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처방약 가격을 최대 80%까지 인하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할 계획이라고 11일(현지 시간) 밝혔다. 글로벌 빅파마들은 물론 미국 시장을 공략 중인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도 긴장 속에 구체적인 내용에 주목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고가 오리지널 의약품을 정조준하고 있는 만큼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케미컬 복제약이나 바이오시밀러 업계에는 반사이익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미 정부가 의약품 관세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 발표를 앞두고 있어 종합적인 영향은 관세정책 발표 이후에 측정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내일(12일) 오전 9시(한국 시각 12일 오후 10시) 백악관에서 우리 역사상 가장 중대한 행정명령 중 하나에 서명할 것”이라며 “처방약 및 의약품 가격이 거의 즉시 30%에서 80%까지 인하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나는 최혜국대우 정책을 도입해 미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약가를 지불하는 나라와 동일한 가격을 지불하도록 할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마침내 공정한 대우를 받게 될 것이고 우리 시민들의 의료비는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행정명령의 핵심은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것처럼 ‘최혜국 약가 정책’이다. 이 정책은 미국이 처방약 가격을 결정할 때 전 세계 국가 중 가장 낮은 가격을 기준으로 동일한 가격을 적용받도록 하는 것이다. AP통신은 “이번 조치는 주로 노령층 건강보험인 메디케어가 적용되고 병원에서 투여되는 암 치료제의 수액이나 주사제 등 특정 약품에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1기 행정부 때도 최혜국 약가 정책을 추진했지만 제약업계의 강한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이후 조 바이든 행정부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별도의 약가 인하 구조를 마련했다. 오락가락 관세정책으로 현지 여론이 악화되자 약값 인하 카드를 꺼낸 것으로 분석된다.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 등 바이오시밀러 기업들은 반사이익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약가 인하 기조가 오리지널 의약품의 약가를 제한해 바이오시밀러로의 전환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셀트리온은 ‘이날 미국 트럼프 대통령 약가 인하 계획 관련 당사 대응 전략 안내’를 통해 “미국에서 대략 30% 내외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공보험 시장에서 바이오시밀러 의약품은 이미 치열한 가격 경쟁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의 약가 인하 정책 방향과 부합하고 있다”며 “이번 약가 인하는 높은 가격이 형성된 오리지널 의약품을 주요 타깃으로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에 예고된 처방약 가격 인하 정책은 고가의 오리지널 의약품의 경쟁 활동 제한을 유도할 수 있어 오리지널에서 바이오시밀러 제품으로 대체되는 속도를 한층 가속화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예상했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외부 파이프라인 확보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전망한다. 엄민용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제약사들은 (더 적은 비용으로) 신약 개발을 하기 위해 더 많은 인수합병 또는 기술이전을 통해 파이프라인을 확보할 것”이라며 “기존 제품들은 피하주사, 뇌투과 기술, 지속형 또는 경구용 플랫폼들을 적용하면 IRA상 약가 인하 없이 신약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 플랫폼 기술이전 또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고가 신약을 앞세워 미국 시장 진출을 추진 중인 글로벌 빅파마는 물론 국내 기업에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내 기업의 경우 HLB(028300)가 간암 신약 ‘리보세라닙’의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앞두고 있으며 유한양행(000100)은 글로벌 제약사 얀센에 기술수출한 폐암 신약 ‘렉라자’를 지난해 미국 시장에 출시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약가 인하 행정명령은 관세보다도 훨씬 큰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며 “약가 인하 행정명령과 관세정책 모두 아직 구체화되지 않아 정책 발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