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위한 새로운 노동 생태계 만들어야

2025-06-01

울산의 한 대기업 공장에서 일하는 고졸 아버지는 연봉 1억원에 가까운 소득을 올린다. 회사는 자녀의 대학 학자금까지 지원해주니 아들은 별다른 경제적 부담 없이 대학을 졸업했다. 그러나 문제는 졸업 이후부터다. 아버지의 기대와는 달리 아들이 마주한 현실은 연봉 4000만원 수준의 중소기업 일자리였다. 아버지는 차라리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라고 아들에게 권한다. 아들은 울산의 중소기업에 다니기엔 아버지에게 부끄럽고, 공무원 시험 준비는 고통스럽기만 하다. 그렇게 지역에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간 지도 어느덧 5년. 이제 아들은 30대 후반이 되었다. 이제 아버지는 정년을 60세에서 62세, 63세까지 늘려가며 일한다. 이 부자지간의 모습은 특별하지 않다. 이러한 노동시장의 모습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이중노동시장 구조이다.

기존 제도로 미래세대 행복 추락

법·제도·판결 모두 기성세대 중심

새 제도로 청년 일자리 창출해야

기존 연구를 살펴보면 이중노동시장의 원인은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된다. 첫째는 산업구조다. 대기업은 높은 이윤을 바탕으로 정규직 중심의 안정적 고용이 가능했지만, 중소기업은 낮은 채산성으로 인해 저임금 고용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산업 구조가 제조업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저임금 일자리가 늘어났고, 플랫폼 노동 확대는 이중구조를 더 고착화했다. 최근 나타나는 ‘성장 없는 고용’도 이를 반영한다.

둘째는 대기업 노동조합과 경영계의 책임이다. 대기업 강성 노조는 표면적으로는 청년과 중소기업 노동자의 권익을 주장하지만, 실상은 기득권 보호에 집중해 ‘귀족노조’라는 비판을 받는다. 일부 경영계 역시 원칙을 지키기보다는 파업을 무마하기 위한 ‘퍼주기식 노무관리’에 의존하여 노동시장 내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킨다.

셋째는 정부 정책과 법·제도는 이중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이를 기준으로 교섭한 대기업의 각종 수당은 배수 단위로 상승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 격차는 더 벌어진다. 근로시간 규제 역시 마찬가지다. 대기업은 단체협약 등을 통해 연중 150일 가까운 유급휴일을 확보하지만, 많은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여전히 포괄임금제 아래 과로를 강요당한다. 최근 대선 공약으로 등장한 ‘주 4.5일제’는 대기업 근로자의 특권처럼 다가온다.

필자는 여기에 한 가지 신종 원인을 덧붙이고자 한다. 바로 최근 사법부의 노동 판례들이다. 법원은 통상임금의 범위를 확장하거나 퇴직금 산정 시 초과이익분까지 포함하는 판결을 연달아 내리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판결이 단지 한 개인과 기업 간의 분쟁을 다루는 것을 넘어서 전체 노동시장에 구조적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대기업은 다양한 수당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며 임금을 상승시키지만, 중소기업은 수당 체계가 없는 경우가 많다. 판결이 반복될수록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복지 격차는 곱셈효과(multiplying effect)를 일으키며 더욱 커진다.

이중노동시장 문제는 세대 간, 기업 간, 지역 간 불균형이 겹쳐진 복합적인 문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사법부 또한 노동 판결의 거시적 영향을 인식해야 한다. 사회경제적 불균형을 심화하는 판결은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저해할 수 있기에 노동 판례를 세울 때는 시장 전반에 미치는 구조적·경제적 파급력을 고려하는 균형적 접근이 필요하다. 둘째, 사회적 대화에서도 이제는 솔직해지자. 청년과 노동 약자를 위한다면서 기성세대 강자들만 이익을 취하는 표리부동한 자세를 이제는 내려놓자. 노동정책과  법제도 결정에 이중노동시장에 미치는 효과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디지털 시대에 기성세대를 위한 노동법과 노사관계로부터 절연된 새로운 일자리 오아시스가 조성되도록 기존 법과 관행에 예외를 두어 새롭고 괜찮은 청년 일자리들이 왕성하게 창출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청년층이 중소기업을 기피하지 않도록 중소기업의 일자리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청년들이 자존감을 갖고 일할 수 있는 근로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누구나 당당하게 자기 계발하고 일터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직무능력 중심의 공정한 노동시장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리셋코리아 고용노동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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