 엔진회전수와 속도 변화 등에 비춰보면 운전자가 변속레버를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도현군 아버지 즉시 항소 뜻 밝혀

이어 재판부는 EDR에 기록된 ‘풀 액셀’ 기록도 인정했다. 이에 따라 AEB 미작동 결함 주장에 관해서도 ‘AEB는 가속페달 변위량이 60% 이상이면 해제된다’ 즉 60% 이상의 힘으로 가속페달을 밟았다면 AEB가 작동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제조사 측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운전자(도현이 할머니)가 가속페달을 제동페달로 오인해 가속페달을 밟았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여 이 사건 사고가 ECU 결함으로 인한 것이라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판결 선고가 끝난 뒤 법정을 나선 도현군의 아버지 이상훈씨는 즉각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씨는 “지난 2년 반 동안 숨죽여 견뎠다. 제조사의 침묵과 회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기계적 감정, 그리고 ‘급발진은 없다’는 고정관념에 기댄 결과를 참고 기다려 왔다”며 “하지만 오늘 판결은 진실보다 기업의 논리를, 피해자보다 제조사의 면피를 선택했다. 이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법정에 오기 전 도현이가 묻힌 곳에 가서 승소문을 건네주고 왔다. 절대 이대로 무너지지 않고, 감정적으로 호소하지 않겠다”며 “도현이는 이미 하늘에서 보고 있을 것이며 같이 울고 슬퍼할 것 같다. 다시 전력으로 항소해서 제조물책임법 개정을 위한 도화선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2년 6개월간 치열한 법정 공방

이번 소송은 2022년 12월 6일 강릉시 홍제동의 한 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부터 시작됐다. 당시 도현 군 할머니 A씨(68)가 몰던 티볼리 에어 차량이 배수로에 추락하면서 동승했던 손자 도현 군이 숨졌다.

이를 두고 운전자이자 유족 측은 해당 사고가 급발진으로 일어난 것이라며 제조사를 상대로 7억6000만원 규모의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A씨 치료비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대한 위자료까지 청구하면서 손해배상 청구 금액은 9억2000만원으로 늘었다. 하지만 피고인 해당 차량 제조사 KGM 측이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이 이 사고 원인이라고 주장하면서 2년 6개월간 치열한 법정 공방이 이어졌다.

도현이 가족은 “약 30초 동안 지속된 이 사건 급발진 과정에서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해 밟는 건 불가능하다”며 “ECU 소프트웨어 결함에 의한 전형적인 급발진 사고”라고 주장해왔다. 반면 KGM 측은 ‘풀 액셀’을 밟았다고 기록한 EDR 기록과 국과수 분석 등은 근거로 페달 오조작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따라 재판에서는 EDR 신뢰성 감정부터 블랙박스 영상 음향분석 감정, 국내 첫 사고 현장 실도로 주행 재연시험에 더해 ECU 소프트웨어 전문가의 최초 법정 증언까지 이어졌다.

앞서 경찰은 ‘기계적 결함은 없고, 페달 오조작 가능성이 있다’는 국과수의 감정 결과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2023년 10월 A씨의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에 대해 증거 불충분으로 불송치했다. 이에 도현군 할머니 A씨는 사건 발생 1년 10개월 만에 혐의를 완전히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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